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김우중, 세계경영 강조한 '원조 샐러리맨 신화'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김우중, 세계경영 강조한 '원조 샐러리맨 신화'
  • 배원숙 기자
  • 승인 2019.12.10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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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우중 전회장/사진 출처=나무위키
故 김우중 전회장/사진 출처=나무위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지난 9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김우중 회장은 1936년 대구 출생으로,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만 30세인 1967년 대우를 설립한 후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 위의 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  20조원의 다국적 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창업 5년만에 100만 달러 수출을 기록했으며, 이후에는 사업 범위를 세계시장으로 돌렸다. 특히 중동붐으로 엄청난 수익창출을 이루어내며 불과 10여년만에 대한전선, 동명목재, 쌍용그룹 등 여타 쟁쟁한 기업들을 제치고 현대그룹, 삼성그룹, 럭키그룹에 이은 4대 재벌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전경련에 따르면, 김우중 전 회장의 대우는 1990년대 세계경영을 기치로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 유수의 글로벌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당시 대우의 수출규모는 1998년 기준 한국 총 수출액 1,323억불중 대우 수출액이 186억불로 약 14% 규모로 한국 총 수출액의 10%에 달했다.

1963년 한성실업에 근무하면서 국내 최초로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켰으며, 창업후 수출만으로 회사를 초고속으로 성장시켜 '대우신화'라는 신조어와 함께 샐러리맨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설립했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이후 김회장이 이끈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가 됐다. 1976년 한국기계(대 우중공업)와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을 인수, 단기간내 경영정상화를 이뤄 한국의 중화학산업화를 선도했다.

같은 시기 에콰도르(1976년)에 이어,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터를 닦았다. 1980년대 무역·건설부문을 통합해 ㈜대우를 설립(1982년)하고 그룹화의 길에 들어선 후, 자동 차·중공업·조선·전자·통신·정보시스템·금융·호텔·서비스 등 전 산업의 내실을 갖춰 세계진출을 본격화했다.

1999년 해체 직전, 대우는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법인·지사망, 국내 10만명, 해외 25만명의 고용인력을 토대로 해외 21개 전략국가에서 현지화 기반을 닦고 있었다. 당시 자산총액은 76조7,000억원, 매출은 91조원(1998년)에 달했다.

 1983년에는 국제상업회의소에서 3년마다 수여하는 이른바 '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기업인 을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수상했다. 1989년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펴내 6개 월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세계경제포럼 (WEF)의 자문위원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김회장은 외환위기 와중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 장을 맡아 경상수지 年 500억불 흑자 달성, 금모으기운동 등 경제회생을 위해 노력했다. 2010 년부터 마지막 봉사라 여기며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양성사업에 매진, 베 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4개국에 1,000여명의 청년사업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재벌 2위까지 올랐던 대우의 내실이 부실해지면서 결국 1999년 8월 26일, 어음 만기 사태를 이기지 못하고 워크아웃에 내몰리게 되고, 대우자동차 또한 부도 이후 2000년에 북미와 유럽에서 최대 실적을 거두며 좋은 수익을 거두었음에도 결국 2002년에 청산되었다.
 
김 전회장은 2006년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의 형을 구형받았고 2007년 말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사면되었다.

만약 대우그룹이 외환위기 당시에 위기를 잘 타개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 현대를 제치고 삼성과 재계 서열 1~2위를 다투는 대기업이 되었을 것이라는 후일담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전경련은 10일 김 전 회장의 별세에 대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라며 "냉전이 끝나자 가장 먼저 동유럽으로 달려가 세계경영의 씨앗을 뿌리셨고, 중남미, 중국, 베트남, 아프리카 등 당시 왕래도 드문 낯선 땅에 가장 먼저 진출해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알렸다"고 치하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씀처럼 세계를 누비며 한국을 알린 회장님의 노력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영토는 한층 더 넓어질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전경련은 이날 논평을 통해 "열정적인 경영철학이 여전히 우리 경제계에 큰 발자취로 남아있다."면서 "금융, 건설,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우리 주력산업에서 굴지의 기업을 이룩하였고, 그 기업들은 현재도 우리 경제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장 앞서서 개척했던 기업가 정신은 경제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귀감이 될 것"이라며 추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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