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54 ] 전쟁과 와인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54 ] 전쟁과 와인
  • 변연배 칼럼전문기자
  • 승인 2020.12.1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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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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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TV에서 몇 십년간 단골로 방영되는 영화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크리스마스 용 영화가 또 따로 있는데 대표적인 영화가 “나홀로 집에(Home Alone)”라는 시리즈이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1990년 제1편이 처음 나온 후 2012년까지 총5편이 제작된 코메디 영화로 세계적인 히트를 했다. 그 중 1992년 개봉된 제2편에서 주인공인 케빈 역의 매컬리 컬킨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 들어오면서 검은 롱 코트를 입은 중년 남자에게 호텔 로비가 어딘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 당시 플라자 호텔의 주인으로서 잠깐 카메오로 출연한 이 사람은 24년 후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된다.

올해 11월 재선에 도전해 조 바이든에게 패했으나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각 종 소송을 벌이면서 승복을 거부하고 있는 도날드 트럼프이다. 몇 개의 경합주에서 끝까지 치열한 개표전쟁을 거쳐 선거 후 4일이 지나서야 언론이 조 바이든의 승리를 선언했는데 지금은 개표결과가 대부분 확정되었지만 트럼프는 근거도 없이 선거부정을 이유로 아직도 자신의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언론 발표 후 몇 일간 각국의 정상들이 당선 축전을 보내는데 있어 눈치를 보는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언론이 당선을 발표하자 마자 바로 바이든 후보자에게 축전을 보냈다. 물론 트럼프는 크게 화를 낸다. 그런데 이러한 에피소드의 이면에는 이번 글의 주제이기도 한 전쟁과 와인에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airforcedistrictof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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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은 4년간 17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항복으로 종전한지 100주년이 되는 때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근처에서 기념식이 열렸고 미국, 러시아, 독일 등 70여개국의 지도자가 참석하였다. 그리고 콩피에뉴 숲의 종전기념관에서 마크롱과 독일의 메르켈이 포옹을 하면서 화해의 의식을 치르고는 기념식이 끝났다. 하지만, 기념식에서 자신이 주역이 되지 못하고 마크롱의 연설내용에도 불만이 있었던 트럼프는 제1차대전에서 전사한 전몰자 묘소와 마크롱이 주재하는 파리 평화포럼에 불참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후 마크롱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던 트럼프는 드디어 1년 후인 작년 11월 프랑스 산 와인에 25%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다. 이로 인해 관세부과 후 불과 1달만에 프랑스 와인의 대미수출액은 반 토막 나면서 프랑스 와인산업에 큰 충격을 준다. 그러자 마크롱은 미국의 IT기업에 100%의 디지털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고, 이에 대해 다시 트럼프는 와인, 치즈, 핸드백 등의 프랑스산 수입품에 추가적으로 100%의 보복관세를 매기겠다고 대응한다. 한마디로 와인을 두고 무역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마크롱에게는 조 바이든의 당선이 당연히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이번 갈등은 45년전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압도하여 언론에서 와인전쟁으로 불렀던 ‘파리의 심판’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전쟁이다. 

트럼프는 개인적으로도 와인과 관련이 깊다. 2011년에는 버지니아주에 있는 클루기 에스테이트를 인수하여 트럼프 와이너리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현재는 그의 둘째 아들인 에릭 트럼프가 소유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 중국이 와인을 두고 또 다른 무역전쟁을 일으켰다. 호주가 미국 주도의 쿼드에 참여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호주산 와인에 대해 최대 200%의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중국은 호주 전체 와인 수출액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 호주로서는 큰 타격이 예상된다. 그러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호주산 와인수입 켐페인을 벌이는 등 현재는 두나라 사이의 와인전쟁이 또 다른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포도나무는 1천만년전쯤 과일에서 자연 발효된 알코올을 인류가 우연히 마시기 시작한 이후인 700만년전쯤에 지구상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79만년 전의 구석기 유적에서 포도씨가 발견된 적이 있지만 인류가 와인을 처음 양조한 것은 그 보다 훨씬 뒤인 8000년전쯤으로 중앙아시아의 조지아 지역이었다. 이후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집트, 그리스를 거쳐 기원전 8세기경에는고대 로마제국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와인이 로마제국으로 전파되면서 2000년전쯤에는 그 당시 세계 최강의 국가였던 로마의 정복전쟁과 함께 유럽 전역으로 급속하게 확대된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와인을 보급품으로 지급한 기록은 이미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 시대에 나타난다. 이와 같이 와인의 역사에 있어 전쟁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에 얽힌 재미있는 와인 이야기도 많다. 로마제국의 와인소비는 기원전에 이미 가짜와인이 넘쳐날 정도로 대중화되어 있었다. BC 60년에 열린 쥴리어스 시져의 승전 축하연에 그 당시 기준으로 61년 된 ‘BC 121년 빈티지’ 와인이 서빙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로마가 정복지를 넓히고 점령지에 장기간 주둔하면서부터 로마군은 전략적인 목적과 식수문제의 해결을 위해 숲을 개간하고 그 자리에 포도원을 만들었다. 정복전쟁 초기에는 로마군도 와인을 토기인 암포라 단지에 담아 힘들게 전쟁터로 직접 수송하였다. 하지만 정복지가 방대해지고 주둔기간이 길어지면서 와인 공급을 현지 직접 조달로 공급방식을 바꾸게 된다. 현재의 보르도와 보르고뉴, 랑그독, 프로방스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산지를 비롯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유명 와인산지는 대부분 그 당시 로마군이 주둔하였던 군기지가 있던 곳이다. 로마는 이 과정에서 오늘날 프랑스인의 조상인 갈리아인에게 와인을 전파하는 대신 갈리아인으로부터는 와인을 저장하는 오크통 제조기술을 획득하기도 한다. 

로마군은 병사 당 하루 1리터의 포스카(Posca)라 불리는 와인을 지급하였는데 사실 와인이라 하기 보다는 알코올 성분이 거의 없는 식초에 가까울 정도로 쉰 와인이었다. 이는 보관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이질이나 배탈 등을 막기위한 의료적인 목적도 있었다. 행군중에는 따로 2L정도의 물을 공급하여 쉰 와인을 물에 타 마셨다. 커민, 백리향, 아니스 등의 향신료나 소금을 첨가해 오늘날의 에너지 음료 같은 역할도 했다. 포스카는 기원전 2세기에 로쿨루스 장군이 처음 로마군에 보급한 이래 기원후 1세기 무렵에는 로마군의 정규 보급품이 되었다.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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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중에는 좀더 많은 하루 2리터에서 3리터의 와인을 지급했는데 알코올을 정상적으로 함유한 쉬지 않은 와인을 함께 지급하였다. 3L이면 현재의 750ml 병을 기준으로 4병이나 되는 꽤 많은 양이다. 전투에서 병사들의 공포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포스카에 대해선 카르타고의 명장이면서, 후에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침공한 한니발 장군의 아버지이기도 하였던 하밀카르 장군이 언급한 내용도 기록에 남아 있다. 그가 1차 포에니 전쟁중인 BC 244년 봄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적국인 로마 병사들이 소량의 쉰 와인만 마시고도 전혀 지치지 않는다고 칭찬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포스카는 거리에서도 팔 정도로 군인 외의 일반 서민들도 즐겨 마시는 음료였다. 그리고 성경에도 포스카가 등장하는데, 마태복음 27장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골고다 언덕을 향할 때 로마 군인이 쉰 포도주를 헝겊에 적셔 갈대에 꽂아드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시기에는 로마가 아니어도 술은 병사들의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 지급되는 전쟁의 필수 보급품이었다. 로마 외의 나라에서는 와인 외에 맥주가 제공되기도 했다. 특히 3열로 된 전투대형의 맨 앞줄은 적 앞에서 달아나지 않도록 의례 만취된 병사들을 배치했다. 이 때문에 일부 병사는 막상 전투에서는 술에 취해 전투도 해 보지 못하고 쓰러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후 백년전쟁이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전쟁을 비롯 유럽의 모든 전쟁에서 와인은 계속 전쟁의 필수 보급품이 된다.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할 때에도 배에 와인을 가득 싣고 갔다.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두고 기원전 264년에서 기원전 146년에 걸쳐 120여년간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서 세 차례나 계속된 포에니 전쟁은 와인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에 승리한 로마는 와인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전리품을 챙긴다. 카르타고 최고의 농업학자인 마고가 쓴 전 28권의 포도나무 재배법을 포함한 농업기술서를 획득했는데 나중에 이는 로마의 와인산업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 당시 인구가 100만명에 달했던 로마에서는 1인당 하루 평균 0.5리터의 와인을 마실 정도로 와인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로마와 폼페이 같은 도시에는 와인을 파는 바와 레스토랑이 즐비했고 노예에게도 와인을 배급할 정도였다. 이를 보면 오늘날 이태리 사람들이 와인이 없는 식사는 식사를 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된다.        

1337년~1453년 사이 프랑스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사이에서 100년이 넘게 대를 이어 지속된 백년전쟁도 와인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전쟁도 애초 와인 때문에 일어났다. 영국의 헨리2세가 보르도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을 통해 부를 축적하자 프랑스의 필리프6세가 예전에는 프랑스 땅이었던 보르도와 아키텐 지역을 프랑스에 강제로 복속시키려고 했는데 이것이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전쟁은 1429년 성녀 잔다르크가 혜성과 같이 나타나 전세를 반전시키면서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고, 오늘날 보르도 와인은 프랑스의 와인이 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두나라 사이의 교역이 중단되자 유럽의 와인산업은 큰 변화를 맞이한다. 특히 주요 수입처를 잃은 영국은 포르투갈의 도우루를 통해 와인을 수입한다. 이러한 배경은 한편으론 원거리 수송과정에서의 부패를 막기위해 브랜디를 넣어 알코올을 강화한 포트 와인과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가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이 유럽 정복전쟁에 나서 1812년경에는 전 유럽의 70% 이상을 점령했다. 그러나 영국은 여전히 프랑스와 대치하고 있었고 나폴레옹은 대륙 봉쇄령을 내린다. 영국으로의 와인수출이 공식적으로 봉쇄된 후에도 프랑스와 영국간에는 비공식적인 무역이 상당 부분 계속되었으나 영국은 더욱 포르투갈에 의존하게 된다. 게다가 봉쇄령을 어긴 포르투갈의 도우루를 프랑스가 공격하자 포트와인 가격이 폭등한다. 이로 인해 영국은 스페인의 세리주에 눈을 돌리게 되고 세리주가 영국인에게 친숙해지는 계기가 된다. 이 시기 나폴레옹은 현재의 프랑스 와인 등급제도인 AOC를 정착시킨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도 와인 역사에 많은 이야기거리를 남겼다. 루이14세 때 프랑스는 병사들에게 하루 0.5리터의 와인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추가로 0.5리터는 반값에 제공하였는데,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보급량을 1인당 하루 2리터로 늘렸다. 전쟁 중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병사들의 와인 섭취에 대해 실험을 하였다. 독일은 병사들의 음주가 전투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반면 프랑스는 맥주를 마신 병사보다 와인을 마신 병사의 전투력이 더 높다고 결론을 내렸다. 참호속에서 추위에 떠는 병사들을 위해 와인을 데운 뱅쇼가 지급되기도 했다. 전후 프랑스는 제1차대전의 승리가 와인 때문이었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 당시 격전지였던 상파뉴 지역의 참호가 있던 곳에서는 유골과 함께 와인병이 출토되기도 한다. 미국의 해리 트루만 대통령도 1차대전에 대위로 참전하였는데 종전 후 귀국하면서 프랑스 와인을 대량으로 가지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2차대전과 관련해서는 프랑스 와인과 나찌, 히틀러의 별장인 독수리 요새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1938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전쟁위협을 느낀 프랑스 당국은 1939년 가을 와이너리들에게 군인들까지 동원하여 그해 포도 수확을 앞당기도록 독려한다. 그리고 이듬해 봄인 1940년이 되자 우려대로 히틀러는 프랑스를 침공한다. 이 때 프랑스는 독일군의 눈에 뛰지 않도록 전국 각처에서 대대적으로 고급와인들을 숨기는 작업을 한다. 파리의 한 고급 레스토랑은 10만병을 벽을 헐고 숨기기도 했다. 그중 특급 와인 2만병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프랑스를 점령한 나찌는 유명 와인산지에 ‘와인총통’이라는 직책까지 만들어 프랑스 와인을 수탈했다. 그리고 전쟁 말기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연합국이 남 프랑스에 상륙하여 독일로 진격하자 드골의 명령을 받은 20명의 프랑스 특수임무대가 작전을 개시한다. 그들은 미군의 지휘를 벗어나 독수리 요새로 불리는 히틀러의 별장을 접수한다. 그 곳에는 1929년산 샤토 라투르를 비롯, 샤토 무통 로칠드, 로마네 콩티, 샤토 뒤켐 등 50만병의 특급 프랑스 와인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아랍과의 6일 전쟁이 끝나자 점령지인 갈릴리 호수 옆의 골란고원에 포도밭을 일구었다. 이때 탄생한 이 일대의 와이너리들은 현재 이스라엘 와인산업의 중추로 성장하였다. 와인의 품질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와인과 관련된 전쟁에는 곤충과 사람과의 작은 전쟁도 있다. 1546년 프랑스의 생장드모리엔에서는 농민들이 포도원의 포도를 먹어 치운 딱정벌레를 상대로 교회에 고소를 한 사건이 있었다. 판결을 맡은 신부는 딱정벌레도 사람과 같이 하느님의 피조물인 이상 포도를 먹을 수 있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자 농민들은 딱정벌레에게 포도원 대신 초원 사용권을 주고 초원에 있는 우물은 농민들이 사용하겠다고 다시 중재안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딱정벌레의 변호사는 의뢰인인 딱정벌레가 포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농민들의 중재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거부하였다. 농민들은 패소했다.

와인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매개체인데 와인 때문에 전쟁이나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커다란 아이러니이다. 끝.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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