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영감독의 '고성방가'> 징기스칸의 후예들
<서민영감독의 '고성방가'> 징기스칸의 후예들
  • 오석주 기자
  • 승인 2009.09.04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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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연극 연출가 선생님 덕분에 몽골 예술단 전용 공연장에서 몽골 전통 음악, 기예, 무용 등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구성된 공연을 보게 되었다. 1년마다 새로운 팀으로 구성하여 매년 한국에서 공연을 한다고 한다. 공연은 아주 재밌고 놀라웠는데 그에 비해 입장료가 너무 싸다는 느낌을 받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지원이 있을 거라는 주변의 얘기에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었다.

저녁에는 우리 일행들과 공연단이 어우러져 맥주를 마시고 노래와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중 몇몇 여성은 우리나라 연예인 못지않게 미모가 출중하여 우리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예술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분들도 많아 비전문가의 시각으로 봐도 우리나라 방송이나 무대에 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예술단원들이라 역시 노래와 춤도 좋았고 젊은 단원들은 외모도 우리와 분간이 어렵기 때문에 마치 우리나라 클럽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다. 기예를 펼친 귀엽고 어린 소녀들은 우리의 초등학생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이었다.

그런 흥겨운 자리가 끝나고 그들과 아쉬운 이별을 한 후 숙소로 돌아와 우리 일행들끼리의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공연을 보게 해주시고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신 연출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말씀 중에 마음을 씁쓸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었다. 한국이 몽골보다 잘 산다고 몇몇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막말을 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은 비단 몽골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어 버린 황량한 허허벌판에서 오늘날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은 분명 기적에 가까운 일임에 틀림없고 외국인들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분명 외국인들은 우리의 잠재력과 능력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잠시 간과하고 있는 지난 역사의 편린들이 있다. 가난했던 우리의 아버지들과 삼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찌는 듯한 더위와 사막의 모래 폭풍을 견뎌내며 중동에서 노동자로 일해서 가정 경제와 국가 경제를 일으키는데 큰 몫을 했고 서양인들이 기피하는 광부로 수많은 엄마와 이모, 고모들이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갖은 고생을 이겨내며 외화를 벌어 들였다.

어디 이뿐인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전세계 곳곳에서 각종 차별과 천대를 받으며 다양한 일들을 해서 외화를 벌어들이고 가정을 지켜 냈다. 100여년 전 일이 아니고 불과 몇 십년 전 일이다. 아니 어쩌면 현재도 진행형인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좀 못사는 나라 사람들을 무시할 정도로 우리들이 그렇게 강하고 엄청난 부자인가? 설사 아무리 부자라고 가정해도 외국인들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인가?

몽골은 역사상 가장 넒은 영토를 정복한 징기스칸을 만든 나라이다. 그렇게 위대했다는 알렉산더도 이룩하지 못했던 위업이었다. 비단 정복한 땅의 크기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징기스칸은 영토만 확장한 것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길을 열어서 무역과 문화를 소통하게 하는 세계사에 있어 실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만드는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이다. 물론 지나친 잔인성으로 인한 부정적 평가도 없지 않겠지만 이루어낸 업적을 본다면 세계사의 위대한 인물 중 한명임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다문화 가정을 포함해 100만이 넘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방송사들은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외국인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전과 달리 이젠 우리나라 사람들도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외국인을 봐도 그리 낯설어 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갑자기 다가와서 길을 물어보면 당황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겠지만...

이젠 단일 민족이라는 강박에서 조금 벗어나 그들과 이웃으로 친구로 가족으로 더불어 살아야 한다. 아니 어차피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 대세이기 때문에 따라야만 한다. 만일 우리 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미국이나 잘 사는 유럽인들한테도 막말하고 무시할 수 있겠는가? 잿더미 속에서 외국의 원조를 받으며 겨우겨우 위기를 넘겨 마침내 기적을 이루어 냈던 우리 민족은 분명 위대하다. 하지만 처절했던 우리의 지난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들이 지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더 강해져야 하고 더 멀리 달려가야 한다.

‘자이언트’ 라는 너무나 멋진 영화에서 최고의 캐릭터로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영원한 반항아 제임스 딘은 이런 말을 했다. ‘부드러운 자만이 진실로 강한 자다’ [데일리경제][보험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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