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외교광장] 북한 핵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
[SPECIAL-외교광장] 북한 핵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
  • 최병구 전 대사
  • 승인 2020.04.08 15: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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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구 전 대사
최병구 전 대사

 

우리 국민들 사이에 북한 핵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다.

먼저, 북한이 핵을 가지려는 목적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많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이 살아남기 위해 핵을 가지려는 것이라고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핵은 북한에게는 생존카드라고 했다.

북한은 비핵화 선결요건으로 군사적 위협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을 내세우는데, 이는 주한미군 철수와 미국의 핵무기・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을 의미한다. 북한이 이런 조건을 내세우는 것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이 요구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은 핵이 있어야 생존이 보장된다고 믿는데 핵이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북한이 만난을 무릅쓰고 핵을 만들어 낸 데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으려는 목적이다. 김정일은 일찍이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마음 놓고 통일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한바 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얼마 전 북한의 핵 보유 목적이 단지 미국의 군사행동을 억지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많은 핵탄두를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므로 한반도 적화 통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에는 북한이 동족에게는 핵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핵무기는 사용하기가 어려운 무기이다. 핵무기를 사용하면 북한의 경우에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핵을 갖고 있는 쪽은 갖고 있지 않은 쪽에 대해 전략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예컨대, 북한은 한반도 전쟁과 평화의 조건을 강요할 수 있다. 이럴 때 핵이 없는 한국은 북한에 대해 양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2010년 연평도 포격과 같은 도발이 있더라도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아래 유지되는 평화는 위장된 평화, 굴종적인 평화다. 최근 들어 북한은 우리 정부를 심하게 조롱하곤 하는데, 이 배경에는 아마도 핵무장 완성에 따른 자신감도 작용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또 ‘통일이 되면 핵이 우리 것이 될 텐데 왜 구태여 없애려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어도 남・북한 관계가 좋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북한 통일전선부는 2018년 1월 “민족의 핵, 정의의 핵 보검을 북남 관계의 장애물로 매도하려는 온갖 궤변과 기도를 단호히 짓부수어 버리자”라고 한 적이 있는데, 북한 핵이 ‘민족의 자산’이라는 것은 기만이다.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불안하고 위험한 일이다. 핵무기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또는 오판으로 대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인들 가운데는 북한에 선의를 베풀면 비핵화에 진지하게 나올 것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2월 “우리가 잘하면 북한도 우리에게 잘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잘하면 핵도 포기하고…”라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도 2018년 7월 “저희가 선의를 보인 만큼 북한도 비핵화에 진전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런 생각은 근거 없는 기대에 불과하다. 태영호 전 북한공사는 “한국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가장 오해하고 있는 것은 북한을 선의로 대하면 핵도 내려놓고 남북 교류도 잘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며, 과거 70년 간 한국이 북한을 선의로 대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는다.

북한에 선의를 베풀면 북한도 진지하게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과거 경험에도 반한다. 국가 간 충돌이 선의로 해결된 사례가 없다. 특히 독재자의 경우에는 상대방이 보이는 선의를 ‘나약함’으로 인식하고 더 공격적이었다. 히틀러가 그랬다. 따라서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등의 선의를 계속 베풀면 비핵화가 진전될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미・북 관계가 정상화되면 북한 비핵화가 보다 용이해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기대난망이다. 무엇보다도 언제 수교가 가능해질지 알 수 없다. 또한 북한은 내심 대미 관계 정상화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미 투쟁을 정통성 유지 수단의 하나로 삼아왔고 평양에 미국대사관이 들어서는 것은 체제안전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본래 미국에 대해 깊은 불신과 두려움이 있다. 북한 지배층에게 개방은 ‘트로이 목마’와 같은 것이다. 정권 생존을 위해서는 미국이 계속 적대 세력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이런 심리는 한국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북한은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개혁·개방으로 유도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흡수통일하려는 모략책동”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하면서 북한의 경제적 번영을 비전으로 제시했는데, 김정은은 이를 ‘독 묻은 당근’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2019년 8·15 경축사에서 남북 협력을 통해 평화경제를 건설하자고 했을 때 북한은 바로 다음 날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노릇”이라고 일축했다.

끝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핵 문제를 미・북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북핵 문제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다. 우리가 북핵 방어를 위한 사드 배치에 단호하게 나서지 않았던 것이나, 북핵 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던 일, 남북 관계 진전을 비핵화 진전과 상관없이 추진하려는 것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물론 북핵 문제는 한국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를 미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는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 즉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만 상대하려는 전략을 용이하게 해줄 뿐이다. 북핵 문제에 관한한 한국은 미국과 시종 하나가 되어 북한을 대해야 한다.

최병구 대사는 주미국총영사, 주노르웨이대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외교안보』(2017), 『외교의 세계』(2016) 등이 있다. 편집자주: 필자의 견해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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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 2020-06-25 18:45:09
북한은 절대존엄 을 비판하면 반드시 피를 보게 하는 집단 이므로 1인 지상 만인 지하의
사이비 유일사상을 없애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