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62 ] 포도의 품종과 와인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62 ] 포도의 품종과 와인
  • 변연배 칼럼전문기자
  • 승인 2021.04.01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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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는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다. 미국의 플로리다 자연사 박물관에는 6600만년전에 이미 포도나무가 지구에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화석이 전시되어 있다. 6600만년전이면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유성이 충돌하여 지구 생물의 75%가 절멸했던 제5 멸종기가 있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 이후를 신생대라 부르는데 특히 벌과 같은 곤충과 꽃, 속씨식물이 다시 크게 번성했다. 이로 보아 포도나무는 신생대 이전에 진화가 완료되어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의 연구를 보면 최초의 속씨 식물이 나타난 시기는 2억5천만년~1억4천만년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속씨 식물의 화석은 1억3천만년전의 것이다. 고고학적인 증거에 따르면 1억3천만년전에서 9천만년경에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속씨식물이 번성하던 시기이다. 지구상에 과일이 출현한 시기이다. 이와 함께 꽃가루를 옮기는 벌과 같은 꽃가루 받이 곤충도 함께 진화하는 공진화가 일어난다. 육지에는 꽃이 만발하고, 하늘에는 벌이 날아 다니고, 땅에는 개미가 기어 다닌 ‘꽃과 곤충이 함께 번성하던 시기’이다.

그후 7백만년전의 유적에서는 포도나무의 흔적이, 79만년전의 화덕에서는 포도씨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때는 포도를 단순한 과일로 섭취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가 와인의 양조를 위해 처음으로 포도나무를 경작한 것은 8000년전 중앙아시아의 조지아 지역이다. 그 이후 시기엔 포도나무나 와인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타난다. 성경에는 무려 441번에 걸쳐 포도와 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품종과 수령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포도나무 한 그루는 보통 3~10병 정도의 와인을 생산한다. 포도나무는 보통3년 정도 자라면 수확을 시작하는데 5~6년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와이너리들도 있다. 수령이 20년이 지나면 열매의 크기가 작아지고 수확이 감소하지만 와인의 풍미는 오히려 집중되고 깊어진다. 이 때문에 유명한 와이너리들의 포도나무는 보통 몇 십년이 넘는다.

inyourpo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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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이 120년이 넘는 포도나무들도 많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는 슬로베니아의 마리보에 있는데 1600년대에 심어져 현재 400살이 넘는다. 지금도 매년 35~55kg의 포도를 생산한다. 북동부 이탈리아에 있는 수령이 350년된 포도나무는 다른 젊은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를 블렌딩하여 아직도 매년 500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영국의 햄튼코트궁에는 영국의 조지3세때인 1768년에 심어져 현재 250세가 넘는 포도나무가 있다. 줄기의 길이만 무려 36m에 이른다. 2001년 가을에는 이 한 그루에서만 무려 383kg의 포도를 생산했다. 보통 와인 한 병에 1~1.2kg의 포도가 필요하니 포도나무 한 그루만으로380병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셈이다.

필록세라(Phylloxera)라는 해충은 포도나무에 극심한 피해를 주어 와인의 역사를 바꾸었다. 필록세라는 크기가 1mm 남짓하고 뿌리혹벌레과에 속하는 진딧물과 비슷하게 생긴 해충이다. 1년에 6~9회나 발생하여 유충과 성충이 포도나무의 뿌리와 잎에서 영양분을 빨아먹고 동시에 포도나무 뿌리에 황갈색의 혹을 만들어 뿌리가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할 수 없게 만든다. 이로 인해 포도나무가 고사하거나 포도알을 제대로 맺지 못하게 된다. 포도나무로 보아선   지금의 코로나 보다도 더 무서운 역병인 셈이다. 

필록세라로 인해 1860년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의 포도밭은 살아남은 포도나무가 없을 정도로 초토화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25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와인생산량의 60%가 감소했을 정도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이 해충은 원래 북미대륙에서 처음 발생했지만 현지에 있는 포도품종은 저항성을 가지고 있어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런데 토종 품종이 와인에는 적당하지 않아 유럽의 포도품종을 들여오면서 해충이 유럽 산 품종을 감염시키고 이어 대륙을 건너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신 대륙인 호주까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감염이 되었는데도 오직 칠레만이 지리상의 특성으로 인하여 참화를 피하였다.

필록세라는 역설적으로 저항성이 있는 미국산 포도나무에 접을 부쳐 어느 정도 극복을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완전한 퇴치법이 없을 정도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필록세라의 창궐은 유럽의 와인생산량을 급격히 감소시켜 와인과 이를 증류한 꼬냑이 귀해지자 비교적 저급주인 맥주와 또 이를 증류한 스코틀랜드산 위스키가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산지를 속인 가짜 와인도 범람하여 1855년 나폴레옹이 제정한 원산지 통제법(AOC)이 정착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오늘 날 유럽 산 와인들이 단일 포도품종을 라벨에 나타내지 않는 배경도 이와 관련이 있다. 오직 칠레 산과 호주 일부 지역의 와인만이 예전의 순수한 품종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요즘에도 유럽 산 와인을 “Old World”, 그 외 아메리카 대륙이나 호주 산 와인을 “New World” 와인으로 구분해서 부르는 것도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포도나무를 경작하는 과정에서 음악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한 와이너리는 포도원에 스피커를 설치해 포도나무에 모짜르트 음악을 틀어준다. 음악을 틀어주자 포도나무 넝쿨이 스피커 쪽을 향해 더 크고 튼튼하게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음악을 들려준 후에는 포도나무가 해충에도 덜 민감 해졌다고 한다.

칠레의 몬테스 와이너리는 숙성중인 와인통에다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이 와이너리는 음악이 와인의 숙성과정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들려주는 음악은 포도의 품종에 따라 다르다. 까베르네 쇼비뇽은 지미 헨드릭스나 폴 매카트니의 연주곡을, 반면에 샤르도네 와인에는 블론디나 티나 터너의 음악을 들려준다.        

사람들이 와인의 맛을 지각하는 과정에서도 포도 품종에 따라 음악이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웅장한 클래식 음악이 나올 때는 레드 와인인 까베르네 쇼비뇽 와인이, 생동감 있고 경쾌한음악이 나올 때는 화이트 와인인 샤도네이 와인이 높은 만족도를 얻었다. 반면 음악을 정반대로 들려주었을 때에는 평가가 25%나 낮았다.

우주에서 포도나무를 재배하는 실험도 하고 있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카베르네 쇼비뇽과 메를로 품종을 1년간 생육한 후 올 1월에 지구로 가져왔는데 중요한 생물학적인 변화가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자료는 향후 새로운 품종의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얼마전에는 인간의 몸에 기생하던 여드름균이 포도나무로 옮아가 완벽히 적응한 사례가 발견되었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온 사례는 많이 발견되지만 거꾸로 사람에게서 그것도 식물로 옮겨간   사례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thewinesni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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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알려진 포도 품종은 13000종에 이르고 양조용 포도만 1만170종 이상이다. 전 세계의 포도 생산량 중 57%가 와인용이고 식용이 36%, 7%는 건포도용이다. 이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와인용 포도 품종은 30여종 정도이다. 2018년 기준 전 세계의 와인용 포도 재배면적을 살펴보면 톱 20개 품종이 전체의50% 이상을 차지 한다. 그 중에서도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이 1위이다. 2위는 메를로, 3위가 템프라뇨, 4위 아이렌, 5위 샤르도네, 6위 시라, 7위 그레나슈 누아, 8위 쇼비뇽 블랑, 9위 피오 누아, 10위 트레비아노 토스카노이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포도 품종 몇 가지를 레드와 화이트로 나누어 간단히 소개한다. 참고로 비슷하게 보이는 영어의 ‘Variety’는 포도품종을, ‘Varietal’은 단일 품종으로 만들어진 와인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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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와인
. 카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가장 널리 알려진 레드 와인 품종이다. 보르도의 주 품종이며 주로 메를로나 카베르네 프랑과 블렌딩한다. 나파 밸리에서는 단일 품종(Varietal)이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탄닌이 강한 풀바디 와인인데 오크통 숙성을 통해 다양한 풍미가 더해진다.

. 메를로(Merlot): 역시 보르도의 주 품종이지만 이탈리아나 캘리포니아 등지에서도 광범위하게 재배된다. 보르도에선 보통 카베르네 쇼비뇽이나 카베르네 프랑과 블렌딩한다.

. 시라/쉬라즈(Syrah/Shiraz): 프랑스에서는 시라, 호주에서는 쉬라즈라고 부른다. 호주 와인의 주 품종이다. 이름이 비슷한 ‘프티 시라(Petite Sirah)’는 서로 별 관련이 없다. 호주의 쉬라즈가 프랑스의 시라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고 탄닌이 강한 편이다.

. 피노 누아르(Pinot Noir): 프랑스 보르고뉴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허용된 레드 와인 품종이다. 오리건 주의 윌라메트 지역과 뉴질랜드에서도 주 품종으로 재배한다. 재배하기가 까다롭다. 껍질을 벗겨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도 하는데 블랑드 누아르(Blanc de noir)샴페인은 피노 누아르 껍질을 벗겨 만들었다.

. 말벡(Malbec): 원래 남부 프랑스가 원산지인데 현재는 아르헨티나의 멘도자 지역이 주 생산지이다. 짙은 보라색이 특징이며 탄닌은 중간 정도의 수준이다.

.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프랑스의 로아르 밸리와 보르도 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그 외 재배 지역으론 미국 뉴욕 주의 핑거 레이크 지역이 있다. 보르도에선 카베르네 쇼비뇽과 주로 블렌딩한다.

. 카르메네르(Carmenere): 또 다른 카베르네 계통의 품종이다. 원래 보르도 지역이 주산지이나 현재는 칠레의 ‘보르도 스타일’ 와인으로서 더 유명하다. 칠레에서는 한 때 메를로 품종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 그레나슈(Grenache): 프랑스의 남부 론 지방이 주산지이다. 그 외 프랑스의 랑그독 루시용 지역과 스페인 북부, 호주 남부, 캘리포니아의 센트럴 밸리에서도 재배된다.

. 진판델(Zinfandel): 캘리포니아에서 카베르네 쇼비뇽 다음으로 많이 재배되는 레드 와인 품종이다. 서부의 골드러쉬 시대에는 캘리포니아의 보르도 와인이라는 명성과 함께 광부의 와인으로 불렸다. 이탈리아의 프리미티보 (Primitivo) 품종과는 유전적으로 같은 품종이다.

. 템프라니요(Tempranillo): 이베리아 반도가 원산지인 스페인 토착 품종이다. 스페인 리오하(Rioja) 지역이 주 산지이며 스페인 와인을 대표한다. 카베르네 쇼비뇽과 피노 누아의 중간적인 맛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 산지오베제(Sangiovese):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토착 품종으로 중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역이 주산지이다.

화이트 와인
. 샤르도네(Chardonnay): 프랑스 동부의 보르고뉴 지역이 원산지이지만 재배하기가 쉬워 지금은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광범위하게 재배된다.  ABC(Anything But Chardonnay)라고 할 정도로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품종이다.

. 쇼비뇽 블랑(Sauvignon Blanc): 프랑스 보르도 지역이 원산지이고 로아르 밸리 지역과 뉴질랜드에서 주로 재배된다. 그 외 캘리포니아와 칠레, 호주, 남아프리카 등에서 역시 광범위하게 재배된다. 캘리포니아의 로버트 몬다비는 퓌메 블랑(Fume Blanc)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부르기도 했다.

. 리즐링(Riesling): 독일의 라인강 유역이 원산지인 토착 품종이다. 샤르도네, 쇼비뇽 블랑과 함께 3대 화이트 와인 품종으로 불린다. 오스트리아, 캘리포니아, 뉴욕, 미시간, 캐나다, 남아프리카, 호주의 남부지역, 중국에서도 재배된다. 비달(Vidal)과 함께 대표적인 아이스 와인용 품종이다.

.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피노 누아르 품종의 변이 종이며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토 지역이 주 산지이다. 피노 그리(Pinot Gris) 로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샴페인에는 피노누아, 피노 뫼니에, 샤르도네 품종이 주로 사용된다.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은 도오로강 유역이 주산지인 토우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이라는 토착 품종을 주로 사용한다. 스페인의 세리주는 화이트 와인 품종인 팔로미노 피노(Palomino Fino)가 주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 개발된 “청수”라는 고유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포도품종이 어떠하든 모든 와인은 포도로 만들어진다. 끝.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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