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3 ] 기억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3 ] 기억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20 02: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코올의 섭취가 우리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음주가 사람의 뇌나 기억력에 미치는 주제에 대해서는 조건에 따라 서로 상반된 연구결과가 나타나고 있어 흥미롭다.

출처 : brainfacts.org  ⓒ 데일리경제

일반적으로 알코올은 적당히 섭취하면 기분과 자신감을 고조시키고 사람과의 사이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등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일정한 수준을 넘는 음주는 양의 과다를 떠나 뇌 자체에는 좋지 않다. 간에서 분해되지 않은 알코올은 뇌로 흘러 들어 뇌의 신경회로를 교란시키고 우리가 흔히 필름이 끊긴다(black out)고 표현하는 단기적 기억상실증인 ‘선행성 기억손상’ 증상을 유발한다. 이는 알코올이 뇌로 가는 산소의 공급을 방해하고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을 차단하여 학습과 기억정보를 저장하는 해마의 기능에 손상을 입히면서 뇌세포와 시냅스의 파괴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알코올의 지속적인 흡수가 증가할수록 해마의 부피가 급속하게 줄어들어 필름 끊김 현상은 더욱 빈번히 발생한다. 또 알코올은 우리 뇌의 의사결정 및 감정의 조절을 담당하는 전 전두엽의 기능을 억제해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우리 몸의 세포는 손상되어도 대부분 재생되지만 1조개가 넘는 인간의 뇌세포는 대부분 태어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완성되어 그 이후에 손상되는 세포는 복구되지 않고 그저 예금을 까먹듯이 감소하기만 한다.

출처 : theconversation.com  ⓒ 데일리경제

그 중 기억세포는 140억개 정도되는데 가만두어도 자연적으로 하루에 10만개씩 죽어가서 70세가 될 때쯤 에는 20억개가 넘는 기억세포가 소멸한다. 여기에다 알코올을 흡수하면 기억세포의 파괴는 가속화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의 남용은 알코올성 치매를 비롯한 모든 형태의 치매 발생위험을 3배나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특정 조건에서의 적당한 음주는 기억력을 오히려 증진시킨다는 여러 연구가 있다. 이러한 특정한 조건이란 새로운 정보를 학습한 후 바로 술을 마시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럴 경우 음주를 하지 않은 사람보다 기억력이 확연히 향상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그 이유는 술을 마신 후에는 뇌에 새로이 입력된 정보가 알코올의 영향으로 뇌에서 제대로 통합되지 못하고 휴식을 갖는 효과를 주어 뇌의 기억프로세스에서 해마에 대한 간섭현상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술을 마신 경우에는 뇌에 들어온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보다 용이하게 전환되는 것이다. 이를 ‘역행성 기억증강’이라 부른다. 

출처 : 브레인미디어  ⓒ 데일리경제

그리고 음주가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또 다른 경우는 레드 와인을 적당한 수준으로 마셨을 경우이다. 레드 와인이나 각종 베리 류에 함유되어 있는 황산화물질의 일종인 레스베라트롤이 뇌의 혈류를 개선하고 해마를 활성화시켜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기억력 감소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적당히 마시는 와인은 여러가지로 좋은 역할을 한다.

기억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자주 문학이나 예술작품의 소재가 된다. 

출처 : amazon.ca  ⓒ 데일리경제

BBC가 선정한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25위에 오른 메멘토란 영화가 있다. 인셉션, 인터스텔라와 같이 생각을 많이 하게하는 영화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0년도 작품이다. 주인공은 아내가 살해되던 날의 충격으로 10분 이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이다. 주인공이 복수를 하기위해 범인에 관한 단서를 잊지 않게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찍고 심지어 몸에 문신을 하면서 기억을 유지하도록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여기서 기억이라는 요소는 극을 구성하고 이끌고 가는 주요한 장치이다. 주인공에게 있어 기억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미래의 행동을 인도하는 등대이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스페인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루이스 부뉴엘의 말이다.

기억의 상실은 실존적이고도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 한 어머니와 아들이 있다. 그런데 어머니가 치매를 앓아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 어머니에게 아들은 어떤 존재이며 혈연은 어떤 의미일까? 어머니에게 아들의 존재는 없는 것이다. 다행히 아들이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들에게는 여전히 어머니는 존재한다. 하지만 아들마저 기억을 잃는다면 이 두사람은 어떤 사이인가? 두사람에게 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두사람이 기억자체를 완전히 잃었다면 이 두사람에게는 어떤 자아가 남아 있을 것인가? 이 들은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또 기억은 물리학적인 명제이기도 하다. 양자물리학의 파동방정식과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오래 전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생명체는 기억을 통해 본연의 삶을 획득하고 살아있는 한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반면 생명체의 죽음은 기억의 끝이다”이라는 말로서 기억의 물리적 본성을 설명한다.

 세상은 순간적인 사건의 조각들이 기억이라는 철사줄에 묶여 있다. 기억은 이러한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에 일어날 사건의 방아쇠를 당긴다.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복수할 생각이 생길까? 음표들의 집합인 아름다운 음악도 기억이 이를 꿰어 엮고 있기에 음악이 된다. 기억이 연결되지않는다면 각각 따로 노는 의미 없는 하나의 음표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이 죽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다른 누구에게 존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존재는 계속되고 또 재현된다. 기억은 다른 사람의 뇌 혹은 기록이나 다른 방법으로 저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그 사람은 죽어도 여전히 존재한다. 기억이 아닌 다른 형태의 기록에 의해 존재가 재현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DNA이다. 41억년에서 42억년쯤 지구상에 첫 생명체가 생긴 이래 생명체는 DNA로 기록된 기억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를 재생산하여 왔다.  

물론 완벽한 기억이 항상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초단위로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 환자는 무엇을 듣거나 볼 때 미세한 내용 하나하나가 모두 생각나 집중을 할 수 없을 뿐 더러 고통스러운 기억까지 고스란히 리플레이 된다. 이러한 경우 망각은 축복이다. 영구적인 기억상실이 아닌 일상적인 망각이나 건망증은 정상적인 기억과정의 일부이다. 기억은 모든 경험을 사진처럼 선명하게 저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한번씩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듯 뇌도 망각을 통해 사소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정보는 제거하고 핵심적인 내용만 보관한다. 최근에는 심지어 기계학습과 인공지능도 적당한 망각이 있어야 추가적인 학습과 환경의 변화에 더 잘 적응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남으로부터 ‘잊혀질 권리’도 때때로 중요한 사항이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일상적, 일시적 망각이 아니 영구적 기억의 상실이다.    
사랑도 기억의 집합체이다.

첫키스만 50번째 포스터  ⓒ 데일리경제

“첫 키스만 50번째”라는 영화에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 주인공이 자고 나면 매일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기억을 잃고, 남자는 늘 처음 만나는 것처럼 여자에게 프로포즈 한다. 여기에서 사랑이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어떤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나의 기억에서 그 사람이 지워졌다면 나에게 있어 그 사람은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기억에서 내가 사라졌다면 나는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실재에 관한 문제이다. 양자물리학의 평행우주론에서는 어떤 계기로 선택되어진 무수한 경우가 각각 무수한 수의 다중우주를 만든다고 한다. 서로의 기억에 없는 사람은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보고싶은 사람이 있어도 바빠서 만날 수 없다면 메신저로 간단한 안부라도 전하자. 안부는 기억을 유지하고 기억은 우리가 살아 있음을 상기시킨다. 기억은 우리가 이 우주에서 서로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기억은 바로 생명이다.  끝. 

 


[목요기획]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