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기획]동해(East Sea) 병기노력 어디까지 왔나
[스페셜기획]동해(East Sea) 병기노력 어디까지 왔나
  • 김영원 前주네덜란드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0.10.2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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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을 계기로 한・일관계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더욱이 코로나19로 국제사회 전체가 활기를 잃으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목소리도 가라앉은 분위기다. 이러한 가운데 한・일 간에 대화의 끈이 이어져 온 것이 있다. 바로 동해 명칭 병기를 위한 한・일 간 대화이다.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 우리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일 간 비공식 협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일본이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하여 대화에 응하였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 성과다.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는 항행안전 등을 목적으로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 제하 특별자료(S-23)의 발간을 통해 세계의 해양과 바다의 경계 및 명칭을 규정하면서 동해수역을 일본해(Japan Sea)로 표기하였다. 이것이 국제사회가 동해수역을 일본해로 단독표기하게 된 배경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제6차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를 계기로 국제무대에서 일본해 단독표기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왔다. 이후 IHO를 비롯한 지명관련 국제기구와 유엔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동해명칭의 병기를 위한 교섭과 설득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왔다. 동시에 미국 등 영향력 있는 국가를 상대로 개별적인 교섭도 적극 전개하였다. 나아가 온라인 지도를 포함하여 유명 지도제작사 및 주요국의 교과서 제작업체를 대상으로 한 노력과 함께 해외지명전문가 및 지리교사들 에 대하여도 방한초청 등을 통한 설득 노력도 병행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사실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의 지도 및 학교 교과서에서의 동해병기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루었다. 예컨대, National Geographic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지도의 40퍼센트 이상이 동해를 병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온라인 지도를 대표하는 구글 지도의 경우에도 한국어 및 일본어를 제외한 언어로 검색 시 초기화면에서는 일본해 단독표기로 나타나지만 3~4차례 확대화면으로 진행되는 경우 동해/일본해 병기가 나타나게 된다. 물론 아쉽지만 이것이 적지 않은 성과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과는 2014년 미국 버지니아주 공립학교 교과서에서의 동해/일본해 병기 교육의 결정이다. 버지니아주 의회는 법 제정을 통해 학교에서 동해수역을 가르칠 경우 동 해역이 동해로도 불리고 있음을 분명히 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바, 앞으로 동해 병기의 확대 및 보급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노력은 다른 주로도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우리가 아직 IHO에서 병기를 실현하지 못하고 미국 등 주요국이 병기를 정부 정책으로 채택하는 수준의 완전한 성공은 거두지 못하였다는 점은 분명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노력을 한 마디로 설명하면 국제사회가 동해수역에 대한 한・일 간 명칭분쟁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 국제사회가 우리의 동해병기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는 점과 나아가 일본조차도 이러한 국제적 대세를 부인하지 못하고 병기확산에 대한 위기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 등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앞에서 설명한 한・일 간 직접협상의 개시이다. IHO의 후원 하에 지금까지 한・일 간 비공식협상이 미국과 영국 및 북한이 참여한 가운데 세 차례 개최되었다. 여기서는 일본해 단독표기의 출발점이었던 IHO 발간 S-23(해양과 바다의 경계) 제3판의 개정문제가 논의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합의된 내용은 병기가 아니라 문제해결 방안으로서의 대안의 발견이다. 대안으로 IHO는 향후 해도에 고유명칭 대신 수역을 지칭하는 숫자로 된 체계(a system of unique numerical identifier)의 도입을 제안하였다. 이는 지리정보의 체계로 명칭을 대신하는 방안이다. 이 대안은 당초 금년 4월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제2차 IHO 총회에서 보고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되어 11월 경 보고될 예정이다.

물론 이 대안은 디지털 시대의 변화된 환경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간 충분히 예견되어 왔고 그 효용성을 부인할 수도 없다. 이 대안이 실현된다면 IHO가 이후 발간하게 될 해도에서는 일본해 명칭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는 일본해 주장의 근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도 있다. 결과적으로 IHO 차원에서 우리의 주장이 지지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 방안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IHO가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종이지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종이지도는 결국 명칭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명칭의 근거는 S-23이 될 것이며 S-23이 개정되지 않는 한 일본해 단독표기를 수록한 현행 제3판은 그대로 유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S-23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표준데이터 근거로 지속된다면 종이지도의 지위는 계속될 수 있을 것이며 이 경우 디지털 지도의 출현이 동해병기 노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우리로서는 대안을 해결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디지털 지도의 출현이 과연 종이지도에서의 동해병기 노력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볼 때 병기를 위한 우리의 향후 대응방향은 다음과 같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S-23의 개정을 통해 당초 희망하던 대로 병기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S-23의 개정이 어려울 경우에는 S-23 제3판이 실효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성과를 기초로 국제사회에서 병기의 정당성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며 이를 구체적인 결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즉, 지도 및 교과서에서의 병기실현, 일본해 단독표기를 고수하는 미국 등 주요국들의 입장변화 유도 등이다. 동시에 디지털 분야에서의 기술적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우리 데이터가 다른 나라에서 많이 사용되도록 함으로써 디지털 지도에서 동해 명칭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IHO 가이드라인도 국가 또는 기업에서 지명을 채택할 경우 출처 제공을 의무화 하고 있으므로 동해가 더 많이 출처로 채택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S-23이 더 이상 근거로 사용되지 않도록 노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 동해 표기문제와 관련하여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히 하여야 할 것이다. 우선 왜 동해(East Sea)인가의 문제이다. 일본해처럼 우리도 한국해 또는 조선해로 불러야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닌가의 문제 제기다. 우리는 지금 일본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잃어버린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찾는 이름은 동해이지 우리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외래명인 한 국해 또는 조선해가 아니다. 우리의 고유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국제지명표기원칙에도 부합되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로 왜 서해(West Sea)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동해만 문제가 되는 가에 대한 오해이다. 서해는 우리가 국내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며 국제적으로는 황해(Yellow Sea)이므로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황해라고 부르는 한 국내적 명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만약 국제적으로 특히 중국에 대해 서해를 주장한다면 당연히 문제가 될 것이다.

동해 병기문제는 잊힌 우리의 이름을 되찾는 진실 발견의 문제로써 이미 국제사회가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일본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동해 표기문제의 조속한 해결은 무엇보다도 일본의 성의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이는 양국 간 관계증진의 새로운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동해병기에 대한 일본의 선의는 충분히 일본에게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변화된 상황 하에서 동해 홍보전략 등 다양한 대응책을 강구해 오고 있다. 금년 11월 화상회의로 개최예정인 IHO 총회가 동해병기 실현을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김영원 대사(youngwonkim05@naver.com)는 주네덜란드대사 겸 헤이그 국제기구대표부 대사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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