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의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인재교육]인공지능시대의 공부법"실패를 배워라" (2)
[김용권의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인재교육]인공지능시대의 공부법"실패를 배워라" (2)
  • 김용권 교육전문위원
  • 승인 2018.03.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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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먹고 자라는 성공

노벨상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두 번 상을 받은 사람은, 영국의 프레더릭 생어(Frederick Sanger, 화학상 2번),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 화학상과 평화상)과 존 바딘(John Bardeen, 물리학상 2번), 그리고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과학자 마리 퀴리(Marie Curie물리학상과 화학상) 네 명이다.

이 중 마리 퀴리는 퀴리 부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퀴리 부인은 1903년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을 발견하여 노벨물리학상을 처음 받는다. 그리고 1911년 방사성물질인 라듐을 발견하여 두 번째로 노벨화학상을 받는다. 퀴리 부인이 피치블래드 광석으로부터 라듐을 분리하는데 4년이라는 시간 동안, 5,677단계의 농축과정을 거쳤다.

위인들의 실패 사례는 참으로 많다. 위인들의 성공은 실패를 극복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실패를 많이 한 위인이라면 전구를 만들기 위해 거의 1만 번을 실패했던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는 1919년에 '캔자스시티 스타' 신문사에서 해고될 때 편집장으로부터 ‘상상력이 부족하고 쓸 만한 아이디어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토이스토리를 감독했던 존 래스터(John Alan Lasseter)는 말이 많다고 디즈니에서 쫓겨났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살아 있는 동안 약 900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판매한 그림은 1점뿐이었다. 그것도 친구에게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판매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살아 있을 때 인정을 받지 못하고 파리의 미술계에서는 그의 작품을 조롱까지 했었다.

조앤 K. 롤링(Joan K. Rowling)은 나라에서 주는 기초생활비 1,5000원으로 일주일을 생활하는 돈 한 푼 없는 이혼녀였다. 남편의 폭력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조앤 롤링은 1993년 11월 결혼한 지 1년 1개월 만에 4개월 된 딸만 데리고 무일푼으로 집을 나왔다. 영어 교사를 하던 포르투갈에서 여동생이 살고 있는 영국의 에딘버러로 왔지만, 영국에서의 생활은 노숙자 다음으로 가난할 정도로 매우 열악했다. 영국의 명문대학인 엑서터 대학교(University of Exeter)에서 프랑스 고전문학을 전공했던 조앤 롤링이 고등학교 불어교사가 되기 위한 길을 갈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지 않으면 평생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글을 계속 쓰겠다는 것은 가난한 생활을 계속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가난도 조앤 롤링의 꿈을 막을 수 없었다. 대학생 때도 판타지소설을 좋아해서 1,000쪽이 넘는 ‘반지의 제왕’을 너덜거릴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던 조앤 롤링이었다.

일정한 수입이 없어서 허름한 단칸방에서 때로는 굶기도 했고 아기 먹일 분유가 부족하면 물을 많이 섞어 먹이기도 했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유모차에 태워 산책했고, 아이가 잠들면 집 근처에 있는 엘리펀트 하우스(Elephant House) 카페 구석에서 1990년 여름부터 써왔던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썼다. 조앤 롤링은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었다. 열차가 4시간이나 지연되었는데 그때 문득 해리 포터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해리 포터를 쓰기 시작했다. 인쇄할 돈이 없어서 8만 단어나 되는 글을 타자기로 일일이 입력하며 5년 동안 책을 썼다.

책을 출판하기 위해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를 찾았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름도 없는 미혼모가 쓴 책이 오죽하겠는가 하는 생각부터, 어린이 책으로는 내용이 너무 많다는 의견 등 다양한 이유로 12군데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

그러던 중에 만난 크리스토퍼 리틀(Christopher Little Literary Agency)이라는 저작권 대행업체가 ‘블룸즈버리’라는 소규모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성사시켰다. 블룸즈버리 출판사의 편집자는 원고를 읽기 전에 자신의 8살 된 딸 ‘앨리스 뉴턴’의 반응을 보았다. 원고를 읽던 딸 앨리스가 대단히 재미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해리 포더와 마법사의 돌’은 1997년 6월 500부를 인쇄했다. 원고료로 1,500파운드(약 230만원)이었다. 5년 동안의 가난을 견디며 받은 원고료를 받아든 조앤 롤링은 아이의 신발을 사줄 수 없어서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아이에게 맞는 신발을 사 줄 수 있어서 매우 행복하다고 했다.

15,000원으로 일주일을 살아야 했고 돈이 없어 굶기도 많이 했지만, 하루에 2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1995년 첫 원고를 마치고 1997년 처음으로 발간된 책이 나온 지 10년 만에 7권의 시리즈를 완성했다. 책이 나올 때마다 최고 판매기록을 올리면서 영국 여왕보다 재산이 많은 큰 부자가 되었다.

조앤 롤링은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오랜 시간 지독할 정도의 가난과 어려움을 견디어 왔던 결과는 위대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성서 다음으로 제일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

“실패는 우리 삶의 군더더기를 걷어내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이상 허세를 부리지 않고 제 자신을 직시하게 되었으며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직업에 제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제가 다른 분야에서 성공을 거뒀더라면 진정 제가 원하는 분야에 온 힘을 쏟으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략) 밑바닥을 보았기 때문에 그 위에 제 인생을 다시 세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저만큼 비참한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생의 실패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모든 경험을 거부하고 죽은 것처럼 살지 않는다면 말이죠. 죽은 것처럼 살겠다면 그 자체로 이미 실패한 인생이지요. 실패를 겪으며 저는 더 단단해졌습니다. 시험에 백번 붙어도 단단해지지는 않습니다. 실패를 겪어야만 비로소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2008년 하버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조앤 롤링이 한 연설 중에서-

실패가 만든 발명품

3M의 기업문화는 독특하다. 3M은 35개 사업 분야에서 5만5,000개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1902년에 창립한 3M은 미국의 다국적 회사로, 사무용품, 공업용품, 의료용품 등 35개 사업 분야의 55,000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3M을 대표하는 제품은 의외로 실패로 탄생한 제품이다. 바로 포스트잇(post-it)이다.

1968년 화학자 스펜서 실버(Spencer Silver)는 강력한 접착제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접착성이 강한 접착제가 아닌 어떤 표면에 붙였다 떼어내도 자국이 남지 않는 접착성이 아주 약한 접착제를 만들었다. 생각과 달리 실패한 작품이지만, 특이한 성질의 접착제를 개발하는 공법을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며 1970년 3월 9일 특허까지 출원했다.

몇 년 후 3M 회사에 다니고 있는 아트 프라이(Art Fry)가 교회에서 성가를 부르다 성가책을 떨어트리게 되었다. 성가책이 떨어지면서 책갈피를 해 놓았던 종이까지 빠지게 되자, 스페서 실버가 개발한 접착제가 생각났다. 그래서 ‘15% 룰’ 시간을 활용해서 아트 프라이는 스펜서 실버와 함께 포스트 잇 개발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1974년 드디어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3M 회사의 CEO는 예산까지 지원하고 개인의 자금까지 제공하며 계속 도전해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포스트잇은 1980년이 되어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미국의 포춘 잡지는 ‘20세기의 위대한 발명품 99가지’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미국 AP 통신사는 ‘20세기 10대 발명품’의 하나로 포스트잇을 선정했다.

실패가 오히려 놀라운 제품을 탄생시킨 사례는 많다. 과자로 많이 먹는 칩스(Chips)도 실패에서 탄생한 제품이다. 1853년 뉴욕 사라토가 스프링스(Sagatoga Springs) 레스토랑 주방장 조르지 크롬(George Crum)은 손님에게 제공한 감자튀김을 여러 번 퇴짜를 맞았다. 화가 날 데로 난 조르지 크롬은 감자를 얇게 썰어서 튀긴 후 소금을 많이 뿌려서 손님에게 제공했다. 칩스는 손님의 칭찬과 함께 이렇게 탄생되었다.

천연 라텍스[latex nature]를 제조하고 있던 토마스 아담스(Thomas Adams)는 번번이 실패하고 지쳐있었다. 문득 남아 있던 천연 라텍스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어봤다. 천연 라텍스의 씹히는 느낌이 매우 좋았다. 그래서 토마스 아담스는 천연 라텍스에 과당을 첨가해서 1888년 ‘츄잉 껌’이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한다.

1905년 소다주스를 만들던 11살짜리 프랑크 엠퍼슨(Frank Epperson)은 깜박하고 나무막대기를 소다 주스 그릇에 넣어놓은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소다주스가 나무막대기와 함께 얼어있었다. 나무막대기를 잡아당겨 얼어있는 소다주스를 빨아 먹어보니 맛있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아이스깨끼라고 불리던 아이스캔디[Popsicle]다.

1878년 발명가 에디슨이 설립한 GE(제너널 일렉트릭)의 CEO 제프리 이멜트(Jeffrey Immelt)가 2005년에 개최한 컨퍼런스가 있다. ‘획기적 상상’이라는 이름의 컨퍼런스는, GE의 30여개의 계열사 제품 중에서 10개의 대표적인 실패작을 뽑아서, 실패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기 위한 자리였다. 실패를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배우려는 자세가 발전과 성공을 가져온다.

헨리 포드(Henry Ford)가 1903년 창업한 자동차 회사 포드(Ford)에도 위기가 있었다. CEO 앨런 뮬러리(Alan Mulally)가 2006년 취임하면서 임원들에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녹색 테이프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은 노란색 테이프를, 상황이 안 좋은 것에는 빨간색 테이프를 붙이라고 했다. 첫 임원회의 때 대부분의 임원들이 자신들이 맡고 있는 프로젝트파일에 녹색 테이프를 붙여가지고 왔다. 앨런 뮬러리 CEO는 현재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인데도 성공적이라 판단하고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실패를 인정하고 드러내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임원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젝트파일에 노란색과 빨간색이 붙은 프로젝트가 대거 등장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실패를 오히려 성공의 원동력을 활용하는 회사들이 있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 BMW에서는 물론 일본의 자동차 회사 혼다(HONDA)에서도 실패를 많이 한 직원을 뽑는 ‘실패왕’을 선발하고 있다. 3M에서는 직원들이 실수를 하더라도 인정해 주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맥나이트 원칙’이 있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마다 동료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있는 시간인 ‘Show and Tell Time’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직원이 실패를 하면 ‘실패파티’를 열어준다. 실패파티를 해주는 회사에는 인투이트(Intuit)라는 인터넷 회사도 있다. 인투이트에서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소프트웨어 제품이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으며 실패한 일이 있었다. 이때 스콧 쿡(Scott Cook) 회장은 실패 파티를 열어 오히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느라 고생한 직원들에게 격려상을 주어 격려했다. 그 자리에서 스콧 쿡 회장은 “실패작을 내놓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실패”라고 강조했다. 실패했을 때 실패한 상태에서 멈추면 실패가 된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문제점을 찾고 다시 도전을 하는 것만이 성공을 이루는 방법인 것이다. 가장 빨리 성공하는 방법에 대하여 IBM 창업자 토마스 왓슨은 실패율을 2배로 늘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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