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간의 기술경쟁과 한국의 선택
미·중간의 기술경쟁과 한국의 선택
  • 신맹호 前주캐나다 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5.1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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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의 대중국 기술통제가 점점 더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 2.24 반도체 등 4개 소재・제품 공급선(supply chain)의 위험요소를 검토하고, 6개 산업분야에서 미국내 생산되지 않는 핵심상품・물질 현황을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3.31에는 2조 달러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4.12에도 반도체 공급자립을 위한 화상회의를 주재하여 기술경쟁에서 중국을 압도하고 중국 상품에 대한 의존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부과나 특정 중국기업・기술에 대한 수출입 규제를 통해 중국과 경제면에서 국지전을 수행하였다고 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전면적인 지구전을 준비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초당적지지 하에 추진되는 패권경쟁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중 양국의 긴장대립 관계는 어느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경쟁관계에서 미국이 특히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미래 경제 성장을 이끌 신기술(AI, 로봇, 양자컴퓨팅, 초고속이동통신기술 등)의 발전과 확산 속도가 이례적으로 빨라서, 한번 뒤떨어지면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기술들은 5G에서 보듯 군사・안보와 직결되어 있다. 화웨이가 5G 이동통신장비를 설치할 경우 미국은 안보가 사이버공간을 통해 직접 위협받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기술과 안보가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중 정부는 전략적 차원에서 민간경제에 보다 깊이 관여하면서 각자 기술을 발전시키고 상대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 노력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언젠가 여러 분야에서 두 개의 독립된 기술표준과 플랫폼이 등장하게 될 것 이다.

미・중 경제의 ‘탈동조화(decoupling)’ 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세전쟁을 시작한 3-4년 전 처음 거론되기 시작하였으나 너무 성급하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이제는 미국내에서 양당은 물론 심지어는 산업계에서도 일정부분 지지를 받고 있다. 사실 몇년전 시작된 화웨이에 대한 제재로 우리는 ‘탈동조화’를 이미 경험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으로 볼 때, 앞으로 첨단기술분야에서의 미・중 분리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다른 경제분야로도 일정수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에서의 미・중간 ‘탈동조화’가 진행되면 각자의 기술은 시장을 찾아 국제적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에 따라 기술 자체가 피아를 식별하는 리트머스 종이가 될 수 있다. 이는 2차대전 이후 심화되어 왔던 세계경제의 상호의존은 약화되고, 미・중 세력권이 서로 경쟁하는 ‘경제냉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중 기술경쟁의 국제적 확산은 이미 시작되었다. 쿼드(QUAD) 4개국(미국, 일본, 호주, 인도)은 3.12 정상회의에서 ‘핵심신기술실무반’을 만들어 신기술 개발협력과 함께 중국 상품에 대한 의존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일본은 2020.9월 호주, 인도와 ‘공급망탄력성계획(Supply Chain Resilience Initiative)’을 공표하여 중국을 대체할 공급선을 찾아왔는데, 앞으로는 이러한 노력이 쿼드 차원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4.16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경쟁력과 탄력성 동반자관계(Competitiveness and Resilience Partnership)”를 선언하고 첨단기술 개발협력을 선언하고 있다. 특히 6G 공동연구개발 등 구상에 구체적인 투자액까지 거론하고 있는 것은 인상적이다. 그 외에도 미국정부는 이미 ‘민감기술다자조치(Multilateral Action on Sensitive Technologies)’를 구성하여 대중국 기술통제를 국제적으로 협의해왔다. 금년 1월 구글 전 회장인 Eric Schmidt가 주재하는 ‘중국전략그룹(China Strategy Group)’도 중국과의 경쟁을 위해 한국 등 기술력있는 12개 민주주의국가(techno- democracies) 협력체(T-12)를 구성하고 서방상품 구매국가들에 대한 재정지원을 위해 국제금융기구를 설립하자고 제안하였다.

미・중 기술경쟁 ⟶ 탈동조화 가속화 ⟶ 국제적 세력화의 추세로 볼 때 한국은 미・중간에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4.12 반도체 화상회의에 삼성을 초청한 것은 이미 선택의 순간이 우리 발밑에 도달하여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중국과의 경제관계는 한국경제에 거의 사활적 요소인데, 미・중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우리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우리로서는 선택을 미루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그러한 고민이 최근 정의용 외교장관의 “미・중은 우리에게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발언(3.31)에 녹아 있는 것이다. 우리의 대책이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고려요소를 짚어본다.

첫째, 우리가 미・중 간에 선택을 해야 할지 여부이다. 미・중 관계는 단순하게 패권경쟁으로만 규정짓기 어려운 측면도 많아서 판단이 어렵다. 미・중은 경쟁관계이면서도 경제적으로 상호연관성이 깊고, 기후변화 등 세계적 현안 해결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복잡한 관계이다. ‘탈동조화’도 어느 정도 가능할지 불확실하다. 공급선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워낙 긴밀히 얽혀있기 때문이다. 컴퓨터칩 하나를 만드는데 부품이 70번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이다.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밀려 일정부분 양보하면 미국도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경제냉전’으로 세계가 이원화될 것으로 보는 것은 너무 도식적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첨단기술의 상당부분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탈동조화가 지속 심화될 것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미・중 경쟁이 일시적으로 미봉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엎드려만 있기에는 중국은 너무 큰 나라이며 기술이 패권경쟁에 결정적 중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미국이 구성하는 기술협력 국가그룹에 우리가 참여하지 못하여 입을 손실이다. 기술이 워낙 급속히 발전하고 있어서 한 발짝 뒤처지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에 결정적 장애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기를 유보하고 있는 동안, 일본은 미국과 6G 개발을 논의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차피 중국은 우리의 가장 큰 경쟁자이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동안 우리는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벌려놓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술・경제 측면의 양자적・다자적 협력 메카니즘에는 최대한 빨리 동승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일본 등의 반대가 있더라도 D10에는 우리가 적극 가입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쿼드 등 안보적 함의가 있는 협의체에는 바로 가입하기가 부담스러우면 산하 ‘실무반’에 먼저 가입하는 단계적 접근도 시도해 볼 만하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고려할 때 과실만 따먹으려는 접근은 한계가 있을 것이며, 정치안보 분야에서도 미국 쪽으로 더 다가서는 정책은 결국 필요하게 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미국을 선택한다고 하여, 우리 스스로 ‘선택’이라는 단어를 써서 “all or nothing”으로 규정지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선택’이라기보다는 미국과의 ‘동맹강화’ 혹은 ‘동맹 업그레이드’ 조치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업그레이드’ 한다면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남는다.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보복을 완화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을 하면서, 양국관계를 긴 호흡으로 세심하게 관리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외교와 인적교류, 레토릭 등 모든 채널과 외교적 기술을 동원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대중국 경제의존도를 차츰 줄여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중국에서 동남아나 본국으로 사업체를 옮기는 기업에 대해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도 이러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중국에 대해 절대우위를 가질 수 있는 전략적 기술분야를 키우면서, 중요품목에 대해서는 공급선의 일부분이라도 점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은 미국의 대중국 경쟁에서 필수적인 파트너이다. 한국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국가이므로, 미국으로서는 한・미・일 3각협력은 대중국 전략에서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미・일 3각협력은 우리가 피해나갈 수 없는 구도이며, 우리로서도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세력균형을 위해 반드시 일본이 필요하다. 우리가 국내정치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일본관계 강화 등 미국이 원하는 조치를 취하는 경우, 우리가 중국(혹은 북한)과의 관계를 적절히 유지하기 위한 카드를 얻어낼 가능성도 있다.

넷째, 우리에게 인도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도는 쿼드국가이므로 미국의 지원을 계속 받을 것이며 중국에 버금가는 큰 시장이기도 하다. 또한 쿼드가 반중국적인 방향으로 너무 경화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인도가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와 협력할 부분도 많이 있을 것이다.

(위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신맹호 대사는 외교부 부대변인, 국제법률국장, 주불가리아, 주캐나다 대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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