[외교광장]급변기의 국제질서 따라잡기(1) - 포스트코로나시대 국제질서의 모습
[외교광장]급변기의 국제질서 따라잡기(1) - 포스트코로나시대 국제질서의 모습
  • 이동휘 교수/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0.06.0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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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휘 교수
이동휘 교수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로 전 세계가 미증유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번 사태로 거의 모든 국가들이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서 큰 타격을 받게 되어,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관찰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이의 연장선 위에서 국가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국제질서도 커다란 진폭을 가지고 변동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실 1945년 제2차세계대전 종식과 함께 수립되어 유지되어 온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는 이미 팬데믹 이전에 중국의 도전, 반세계화 움직임의 고조, 민족주의의 확산에 덧붙여 트럼프의 미국이 표방하는 자국중심주의적 대외정책 등으로 변환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당면하고 있는 팬데믹 위기가 변혁기에 접어든 국제질서의 변동폭을 크게 확대함으로써, 기존의 질서는 국가 간의 타협과 조정으로 그 대강이 유지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 기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질서로 변모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다양한 국제질서의 정의 중에서 일정한 세력분포위에서 최강국이 질서의 목표가치와 이를 성취할 수 있게 하는 제도수단을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여타 국가들을 설득하여 이에 동참시킴으로써, 국제체계의 안정이 유지되어 나가는 조건적 상황으로 상정하면서, 이들 3대 요소를 중심으로 변화의 기본맥락을 유추해 보고자 한다.

세력분포: 힘의 개념 변질과 세력균형의 동요

 힘의 개념은 전통적으로 군사력을 중심으로 규정되어 왔으나, 점차 경제력의 비중이 커지면서 복합적인 성격을 띠어왔다. 경제력 외에도 테러방지능력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들이 국가의 힘을 규정하는 것으로 확대되어는 왔으나 주로 물리적 척도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위주로 하는 소위 경성권력(hard power)’에 머물러 온 것이 현실이다.

 한 국가의 힘을, 대내외적인 위협을 최대한 억제하여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안전보장능력으로 본다면, 이번 팬데믹으로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닌 미국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주요국들이 무기력함을 노정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군사와 경제력을 넘어 보건안보 측면이 더욱 강조되는 복합안보개념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할 것임을 예상케 하고 있다.

 이 경우, 힘의 개념이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잣대로 계측될 국가 간의 힘의 비교양상, 즉 세력분포 또한 변경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국제질서를 유지하는데 발휘되어 왔던 국제적 영향력의 위계는 달라질 것이고, 동요되는 세력분포가 새로운 균형점에 도달할 때까지 국제체계의 불안정성은 커져 갈 것이다.

목표가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의 도전 심화

 기존 국제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과 서방선진국들이 공동목표로 추구해온 것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확립이고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의 창달이다. 이러한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방위체제와 자유무역체제가 작동되어 왔으나, 팬데믹으로 인한 미국의 지도력 부재, 유럽연합의 기능부전 및 각국도생의 폐쇄적 국제관계 영위 등으로 목표가치의 실현이 커다란 장애에 봉착하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각국이 방역 방안을 강구함에 있어서 국가강제력의 강화 필요성과 개인적 자유의 보호 당위성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또 보건과 경제 간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고 충돌이 야기되고 있다.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국가 간 불협화음의 고조로 안보협력의 유지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어, 집단방위체제가 훼손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질병의 확산이 불가피해졌다는 인식을 반영하여, 각국이 국경봉쇄적 조치들을 강화함에 따라 인적물적 흐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에 그치지 않고 팬데믹 창궐의 책임론이 미중 간 패권전쟁의 주요 부분이 되면서, 중 경제관계의 분리(decoupling)와 중국의 제조력을 핵심으로 하였던 글로벌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의 전면 재편이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이 최근 제안한 가칭 경제번영망(Economic Prosperity Network)’은 세계경제를 미국과 중국을 각각 중심으로 하는 별개의 경제권으로 분열시킬 것으로 예상되어, 기존의 국제분업에서 누리던 경제후생은 대폭 감소하고 자유무역체제는 급격하게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제도수단: 일국중심주의의 강화와 다자주의의 약화

 힘을 중심으로 한 미국 주도력의 바탕 위에서 집단방위체제와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해 왔던 기존 국제질서는 그 제도수단으로써 양자와 다자의 군사동맹망들을 유지하고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을 운영하는 등 국제협력체제를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팬데믹의 창궐은 반세계화의 추세를 민간 및 국가 차원에서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각국은 국내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화되고, 이와 연관되어 국제적으로는 질서의 유지에 필수적인 국제주의의 동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팬데믹은 그 속성상 초국경적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그 대응은 당연히 초국가적이 되어야 하므로 국제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궐 과정에서 야기되는 자국중심주의의 확산물론, 미국의 주도력 약화와 동시에 전개되는 미중 갈등의 심화는 국제협력을 가능케 할 원동력의 훼손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렇듯 국제주의의 현실적 당위성과 일국중심주의의 정치적 불가피성이 충돌하는 여건 하에서, 기존 국제질서의 유지를 가능하게 해 온 제도수단인 국제협력을 위한 자유주의적 다자주의는 난관에 직면할 것이며, 이미 세계보건기구(WHO)UN 등 국제기구들과 G20, G7 등 여타 글로벌거버넌스 기제들의 무기력함에서 그 전조가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포스트코로나시대에 한국외교가 직면할 가장 큰 도전은 국제질서가 큰 폭으로 변동하게 됨에 따라 초래될 높은 파고를 여하히 넘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번 팬데믹 사태로 안보개념이 변질되어, 국제질서의 바탕인 세력분포가 달리 인식되고 동요하는 가운데, 새로운 세력균형이 모색되어 갈 것이다. 또한 그러한 여건 하에서 국가통제를 강화해야하는 집체적 대응의 현실적 필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기존질서의 목표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다양한 도전에 직면 할 것이며, 기존의 제도수단 또한 국제협력의 미비로 약화 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세력분포의 변동, 목표가치의 혼돈, 제도수단의 약화 등 제반 변화는 일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진척될 것이다. 이러한 변환의 과정은 소위 신냉전기로 접어들고 있는 미중 간의 패권전쟁과 궤를 같이 하면서 진행될 것이므로, 향후의 사태 전개에서 미국과 중국의 시각과 전략이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팬데믹 이전에 시작되어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두고 경제기술, 정치군사, 이념제도전으로 확대되면서 진행되어 온 미중패권전쟁에 대해, 필자는 적어도 30년이 소요될 장기전이고 그 결과는 중국은 승자가 되지 못하고 미국은 패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최근의 팬데믹 사태가 중국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기본적인 맥락에서 변경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미국과 관련해서는 상당 수준의 영향력 침식이 진행될 가능성이 예견되는데, 이는 국제정치 지형의 변화와 함께 국내정치 환경의 불확실성도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이전의 전망에서 벗어나, 국제질서의 확실한 주도국이 부재하는 혼돈의 세계, ‘G-0시대의 암영이 더욱 확연히 드리워 질 수 있다고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외교는 양 측면을 지닌 도전을 맞게 되었다. 하나는 팬데믹 이후 더욱 거세질 미중패권전쟁에서 강요받게 될 양자선택의 딜레마를 헤쳐 나갈 전략적 입지 선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최근 상승하고 있는 국가위상을 어떻게 유용한 외교자산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가 될 것이다.

 이 두 개의 난제를 풀어나가는 데에는 소위 중견국외교의 가치를 재발견하여 이를 기존의 좁은 영역에 국한 시키지 않고, 세계적 범주의 지식기반외교와 지역적 범주의 지전략적(geostrategic) 외교의 포괄적 추진을 가능케 할 포스트코로나시대의 외교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긴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 나갈 수 있다면, 팬데믹 사태가 초래한 위기가 오히려 한국의 전략적 위상 강화에 활용될 수 있는 전화위복의 의미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동휘 교수는 국립외교원 교수연구실장, 한국협상학회 회장,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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