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51 ] 음식과 와인(II): 농경의 시작과 인류문명의 발전(2)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51 ] 음식과 와인(II): 농경의 시작과 인류문명의 발전(2)
  • 변연배 칼럼전문기자
  • 승인 2020.10.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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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도구를 사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수렵, 채취 생활은 상당 기간 이어져 이후 250만년 동안 계속된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후에도 19만년 동안은 인류의 수렵, 채취생활에 본질적인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1만1천년전 드디어 인류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는 인류사의 대변혁이 일어난다. 1만1천년이라는 기간은 지구 역사 46억년을 하루 24시간으로 축약한다면 0.2초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인간이라는 종은 지구 역사상 유래 없는 혁신적인 도약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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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길들이기(domestication)라는 것을 통해 야생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가축화 하는 등 떠돌이 수렵, 채취 생활을 포기하고 한 곳에 정착하여 농경을 하는 ‘농업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3만년전에 일찌감치 개를 길들였던 인간은 농경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즈음에는 100여종의 식물을 길들였다. 동물의 사육은 식물보다는 까다로워 148종의 대형 육상 동물 중 순종적이면서 성장이 빠르고 새끼를 잘 낳는 동물 14종만 길들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하마는 영양성분이 풍부한 젖을 생산하지만 순종적이지 않아 가축화 할 수 없었다. 일부 민족에게는 아직도 결핍된 인간의 유당 소화 유전자는 가축의 젖을 소화하기 위해 이때 생겼다. 인간이 이렇게 길들인 가축은 인간을 포함하여 현재 전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류의 96%를 차지한다.

농업은 그 당시 지구의 7개지역에서 각각 조금씩 다른 시기에 독립적으로 시작해 점차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지구 최초의 농업은 1만 1천년전 중동지역의 초승달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콩, 보리, 밀을 경작하고 이어 양과 염소등을 가축화 하였다. 중국은 양자강 지역에서는 9천5백년전에 쌀을, 9천년전에는 조를 재배하였고, 7천5백년경에는 돼지와 닭을 기르기 시작했다. 황하지역에서는 7천년전에 유채, 대두를 재배하고 옷을 짓기 위해 마를 길렀다. 사람 얼굴이나 동물의 모습 또는 기하학적 무늬를 새긴 토기의 사용도 일반화되었다. 오늘날 중국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인 돼지고기와 유채의 일종인 청경채는 이때부터 시작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해양 도서 지역으로 이동한 인류도 농경을 시작하여 8000년전에는 파푸아 뉴기니에서도 농업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인류가 자연에서 우연히 얻은 알코올이 아닌 의도적이고 인공적으로 양조한 술을 마시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인류 최초의 술은 9천년전쯤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2005년 중국 후난성에서 발굴된 9천년전의 토기그릇에서 그 증거가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인류 최초의 술은 요즘으로 봐도 상당히 고급인  쌀과 꿀이 재료였다.

인간은 곧 와인도 양조한다. 한 때는 6천년전의 소아시아 지역이 와인의 기원지로 알려졌으나 근래 들어 중앙 아시아의 조지아 지역에서 8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와인 양조 기구와 토기들이 발견됨으로써 와인의 기원이 조지아 지역으로 굳어졌다. 이어 인류는 맥주를 만들어 마신다. 맥주는 6천년전에 수메르인들이 처음 마시기 시작했다. 나중에 바빌로니아로 전해진 맥주는 다양한 곡물을 이용해 5천여년전에 이미 2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맥주를 양조했다. 4천5백년전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축조를 위해 동원된 인부에게 급료로 맥주를 제공하기도 했다.
 
맥주를 양조한 시기보다 조금 앞선 6천5백년전에는 인류가 곡물을 빻아 최초로 빵을 만든다. 이로서 인류의 음식문화는 중국의 쌀을 이용한 술의 양조와 함께 통곡물을 변형하여 전혀 다른 형태의 음식을 만드는 단계로 한 단계 더 발전한다.

인류가 술을 처음 양조한 때에는 이미 1천만년을 거쳐 인간의 유전자에 알코올분해 효소가 자리잡은 후였다. 하지만 이는 자연으로부터의 소량섭취에 적응할 수 있는 정도였고, 이에 비해 인류가 직접 양조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기간은 9천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9천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몸이 대량의 알코올에 적응하도록 진화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과음한 다음날 여전히 숙취에 시달린다.  

중남미도 조금 늦었지만 농업을 시작한다. 중앙 아메리카에서는 6천5백년전, 남미에서는 5천5백년전에 독립적으로 농경이 시작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은 농업의 시작도 늦었지만 길들일 수 있는 식물과 동물도 많지 않았다. 중미에서는 옥수수, 콩, 개, 칠면조만을 길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안데스 산맥이 있는 남미에서도 감자, 땅콩, 퀴노나를 재배하고 가축은 라마, 알파카, 기니 피그를 사육했다.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가축인 말, 소, 닭, 돼지, 양, 염소는 아메리카에 없었다. 특히 수송과 교통에 있어 중요한 동물인 말이 없었다. 서부극에는 흔하게 나오는 말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나타난 것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때이다. 이 때 스페인 사람이 멕시코 남부에 처음 들여왔다. 북미 대륙에는 1630년이 되어서야 코만치 인디언을 통해 전해졌다.

1만년 전에 1천만명 정도였던 세계인구는 5천년전에는 5천만명이 되고 인구가 5만명이나 되는 도시가 중동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출현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와 함께 다른 3개 지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눈에 띄는 문명의 발달이 있었다.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황하유역의 황하 문명으로 세계 4대 문명으로 불린다. 이 시기에는 중앙 집권적인 국가기반이 마련되고 농경 및 목축과 함께, 기호문자, 함무라비법전, 태양력, 측량술, 기하학, 공중목욕탕 등의 위생시설이 나타난다. 이집트의 초기 왕조도 이때 생긴다. 음식문화도 정착 문화와 함께 곡창지대인 문명의 발상지를 따라 먼저 발전한다. 사실 유목민족이 요리기구나 그릇을 가지고 다니면서 다양한 요리나 음식문화를 발전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요리의 재료가 풍부한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에서 음식문화가 다양하게 발전한 것도 같은 배경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는 4천300년전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다. 4천년전에는 중국에서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밀과 보리를 처음 경작하였다. 그리고 최초의 중앙집권 국가인 하왕조가 등장한다. 이 시기에는 이미 금속으로 만든 도구, 말과 마차, 도자기, 비단도 생산했다. 3천6백년전쯤에는 상나라가 생겼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한 때가 이때 즈음이다.

3000년전에는 주나라가 나타나 제국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 때 즈음 서양에서는 그리스가 국가 형태를 갖춘다. 이 때의 세계인구는 대략 1억2천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로마도 2700년전쯤 건국한다. 그리고 이 시기인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후 1500년사이의 2500년 동안에는 다른 수많은 제국이 명멸한다.

그리스와 로마제국 역시 세계문명 및 음식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로마는 정복전쟁 중 병사들에게 와인을 보급하기 위하여 포도나무를 직접 가져다 정복지에 심었는데 오늘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세계 곳곳에 와인과 와인문화를 직접적으로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다.

비슷한 시기인 2천7백년전부터 이후 500여년간의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리고 2천 300여년전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대제국을 건설하였고, 2천 200년전에는 현재 China의 어원이 되는 진나라가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다. 이 때 일본에서는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기전인 야마토 정권이 최초의 국가를 수립한다. 그리고 남미에서는 마야문명이 출현했다.

특히 2500여년전을 전후하여서는 중국의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을 비롯하여 인도의 석가모니,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그 500년 후의 예수 등 위대한 사상가와 종교가 집중적으로 탄생하는 인류사의 중요한 변곡점이 된다. 이 시기에는 데모크리토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등의 수학자가 나타나고 과학적 사고와 수학적 계산의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인류의 도덕률이나 사상, 지성이 체계적인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기이다. 예수가 탄생하기 57년전에서 18년전 사이 한반도에서는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가 차례로 건국한다. 그리고 100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후 고려가 건국되어 Korea라는 현재 우리나라 이름의 기원이 된다. 

1400년전인 618년,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였다. 이때 중국은 한나라 통치기간 350년을 거치면서 전염병 등으로 인구가 6천만명에서 4천5백만명으로 줄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후 당나라 300년과 송나라의 300년을 합쳐 600여년 동안 중국 인구는 다시 1억2천5백만명 정도로 늘어나고 GDP나 군사력면에서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었다. 그 당시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은 당나라 시절에 이미 인구가 200만을 돌파한 세계 최대의 메가 시티였다. 그리고 1392년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이 건국한다.

그 후 중국의 인구는 전쟁과 전염병, 기아 등으로 다시 감소해 600년전인 1400년경에는 다시 7천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중국인구의 감소에는 1200년대초 몽골이 중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의 학살도 큰 몫을 했다. 몽골의 세계 정복전쟁기간 중 학살된 사람의 전체 숫자는 그 당시 세계인구의 20%에 달하는 4천만~ 5천만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중국 사람이었다. 그 당시 몽골의 학살로 인해 지구 대기 중 이산화 탄소의 농도가 줄어 기후변화가 초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지금의 중국인구가 14억이니 지난 600년 동안 13억 3천만명의 인구가 늘어난 셈이다. 한편 그 당시 몽골의 세계진출에 따라 현재 세계 각처로 퍼진 징기스칸의 직계 자손만 1천6백만명이 넘는다는 연구도 있다.

몽골의 세계 정복은 인류문명의 발달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206년 몽골이 건국하고나서 1388년 원나라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182년 동안 몽골제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점령하고 통치하였다. 몽골제국은 정복과정에서는 야만적인 방법으로 많은 사람을 학살하였지만 점령지를 통치하는 과정에서는 현지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고 현지인을 폭넓게 등용하였다. 이는 오늘날 다국적 기업의 현지화 전략과도 유사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동서양의 새로운 문물을 융합하고 문화교류를 촉진하여 인류의 또 다른 발전을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 특히 몽골의 세계정복은 세계 각지의 음식문화가 다양화하는 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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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콜럼버스가 중미의 바하마에 상륙함으로써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다. 남미대륙을 유럽인이 발견하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원주민들에게는 대재앙으로 이어졌지만 역설적으로 남미대륙이 외부 세계와 문명의 교류를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중국 명나라 때의 정화 함대가 1400년대 초에 이미 아메리카대륙과 심지어 남극을 발견하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중국이 이미 나침반을 발명하고 조선술과 항해술 등 전반적인 과학기술 수준이 서양보다 앞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시기 우리나라의 기술수준도 천문, 의학, 역산, 인쇄, 화약 등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시기인 500년전인 1500년경의 세계인구는 4억명 정도였으나 이후 몇 번의 세계적인 전염병이나 기근에도 불구하고 세계인구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늘어 1800년경에는 10억명을 돌파하였다. 그리고 1927년에는 20억명을 돌파한다. 항해와 무역이 융성하면서 1571년에는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했다. 1580년경에는 유럽에 설탕, 차, 커피, 향신료 등 오늘날 까지도 우리의 일상적인 음식문화에 깊숙이 자리잡은 무역품들이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였다. 1602년 네덜란드에서는 세계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어 본격적인 세계무역을 시작한다.

1750년경이 되어서는 호주대륙을 제외한 세계의 전 대륙이 무역망으로 연결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생산되는 후추 등 향신료는 그 당시 냉장 보관 시설이 없어 상한 고기를 자주 먹을 수밖에 없었던 유럽인에게는 비싼 값으로 거래되던 귀중품이었다. 이는 나중에 유럽 각국의 해외 식민지 개척 및 무역전쟁의 단초가 되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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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1760년에는 영국을 기점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류는 가파른 산업화를 시작한다. 이어 유럽과 미국이 뒤따르고 1880년대 말에는 러시아와 일본도 산업화를 시작한다. 이때 산업화를 시작한 나라들은 1900년대의 강대국이 되고 1914년경에는 유럽인들이 지구 전체의 84%를 지배하게 된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호모 사피엔스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인류의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지난 1만년 동안 인류의 문명은 지역적으로 골고루 발전하지 않았다. 같은 호모 사피엔스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이나 민족에 따라 인류문명의 발전속도는 현저히 달랐다. 어느 민족은 타 문명을 정복하고 멸망시킬 정도로 빨랐던 반면 어느 지역은 아직까지도 석기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뚜렷한 한가지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농업혁명 이후 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되짚어 보면 문명의 발전은 지구의 동서 방향 축으로 확산을 계속해 왔고 남북의 축으로는 아주 느리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나 남미대륙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 이 점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일례로 남미 안데스 지역에서는 1천년전에 막 시작한 청동기의 대량생산이 이미 유라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그 보다 4천년전에 일반화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 “총, 균, 쇠”에서 이러한 차이는 인종적이거나 민족적 우열의 문제 라기보다는 문명의 확산 시기에 각 민족이 살았던 지역의 우연한 “생태적, 지리적 환경 차이” 가 주된 배경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살펴보면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동서 축은 위도상 기후가 비슷하고 산맥 등 문명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적다. 반면 남아메리카는 대륙의 처음 시작부터 거의 남극에 이르는 끝까지 해발 4천m~5천m나 되는 고산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장의 안데스 산맥이 남북을 축으로 7천 km나 길게 늘어져 동서의 두 대양인 태평양과 대서양을 완벽히 가로막고 있다.

반면 유라시아 지역은 이미 3천년 전인 기원전 10세기경부터 후에 실크로드로 불리는 서쪽의 카스피해 연안부터 동쪽의 한반도까지 연결되는 무역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 여러가지 무역로가 추가로 동서를 관통하였다. 전한 때인 기원전 120년경에는 이 루트를 통해 중국의 장건이 그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서 와인을 처음 중국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초한지의 주인공 유방이나 항우는 이미 그 전인 60~70여년 전에 사망하여 와인의 맛은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몽골제국이 남송을 복속시키고 영토가 동쪽의 블라디보스톡부터 서쪽의 폴란드까지 1만km에 달했던 1279년쯤에는 영토내 40km 거리마다 촘촘히 설치된 역참을 통해 그 당시 몽골의 수도 카라코룸에서 유럽의 점령지까지 20일 안에 본국의 소식이나 명령을 전할 수 있었다. 이는 하루에 350Km를 주파하는 속도이다.

반면 그 당시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중부에 위치했던 아즈텍 제국은 북쪽으로는 1000km정도 떨어진 북미 원주민 부족사회나, 남쪽으로는 2000km가 채 되지 않는 안데스의 잉카제국과는 아무런 교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인해 1532년 스페인 군대에게 멸망한 잉카제국은 고작 11년전에 같은 대륙내에 있는 아즈텍 제국이 똑 같은 나라인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지휘하는 500명 남짓한 소규모 군대에게 멸망한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11년 후 8만명의 병력을 가지고도 피사로가 이끈 180명의 스페인 군대에게 아즈텍과 비슷한 방식으로 멸망한다. 잉카나 아즈텍 제국이 소수의 스페인 군대에게 패한 원인은 스페인군의 총과 대포, 말,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전염병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미라는 지리적 위치가 정보와 교통, 그리고 문명의 전파를 막은 결과였다.

그러나 인류의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가 된 농업혁명에 관해서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과 지난해 페이스 북에 다시 올린 글에서 농업혁명이 “인류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기(fraud)”라고 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농업이 시작된 이래 인류가 소비할 수 있는 음식의 총량은 늘었지만 농부들이 평균적으로 일하는 시간은 더 늘고, 음식의 다양성은 줄어들어 식단이나 여가시간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이는 수렵, 채취 시기에 인류가 일했던 시간이 하루에 3~4시간이였다는 점과, 음식도 길들인 몇 가지 곡물에만 의지하여 단백질 섭취가 줄어드는 등 오히려 영양상태는 나빠지고 치아질환이나 기타 질병의 전파 등 건강상의 문제가 대부분 인류가 농경생활을 이후에 나타난 것을 보면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인구의 증가속도와 비교하여 기후변화, 야생동식물의 감소 등으로 수렵, 채취로 인해 인류가 확보할 수 있는 음식물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농업혁명 없이 그동안 인류가 지금과 같이 지속적인 생존 및 발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인류의 평균수명도 농업혁명이후 2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무엇을 먹을 것인가와 일하는 시간에 대한 문제는 인류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민해야할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우리가 오늘날 먹고 마시는 음식과 와인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우리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기원과 같은 한 점에서 만난다. 둘 다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바로 음식이고 우리가 바로 와인이다. 끝.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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