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기의 국제질서 따라잡기 (2) - 미국대선, 국제질서 그리고 한국 -
급변기의 국제질서 따라잡기 (2) - 미국대선, 국제질서 그리고 한국 -
  • 이동휘 교수/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0.10.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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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이 채 안 남은 미국대선은 그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혼동만큼이나 대선결과의 예측도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개최되었던 대선후보 토론이 막말논쟁으로 변질된 직후 발생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은 이러한 난맥상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심지어 유권자등록과 우편투표를 둘러싼 문제들로 인해 대선이 치러지더라도 정해진 시간 내에 승자가 명확히 가려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금번 대선은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왔던 공화, 민주 양당 간 정책 대결의 차원이나 개인특성의 차이를 넘어, 국가정체성을 둘러싼 가치전쟁의 양상도 보이고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보수성향 대법관 후보의 인준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된 배경에도 국가정체성을 둘러싼 양 진영 간의 대립이 작용하고 있어, 대선 이후에도 사회분열적인 후폭풍이 계속될 것이 우려되기도 한다.

미국의 국가정체성은 저항적 개신교의 자유, 평등 및 개인존중의 가치들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미국의 신조(American Creed)’를 축으로 형성되어 왔으며, 이에 자긍심을 실은 대외적 표현이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헌법정신으로 자리매김한 이러한 미국적 가치들을 구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진척되었던 인종차별철폐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소되지 않는 경제적인 격차가 사회불안요소로 엄존하여 왔으며, 최근에는 경찰의 무분별한 흑인살해에 대한 항의 시위(BLM protests)가 폭동으로까지 비화되어 대선분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한편, 이러한 흑백문제 외에도 기존 가치들의 해체를 초래하게 되는 페미니즘, 낙태자유허용, 성소수자 권익옹호 및 총기소지금지 등에 대한 사회적 요구들도 꾸준히 분출되어 오면서 전반적인 좌파진보성향을 형성하고 민주당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다.

한편,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은 금융, 정보통신 분야에서 새로운 부와 엘리트 층을 창조하여 초국가적 정체성을 증대시키는 반면에, 전통적 제조업의 기반을 약화시킴에 따라 중산층이 붕괴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에 따라 분출되는 다수 대중의 불만은 제정 당시 헌법정신의 고수를 중요시 하면서 미국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로 나타나고, 이는 미국제일주의를 표방하는 공화당에 대한 넓은 지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가열되고 있는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논쟁과 대립은 미국적 가치들인 자유, 평등 및 개인의 자유 등에 대한 새로운 대안의 모색이라기보다, 어떻게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재해석하고, 나아가 정치적으로 여하히 구현할 것인가를 둘러싼 국가정체성 재확립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전승국인 미국의 주도하에 유지되어 온 국제질서도 기본적으로 미국적 가치를 세계적 차원에서 확대하고 재확인하려는 성격을 지녀왔으므로, 내부변수인 국가정체성이 변화하게 됨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가 보여준 동맹경시, 다자접근 회피 및 보호무역조치 등이 야기하는 파급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최근 팬데믹의 창궐과 함께 더욱 심화되고 있는 중국의 도전, 반세계화 추세 및 민족주의 확산 등 외부변수들의 작용도 동시에 고조되면서, 기존 국제질서의 변환 속도가 가일층 증폭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어느 당이 집권하더라도 가속화 될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미국이 취할 기본적인 대외전략의 우선순위는 이미 가시화된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데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취할 행동경로에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대중국정책의 강도를 더욱 높여갈 것이나, 바이든이 되면 비록 대립적 자세를 취하더라도 민주당 전래의 범세계주의(globalism) 선호의 영향으로 가능한 한 타협을 모색하려는 경향을 띠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간격은 기존동맹의 유용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정책들을 채택하게 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 필요에 따라 기존의 양자와 다자차원의 집단방위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성격의 동맹체제를 추진해 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인도-태평양전략의 요체로서 QUAD가 자리매김 되면서 한・미동맹의 변경 가능성도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기존 동맹관계의 유지와 활용을 강조할 것으로 보여 한・미동맹의 급격한 변동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나, 두 경우 공히 한국정부가 향후 중국과 북한 등과 관련하여 취해 나갈 전략적 행보가 주요 매개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 민주 양당 간의 국제질서에 대한 시각 상의 괴리는 미국의 국익을 명시적으로 최우선에 둘 것인지 아니면 범세계주의적인 관점에 서서 우회적으로 접근할 것인지의 목적설정의 상이성에서 연유될 것이다. 이는 자국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신안보체제의 구축과 신보호주의 등의 정책들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작동되어온 자유주의패권(liberal hegemony)의 유지를 목표로, 기존 동맹관계의 재강화와 자유무역을 고수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인지에 관한 수단선택의 차이로 노정될 것으로 축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전략은 기존 국제질서에 현상타파적 계기를 만들어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은 커지나, 양면성을 지닌 세계화의 도전과 고조되고 있는 중국의 위협에 보다 시의성 있게 대응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전략은 현상유지적 성격을 띄움으로써 비록 단기적으로 안정감을 투사할 수는 있을 것이나, 국제질서의 변환이 필연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장기적으로 유용한 대응책 마련에 있어 실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가오는 미국의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될지 투표일이 다가 올수록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미증유의 상황을 맞고 있으나,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한・미관계와 한반도의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거의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닥쳐올 현상변경의 동력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전제 하에서 한・미동맹의 질적・구조적 변경, 비핵평화과정의 급속한 진전, 나아가 중국문제의 종속변수적 성격도 내재하고 있는 한반도 장래 등과 관련된 전략을 입체적으로 구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바이든이 집권할 경우에 지속될 현상유지의 관성을 염두에 두고, 한・미동맹의 포괄적 개선 방안, 새로운 북한비핵화 추진방향 및 현상유지의 지속에서 초래될 수 있는 분단의 장기화 가능성 대비 등과 관련하여 한・미협력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강화된 인식이 필요해 질 것이다.

이렇듯 다가오는 미국 대선은 미국과 국제질서의 장래를 결정하는 커다란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은 물론,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할 분수령적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되므로, 혼란스러운 미국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우리 국익의 최대화에 유리할 체계적인 대외전략들을 선제적으로 준비해 나가는 자세가 한층 더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동휘 교수는 국립외교원 교수・연구실장, 한국협상학회 회장,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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