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북한 간 정상회담 평가와 한국외교의 선택
러시아와 북한 간 정상회담 평가와 한국외교의 선택
  • 정태익 한국외교협회고문/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3.10.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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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북한은 지난 9월 13일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러시아에 모자란 포탄과 북에 없는 군사기술을 서로가 원했기 때문에 둘은 만났다. 부조리한 전쟁을 멈추지 않는 푸틴과 매번 실패하는 정찰위성기술을 받으려는 김정은의 갑작스러운 회동이 동북아를 불안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푸틴의 평양 답방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푸틴은 2000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후 5월 취임한 후 엘친 대통령과의 차별화되는 남북한 등거리외교정책을 취할 목적으로 2000년 7월에 첫 국외 방문국으로 북한을 선택했다.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움을 얻어내 일본에서 열리는 G-7회의에서 이를 공표함으로써 국제적 무대에 영향력 있는 리더로 등장했다.

푸틴의 여사한 행보는 테러국가 응징을 제일목표로 하고 있는 당시 부시대통령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 러시아가 G-8국가로 한동안 활동하는 발판이 되었다.

데뷔전의 성과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최근 한미일의 결속으로 미국과 양자동맹중심 동북아 질서가 더욱 강화되는 움직임에 대해 본인이 지속적으로 주창하는 동북아 다자질서 구축을 목적으로 북러관계의 밀월을 전략적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연출했다고 생각된다.

물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깊은 수렁에 빠져 존망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러시아는 최후 수단으로 핵 위협카드까지 꺼내 들었지만 아무도 그에 굴복하지 않았다.

북한은 세계 아홉 번째 핵보유국으로 성공했지만 ‘성공의 저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핵보유국이 되면 한국과 미국이 핵 위협에 굴복해 주한미국 철수와 한국의 복속이 곧 이룩되리라 믿었지만, 아무도 굴복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이룩되지 않았다.

벼랑 끝에 나란히 선 북한과 러시아가 돌연 손을 잡았다. 주된 이유는 북한의 대규모 포탄 보유량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지상전에서는 전차, 대포, 지뢰, 기관총 등 구시대 무기들이 대세다. 장기간의 소모전으로 양측 모두 포탄 부족이 심각한 가운데, 한반도가 이를 해결할 무기창고로 주목 받고 있다. 냉전종식 후 세계 군사력의 대대적 감축이 지난 30년의 평화기에 진행됐다. 유독 한국과 북한은 냉전시대의 군사적 대치를 계속하면서 수백만 발의 포탄을 비축했다. 러시아는 북한에 비축한 수백만발의 포탄에 관심이 많다.

북한은 포탄 공급 대가로 위성발사 기술, 극초음속 미사일, 핵잠수함 기술 등을 바라고 있다. 이는 우리와 미국의 안보에 직결된 사항이어서 윤석열대통령은 유엔연설을 통해, 미국은 정보기관을 통해 우려와 경고를 북한에 보냈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거래 정황이 뚜렷이 포착되었다. 북한이 러시아에 보낸 컨테이너 1,000개 가량이 지난달 8일~9일 나진항에서 러시아 두나이항을 거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통해 전방기지인 티호레츠크로 옮겨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러시아, 중국, EU 등 다양한 행위자의 개입과 관여, 강대국 간 위신과 독점적 영향력 확보 경쟁, 안보딜레마, 가치의 대립, 정체성 갈등과 영토할양 문제 등이 중층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이면에 숨겨진 이런 이해구조의 다층적 성격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법 찾기를 어렵게 하고 장기화를 시사한다. 장기화된 전쟁터에 공급할 무기거래는 복수의 대북결의 위반이다.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황에 영향을 줄 무기거래를 함으로써 전범대열에 섰다.

주러대사를 역임한 필자의 생각으로는 러시아의 대북 기술 제공은 북한의 대가지불 능력이 없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러북밀월 파장은 대러시아 무기제공을 자제하고 있는 중국을 자극하기 위한 목적과 한국의 대우크라이나 무기제공을 막고,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미국에 대하여 러시아가 북한을 통해서 동북아의 안정을 흔들어 미국을 곤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허세부리기(카드놀음의 블러핑 같은)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필자가 주러시아대사로 재직시 한러관계의 실질적 협력이 이루어질 때마다 북한은 견제 목적으로 고위인사의 모스크바 방문을 과대포장해서 대외선전하는 사례를 수시로 목격해 왔다. 그러나 안보에서는 방심은 금물이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현재 공산국가인 북한은 선전과 위장전술이 익숙한 국가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북한은 2022년 3월 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고 철군을 요구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는데, 벨라루스, 시리아 등 정권의 생존을 러시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국가 외에 러시아 침략을 두둔한 회원국으로는 북한 밖에 없었다.

비동맹 창설멤버인 북한은 비동맹 5대원칙을 60년 이상 외교정책의 금과옥조로 삼아왔다. 그런데 러북밀월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해도 된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침략을 옹호하는 것은 비핵화를 거부하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무력사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가 된다. 북한은 러시아가 고립무원의 궁지로 몰렸을 때 확실하게 편을 들어주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으로 북한을 지켜줄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핵 무력을 고도화해도 김정은 체제의 종국적 운명은 경제와 사상 전선에서 결판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전이후 두 번째 겨울을 앞두고 있다. 러시아에 유리한 겨울이 다가오면서 일부 서방국가 사이엔 회의가 번지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나라이자 친서방 노선을 확실히 했던 동유럽 슬로바키아의 지난달 총선에서 친러시아 성향 사회민주당이 1위를 차지한 후 ‘지원철회’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서방의 군사 균열은 헝가리, 폴란드, 라트비아 등이 카이우에서 열린 EU외상회의에 불참으로 가시화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놓고 공화`민주당이 내분이 벌어지고 있다. 내년에는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다. 선거결과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 양상이 달라져 우크라이나 전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러북밀월의 관계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소련해제 이후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을 한 국가이며, 우리는 1990년 수교이후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처 괄목할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온 국가이다.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러시아는 에너지와 식량 생산 면에서 미국과 비견될 수 있는 나라이며, 향후 한반도 통일에 유용한 나라임을 감안하여, 러북밀월 관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치교류가 당분간 소원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민간교류의 끈을 유지하여 훗날에 대비를 하는 지혜를 가져야한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 전쟁이 터지는 것을 보고 전쟁이 날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전쟁의 눈’은 정말 예리하다.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모두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스라엘 전쟁이 터지자 다음 순서는 중국`대만이고, 그 다음이 한반도라는 우려가 있다. 북한정권은 주민들 삶은 원시수준으로 팽개친 채 핵무기 개발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북한이 일부지역을 점령하고 핵무기로 강압전략을 구사하면, 남남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정파적 이해 관계를 떠나 위기상황에 대한 사전 논의가 있어야 한다. 또 워싱턴선언의 한미핵협의그룹을 통해 구체적인 대응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보안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전쟁을 각오하는 국민적 각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해당 기고문(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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