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심리전과 협상술 이해하기
중국인의 심리전과 협상술 이해하기
  • 연상모 전 외교부 중국과장
  • 승인 2020.05.2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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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상  모

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올해 2월 말부터 중국 내에서 어느 정도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다.

그렇게 되자 중국정부는 발원지가 중국이 아닐 수 있다고 하면서, ‘중국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홍보전을 펴기 시작했다.

2월 말 중국의 감염병 권위자인 중난산이 “출현은 우한에서 했어도 발원은 아닐 수 있다”고 말한 후, 외교부 대변인은 “미군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우한에 가져왔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염병이 ‘중국 바이러스’라고 즉각 반격했다.

또한, 중국은 중국 내에서 코로나 확산이 잦아드는 시점에 코로나의 ‘중국 책임론’을 ‘중국 공헌론’으로 막으려고 하고 있다. “중국 인민의 힘든 노력이 세계 각국의 전염병 방제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벌어줬고 중요한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당초 중국 우한이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지로 지목되었고, 중국은 사태 초기 정보를 은폐하고 축소하려다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중국 책임론을 회피하려고 하는 시도는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러면 중국은 왜 무리해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일까? 우선 통치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성과’에 의존하여 통치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정부로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중국인 특유의 자신을 옹호하고 합리화하려는 심리전과 상대방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그들만의 전통적인 협상술을 살펴봄으로써 이해를 도울 것이다.

  첫째, 중국인의 심리전과 협상술은 거대한 면적과 인구, 오랜 역사의 부대낌 속에서 생성되고 뿌리내린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거리의 평범한 상인조차 능란한 협상술을 구사한다. 주목할 점은 그들은 결코 상대에게 자신의 속을 먼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도 중국의 상품은 제대로 정찰제가 지켜지지 않았기에, 상대를 어떻게 공략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이익 실현이 가능했다.

즉,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상거래에 있어서 손님에게 원하는 가격을 먼저 말하라고 하여 상대 실력을 평가한 후 그 선상에서 탄력 있는 가격 흥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역사적으로 심리전에 능한 국가다.

‘중화사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국은 자신이 세계의 중심에 있으며 주변의 ‘오랑캐’와 구별되는 우월한 문화를 갖고 있다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더해, 현대에 등장한 공산당정권은 선전전에 능하다.

공산당은 20세기 전반 항일전쟁에서 ‘지구전’과 ‘정의전’을 주장하여 승리를 이끌어냈다. 즉, “중국은 땅이 넓고 자원이 많아 장기적 전쟁을 능히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전쟁은 퇴보적 성격이 있는 반면, 중국의 전쟁은 정의성으로 국제적 원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강대국이 될 때까지 자신의 힘을 감추어라”는 ‘도광양회’의 실용외교를 추진하여, 미국의 견제를 피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중국위협론’이 대두되자, ‘평화발전’과 ‘조화세계’를 제안했다. 더 나아가서, 중국은 유구한 문명을 가진 세계의 스승이라는 ‘문명국가’의 이미지를 수립하려 하고 있다. 이는 ‘인류운명공동체’의 주장에서 나타난다.

  둘째, 중국인은 구체적 사안을 긴 역사적 맥락 또는 큰 틀에 넣어 자기 페이스로 끌고 나가려 한다.

중국지도자들은 거의 무한한 역사의 책임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마음에 겸손함을 불러일으킨다. 외국인들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그들이 자연의 방식에 거스르고 있으며 그들의 행동은 중국의 오랜 역사의 긴 흐름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려고 한다.

1971년 미・중관계 개선을 위해 방중한 키신저에게, 저우언라이는 “미국은 2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나, 중국은 4,000여 년의 유산을 갖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중국의 도덕적 품격을 주장했다.

2017년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있어서 쌍방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사드문제를 두고 하는 말인 것으로 보인다.
  셋째, 상대방의 조치 또는 생각을 선악의 이분법 등을 통해 자신이 가치판단을 하면서 “상대방의 조치가 옳지 못하고 잘못되었다”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압박해 나간다.

중국은 각 국가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자신만의 주장을 한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옳고 그름’의 프레임이 설정된다. 사드문제와 관련 중국 관리는 2017년 “중국은 한국이 사드의 ‘잘못’을 수정한 뒤, 양국관계를 건강한 발전의 ‘올바른’ 궤도로 이끌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2012년 센카쿠 영유권분쟁으로 중국과 일본은 최악의 관계를 맞았다. 이와 관련, 2014년 중국 외교부장은 일본 외상과의 회담에서, “양국관계의 개선을 위해서, 일본은 ‘잘못된’ 행동을 시정하고, ‘올바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넷째, ‘우호관계(친구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의무감을 부과한다.

일본과 중국은 2008년 ‘전략적 호혜관계’라는 ‘이익’이 포함된 표현으로 양국관계를 새롭게 정의했다.

이는 ‘우호외교’의 틀에 의존하는 양국관계는 좋은 관계의 환상을 계속 가지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일본 측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상해탄’이라는 중국 TV 드라마에서, 조폭 두목인 주인공의 부하가 일을 실수하여 주인공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자, 주인공은 “우리는 형제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부하는 감동하여 이 말을 듣고 있다.

중국인들은 ‘친구’와 ‘꽌시(關係)’는 중국외교의 처세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지도자들은 친구를 버리지 않는다는 명성을 위해서라면 약간의 대가도 기꺼이 치른다. 닉슨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직후 여기저기서 외면당할 때 마오쩌둥은 그를 초청했다.

  다섯째, 의도적으로 공허하고 과장된 말을 통해서 상대방에게 공포를 심어 넣는다. 마오쩌둥은 냉전 시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의 군사적 능력을 의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강대국에 대해 심리적인 대등함을 실현했다.

중국이 미국과 소련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마오는 “핵전쟁도 불사해야 하며, 3억 명의 중국인이 죽는다고 해도 시간이 가면 전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72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상해 코뮤니케 초안을 협상 시 중국은 무리한 요구를 했다.

하지만 저우언라이는 중국이 허풍과 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 측에게 솔직하게 언급했다. 그는 미국 측에게 웅변조의 “‘공허한 허풍’에 신경 쓰지 말고, 중국의 실제 행동을 잘 관찰하라”고 조언한 것이다.

중국통 언론인인 데니스 브라드워즈는 말한다. “중국인들의 의식적인 과장법에 현혹되어 중국의 전술이론이 주로 격렬성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오히려 얼음같이 차가운 논리를 포함하고 있다. 중국인들 스스로는 그들의 목청 높은 외침과 냉엄한 사실과를 결코 혼동하지 않는다.”

  여섯째, 과거의 중화질서를 현재에도 이웃국가들에게 적용하려고 한다. 한국의 사드 배치와 관련, 중국은 한국에 경제보복을 취하고 ‘3불’의 약속을 받아갔다.

중국의 이러한 조치는 사드문제 자체보다도 “소국(한국)이 대국(중국) 이익을 크게 침해했다”는 것이었고, 한국의 전적인 순응을 원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시진핑 주석과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주석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했다”고 언급했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방중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파격적으로 환대하면서도 ‘우리가 형님, 너희가 동생’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했다고 한다.

중국 당국은 ‘시 주석의 훈계를 듣는 김 위원장’ 이미지를 선전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일곱째, 중국인이 자신을 합리화하며 옹호하는 선전전과 협상술은 집요하고 강력하게 보인다.

하지만 중국은 동시에 실용주의적 사고를 갖고 행동하고 있다. 키신저는 자신이 만난 중국 지도자들이 ‘현실을 중시하는 실무형 자기중심주의자’이며, 중국외교는 모험주의, 낭만주의 또는 선의가 아니라, “논리적인 자기이익”에 의해 수행된다고 보고 있다.

한편,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는 중국인들은 세계에 대해 중국 중심적인 관념을 갖고 있지만, 놀라울 정도로 융통성이 있고 상황이 요구할 때는 양보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본다. 중국인들은 일본인들과는 달리 정치적으로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정전협상에 참여했던 백선엽 장군도 중국인들이 노련한 현실주의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중국인은 명분에 휘둘리지 않고 늘 현실적인 면을 먼저 고려했다. 전투와 협상에서 중국은 우회와 기습, 매복과 포위로 나타났고, 북한은 경직되고 직선적인데 반해, 중국은 곡선에 가까웠다.”

1972년 중국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중대현안인 대만문제를 뒤로 놓아두었다. 덩샤오핑은 대만 통일시기의 질문에 대해, “100년 이후를 보고 준비할 것”이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 그리고 1978년 덩은 일본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센카쿠문제는 다음 세대에게 해결을 맡겨두자”고 언급했다.

  여덟째, 중국인은 은유(metaphor)를 많이 활용한다.

2000년대 초 주유엔 중국대사였던 왕광야는 안보리에서 좀처럼 먼저 발언을 하지 않고 암시나 에두르는 화법을 사용하며 종종 침묵을 무기로 사용했다. 중국인은 입을 굳게 닫음으로써,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중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너무 종종 행동을 하면,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의 신빙성을 떨어지게 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인들은 가타부타 남의 의견에 선뜻 동조하지 않으며, 좋거나 싫거나 표정에서 일단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차이니즈 스마일(Chinese smile)’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중국인이 보여주는 ‘살짝 입가에 맴도는 미소’로서 외국인들은 그들의 속에 어떤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중국인들은 심리전과 협상술을 통해 과장된 논리와 차가운 현실을 자유롭게 왕복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데 있어 여러 개의 얼굴을 보이면서 접근한다. 이러한 중국의 여러 개의 얼굴을 대하는 것은 우리에게 버거울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과 중국 간 국력의 비대칭으로 인해 양국 간에 협상을 할 때 우리에게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협상은 사람들 간에 구체적으로 하는 것인 만큼 중국인의 성격과 처세술의 특징이 무엇이며, 한국인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경우 서로 간에 좋은 협상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피지기 할 때, 우리의 단점을 극복하고 우리의 이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해당 칼럼은 본 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연상모 총영사는 주니가타 총영사, 주상하이 부총영사, 주일본 공사참사관, 외교부 중국과장, 서울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위원을 역임하고, 성신여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현재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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