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63] 와인의 배달과 배달의 역사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63] 와인의 배달과 배달의 역사
  • 변연배 칼럼전문기자
  • 승인 2021.04.15 1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the daily dot/vinodelvida.com
출처:the daily dot/vinodelvida.com

 해를 넘어서도 계속되고 있는 팬데믹은 여행업계를 비롯한 여러 산업분야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와인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와인 산지에선 와이너리 투어가 취소되고 사람들의 모임이 제한되다 보니 많은 테이스팅 룸과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고 이에 따라 와인 매출도 급격히 감소하였다. 그러나 한쪽에선 다른 형태의 변화도 있었다. 온라인으로 와인을 직접 구매하여 집으로 배달 받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포브스지의 최근 보도를 보면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0년 1사분기에서 2사분기 사이에 미국에서는 소비자에게 직배달(DtC: Direct to Consumer)된 와인의 구매액이 2배 이상 늘었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도 2월까지 2달간만 보더라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직배달이 80%나 증가했다. 그리고 직배달 구매고객의 재구매율도 21%에 달했다. 특히 소규모 와이너리들의 지난 해 온라인 평균 매출액은 1.5배 늘어 와이너리의 테이스팅 룸을 통해 판매하는 매출액의 3배를 넘었다.

설립 이후 지난 8년간 온라인 플랫폼 기술기반에 주로 투자해온 주류 전문 배달 이커머스 업체인 드리즐리(Drizly)는 2020년 3월에서 5월의 3개월 동안에만 이전 10년간에 필적하는 성장을 했다. 그리고 와인업계나 다른 이커머스 기업들도 와인 직배달 IT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투자를 계속 늘이고 있다. 우버도 이러한 추세에 뛰어들어 드리즐리를 11 억달러에 인수한다고 지난 2월 발표했다.

이커머스를 통한 이러한 온라인 구매 추세의 증가는 Hard Seltzer(주: 알코올 도수 2~3% 정도의 과일 맛 나는 탄산음료로 영미권에서는 ‘Shandy’, 독일에서는 ‘Ladler’로 불림)의 부상, 와인 업체의 M&A등과 더불어 2021년 와인업계를 주도할 3대 변화로 꼽힌다.

또 한가지 새로운 추세는 와인을 한 잔 단위(wine-by-the glass)의 용기에 넣어 배달하는 신규 사업의 부상이다. 이 사업은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Vinebox’라는 회사가 2015년 처음 시작했는데 종류가 다른 와인 3잔을 각각 작은 병에 담아 박스 단위로 소비자들에게 직접 배달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와인의 가정내 소비증가 추세는 뚜렷하다. 2019년 대비 2020년 우리나라의 가구당 소비지출은 23% 줄었으나 주류 구매액은 오히려 13.7%나 늘었다. 전년 대비 주류 구매가 두 자릿수로 늘어난 것은 통계청이 통계를 잡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처음이다. 같은 기간에 식당이나 주점에서의 지출은 7.4%가 감소한 것을 보면 늘어난 주류 구매는 주로 집에서 소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류 중에서는 위스키 소비가 줄어든 반면 와인의 소비는 크게 늘었다. 와인은 수입액 기준으로 보아 2018년 2억4400만불, 그리고 2019년 2억 6000만불 정도이던 것이 2020년에는 3억3000만불로 껑충 뛰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온라인 구매가 증가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마트나 편의점에서의 와인 구매가 증가했다. 지난 해 대형 매장에서의 와인 판매량은 전체 주류 판매량의 약 30%를 차지하면서 맥주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인류가 우편 서비스가 아닌 주문에 따라 물건을 운송해 주는 배달이나 택배와 같은 형태의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다른 산업에 비해 역사가 그렇게 길지가 않다. 수천년 전 인류가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처음 전달한 것은 사람이 직접 달려가서 전달하는 구두 메시지나 편지였다. 기원 전 490년 그리스와 페르시아간에 벌어진 마라톤 전쟁의 승리 소식을 직접 달려서 아테네로 전한 페이디피데스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기원전 400년에는 페르시아에서 비둘기나 말이 처음 통신수단으로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도 원거리 통신이나 행랑의 수송에 아나바시(Anabasii)라 불리는 말을 이용한 운송수단을 사용했다. 하지만 달리기는 여전히   근대에 까지도 계속된 주요한 통신 수단의 하나로 사용되었다.

인류 역사 상 메시지가 아닌 물품의 운송이 처음 기록에 나타난 것은 4500년전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였다. 먼 곳에서 건설 현장까지 유료로 돌을 운반한 것이다. 그리고 배달보다는 교역의 형태이지만 1600년대 초에는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유럽 상류층의 요구에 따라 동남아의 향신료와 커피를 유럽에 공급한 것을 배달의 한 형태로 보기도 한다. 또 1800년대에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에서 직접 망고를 주문해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말이나 개, 낙타와 같은 동물의 이용에 이어 역마차, 유선통신, 기차,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 이메일, 무선통신 등 기술의 발전은 통신이나 운송수단에 급격한 발전을 가져왔다. 
통신의 발달은 50년전인 1973년 모토로라가 다이나택8000X라는 휴대폰을 발명한 이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고 혁신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특히 애플이 2007년 아이폰에 앱이라는 생태계를 들여온 후인 지난 15년 동안 세상은 IT 통신기술에 기반한 혁명적인 변화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통신 발달의 속도를 운송수단의 발달에 상대적으로 비교한다면 오늘 날의 자동차 크기는 성냥갑 크기로 줄고 게다가 거기에 100명이 탈 수 있을 거라는 비유도 있다.      

출처:nypost.com
출처:nypost.com

하지만 운송수단도 지난 100년 사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인류는 벌써 50년 전에 달에다 사람을 보냈고 이제는 상업적으로 우주에 사람이나 화물을 실어 나르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달 산업의 역사가 길지 않은 이유는 배달이 결국은 통신과 연계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달산업은 크게 유선통신 이전과 이후, 모바일 통신을 기반으로 한 앱 생태계 탄생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유선통신이 나타나기 전에는 주문 자체를 하기위해 사람이 직접 물리적으로 주문처를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배달을 위해 한 단계가 더 필요해 이중적인 비용이 들었다. 그러나 전화가 대중화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되자 배달산업은 급속히 발전한다.

1876년 그래함 벨이 전화를 발명했다고 발표한 후 1877년에는 최초의 전화선이 건설되었다. 그리고1880년에는 이미 미국 전역에 47,900대의 전화가 보급되었다. 1915년에는 미국과 유럽 대륙이 전화로 연결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송수화기가 하나로 결합된 전화기는 1940년대가 되어 나타났다. 전화는 사람이 직접 가게를 찾아 가지 않아도 주문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래서 전화 배달의 시대에는 전화번호부와 전단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초의 전화번호부는 1878년 발행된 1페이지짜리였는데 전화번호는 없고 단지 50명의 가입자 이름만 있었다. 교환원을 통하여 이름만 말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배달 사업은 1852년 미국의 웰스 파고 회사가 은행업과 함께 금이나 귀중품을 수송하면서 처음 시작하였다. 하지만 일반 물품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민간 운송업자가 없어 1792년 설립된 미국의 USPS나 독일의 도이치 포스트(DP)와 같은 국가의 우편시스템이 이를 담당했다. 현재의 대표적인 글로벌 운송사인 UPS는 1907년, TNT는 1946년, DHL은 1969년, Fedex는 1973년 설립되었다. 1994년과 1995년에는 이커머스 회사인   아마존과 이베이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이동통신의 발전을 통한 스마트폰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배달의 역사는 다시 한번 혁신적인 도약을 하게 된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탄생한 것이다. 플랫폼 비지니스는 모바일 환경에서 배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제공하면서 기존에 존재했던 배달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음식 배달의 역사도 세계적으로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사를 자랑한다. 이탈리아에서는 1889년 움베르토1세 국왕과 마르게리타 왕비가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피제리아 디 피에트로 에 바스타 코시(Pizzeria di Pietro e Basta cosi)” 라는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주문해 먹은 것을 음식 배달의 시초로 본다. 현대 피자의 아버지라 불리던 라파엘르 에스포지토(Raffaele Esposito)라는 요리사가 왕비를 위해 그 당시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마르게리타 피자는 이 일화에서 따왔다. 이 레스토랑은 “피제리아 브란디(Pizzeria Brandi)”라고 이름을 바꾸어 지금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음식 배달에 있어 우유 배달의 역사는 조금 더 빠르다. 미국에서는 1785년 버몬트에서 처음 우유배달이 시작되었고 유럽에서는 1860년에 영국에서 처음 우유배달을 시작했다. 일본도 우유배달을 빨리 시작했다. 에도 막부는 지방의 영주인 다이묘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영지와 지금의 도쿄인 에도에 매1년마다 교대로 체류하게 하는 ‘산킨코타이(參勤交代)’ 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1868년 막부가 끝나고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면서 에도에 머물던 다이묘들은 지방으로 돌아갔다. 하급 무사까지 포함하여 이들이 머물던 지역은 에도 전체 면적의 70%나 차지했는데 나중에 목장으로 바뀌었다. 1873년에는 들어선 대규모 목장이 7개나 되었다. 1877년경에는 여기서 생산한 우유를 도쿄 주민들에게 배달하기 시작했다. 

12세기 중국 송나라 시절의 화가 장택단(張擇端)이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라는 그림은 길이가 5m나 되는데 그 당시의 거리 풍경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림에는 550여명의 각종 직업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음식을 배달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모습도 있는데 앞치마를 두른 사람이 그릇이나 음식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상자를 들고 이동하는 장면이 있다.

17세기 일본의 에도는 인구가 100만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는데 그 당시의 패스트푸드인 오뎅, 덴푸라, 우동, 소바, 꼬치, 스시 등을 팔던 노점들이 우후 죽순처럼 새로 생겨났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찹쌀떡이나 메밀묵 장수처럼 거리나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음식을 팔았다. 이를 음식 배달로 보는 주장도 있지만 오히려 행상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으로 본다. 에도 시대 일본에는 또 장거리 달리기로 편지나 문서 또는 가벼운 행랑을 운반하는 ‘히키야쿠(飛脚)’라 불리는 직업이 있었다. 이들은 500km거리인 에도에서 교토까지60~80시간에 주파했다고 한다.  

인도 뭄바이에는 120년 전통을 가진 “다바왈라”라는 점심 도시락 배달 직업이 있는데 음식점으로부터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집에서 직접 도시락을 수거하여 자전거와 기차로 일일이 고객의 직장까지 배달한 후 식사가 끝나면 빈 도시락을 다시 고객의 집으로 배달하는 서비스이다. 하루에 평균 왕복 40만번의 배달이 일어나고 배달원이 대부분 문맹이라서 기술의 도움없이 글씨 대신 기호로 행선지를 표시하는데도 잘못 배달하는 실수율이 8000만건에 300~400건에 그칠 정도로 정확한 점이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음식배달 서비스라 하기보다는 그냥 물품 배송 서비스로 분류하는 것이 맞는다.       

명확한 기록 상으로는 전 세계를 통틀어 최초로 음식 배달이 이루어진 곳은 우리 나라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황윤석이 쓴 ‘이재난고(頤齋亂藁)’에는 황윤석이 1768년 7월에 과거시험을 끝내고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국내 최초 배달음식 조선시대양반해장국 "효종갱 "       출처 : 메뉴판닷컴
국내 최초 배달음식 조선시대양반해장국 "효종갱 "
출처 : 메뉴판닷컴

그리고 1700년대말에서 1800년대초에는 밤새 술을 마신 양반들이 통행금지가 풀리는 새벽에 배달하는 ‘효종갱(曉鐘羹)’이라는 해장국을 주문해 먹었다. 해장국집은 현재의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근처에 위치했는데 주문은 노비가 가게를 직접 방문하여 할 수 밖에 없었고 배달은 간혹 말을 이용하기도 했으나 주로 도보로 했다. 배달할 때는 국이 식지 않게 그릇을 솜으로 꽁꽁 쌓다. 그렇기에 아무나 시켜 먹을 수 없었고 가격도 비쌌다. 1880년대 진주에선 관아 기생들이 진주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1906년에는 명월관이라는 요리집에서 회식이나, 회갑연, 관혼상제용 음식을 배달했다는 기록이 있고,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20~ 1930년대에는 각종 탕과 냉면, 국밥, 비빔밥 등으로 배달이 확대되었다. 이때는 1931년 1월2일자 동아일보에 배달원의 일상이 소개될 만큼 이미 배달문화가 확산되었다. 신문에 따르면 배달원들은 대개 1시간에 20리를 달려서 배달한다고 했다. 20리면 8km이니 걸어서는 1시간 안에 가기 힘든 거리이다. 그 당시 가장 인기있는 배달 음식은 한국인들에게는 설렁탕과 냉면, 일본인에게는 메밀 소바였다.

1950년대 이후에는 중국 음식점에 주문하는 짜장면과 짬뽕이 가장 흔한 배달 음식으로 떠 올랐다. 1997년 IMF이후에는 창업 붐이 일면서 치킨 배달이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2010년에는 드디어 음식배달 플랫폼 회사인 우아한 형제들이 설립되어 “배달의 민족”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우며 IT기술을 기반으로 단숨에 우리나라의 모바일 플랫폼 음식배달 시장을 평정한다. 지난해 우아한 형제들은 독일의 딜리버리 히어로와 합병하여 싱가폴에다 합작회사를 세우고 지금은 아시아 지역을 공략하는 도전을 시작했다.  

2018년 820억 달러였던 글로벌 음식배달 마켓의 규모는 2024년까지 2150억불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음식배달 시장에서는 규모를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수합병 등의 합종연횡을 통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팬데믹 상황은 이러한 경쟁을 와인배달 시장에까지 확대하였다. 조만간 우리 나라에서도 와인을 한 잔 단위로 주문해서 마실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끝.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