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광장]페론이즘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
[외교광장]페론이즘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
  • 한병길 前주아르헨티나 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0.09.04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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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론이즘(Peronism)’이라는 정치운동은 인간은 평등하며, 약자를 돕고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려는 동정심이야말로 최우선에 두어야할 가치라고 주장한 아르헨티나 페론 대통령과 영부인 에바 페론의 생각과 실천을 통해서 발전해왔다. 성장과 소득 재분배를 강조하고 그 부작용인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를 외면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페론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면서 주창한 페론이즘은 서구사회 및 제3세계를 통틀어 20세기에 등장한 여러 가지 정치운동 중 가장 주목받는 것으로서, 오늘날 우리나라를 위시한 많은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최저임금제, 유급휴가제도, 해고금지 규정, 휴가 상여금 및 무료 의료정책 등의 뿌리가 페론이즘에 닿아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페론이즘은 당초 정교하게 설계된 정책이나 시스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페론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아르헨티나에서는 좌익부터 반유대주의 성향의 파시스트 극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조차 페론이즘의 실체를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 바, 현재도 계속 발전해 가는 진행형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는 좋은 것, 잘 되는 것, 국민에게 퍼주는 것은 모두 페론이즘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호황으로 아르헨티나에서는 도시일손 부족을 담당할 백인 이민자가 증가하였고, 3D업종에 종사할 빈민들이 인근 남미국가로부터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심각한 빈부 격차가 노정되고 각종 사회문제가 폭발할 시점에 페론이 등장한다. 지리상의 발견 이래로 중남미 대륙을 300년 이상 지배해온 스페인 정복자(conquistador)들의 후예들은 지주, 군부, 성직자의 삼각편대를 결성하여 자자손손 부를 독식해왔다. 이들의 부의 독점을 막고 노동자들에게 부를 나누어 주겠다고 처음으로 주장한 인물이 페론이다.

페론은 그 출생부터가 파격적이다. 그의 생모는 아르헨티나 남부 파타고니아 원주민인 테우엘체 부족 출신이며, 페론이 원주민 차별폐지, 복지정책의 확충, 세속주의, 여성 참정권(1947년) 도입 등을 펴게 된 것은 생모의 영향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페론은 주이태리대사관 무관생활을 통해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깊이 학습하였고, 집권 후 파시즘을 모방하여 노조와 시민단체가 정치를 주도하도록 하였으며, 산업화와 민족주의적 보호무역 그리고 중앙집중화된 정부의 안정적 사회 통제 등을 추진하였다.

페론은 ‘노동자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 최저임금제, 유급 휴가제도를 도입했고, 해고 금지법을 제정하였다. 파격적인 연금 혜택 확대(연금지급연령 47세, 소득의 8%를 연금 보험료로 징수하고 은퇴 후 소득의 82%를 연금으로 지급) 등 각종 노조 친화정책을 펴는 한편,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를 목표로 노동자에게 무료 휴양소와 주택 제공, 휴가 상여금 지급 및 무료 의료정책도 시행하였다. 1947년부터 외국계 기업과 기간산업에 대한 국유화를 단행하였으며, 외채도 모두 갚고 노동자의 요구도 모두 들어주면서 페론이즘은 순항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국제곡물가격이 1940년대부터 하락하기 시작하였고, 페론을 파시스트로 규정한 트루만 행정부가 유럽국가들로 하여금 마샬플랜에 따른 미국원조 자금으로 아르헨티나 곡물을 수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견제 정책으로 인하여 페론이즘은 순항을 멈추고 1949년부터 아르헨티나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하였다.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페론은 친기업, 친자본 정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였으나, 1955년 이혼 허용 법안을 둘러싼 가톨릭교회와의 반목이 결정타가되어 군부 쿠데타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다.

페론과 에비타에 대해 아직도 향수를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페론이즘은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종교’와 같은 것으로서 뼈 속 깊게 스며들어 있다. 페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페론이 아르헨티나 역사상 소득배분이 가장 잘 이루어지도록 하였으며, 서구열강들과 경쟁할 수 있는 산업투자, 공업화, 원자력 사업의 시작 등이 모두 페론 집권기간 동안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페론의 제2기 집권(1973~1976) 이후, 쿠데타로 권력을 쥐게 된 군부는 미국과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면서 페론의 성취와 흔적을 의도적으로 지우려 하였고, 경제도 완전히 망쳐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격으로 경제실패의 책임을 페론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역설한다.

반면, 영・미 주류인사들이 주축을 이루는 페론이즘을 비판하는 인사들은 아르헨티나와 같이 곡물, 쇠고기 같은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는 국제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을 감안하여 경제가 어렵게 되는 시기에 대비해야 하는데, 페론이 노동자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퍼 주기’정책을 편 결과, 아르헨티나 경제를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게 하였다고 비판한다(단기적 호황 → 페론이즘식 퍼주기 → 재정적자, 부채증가, 통화남발 → 하이퍼 인플레이션 → 실질소득 감소, 국가부도위기 → 긴축정책 → 국민반발 → 다시 퍼주기). 또, 페론은 대중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한다는 미명 하에 선심성 물량공세를 폄으로써, 대중들로 하여금 당장 편안함만을 탐닉하게 하고 절제, 절약, 생산성 등과 같은 가치를 멀리하게 하여 ‘대중영합주의(populism)’라는 마약에 빠져들게 만들었다고 질타한다.

페론주의자들은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고착화된 부의 편중을 시정하고 사회개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과감한 노동자 우대정책의 추진이 불가피하고 사회정의를 세우고 아울러 외세로부터 독립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페론주의자들은 국가가 장기적으로 부강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단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개선시켜 나아가는 노력과 함께 대중인기 영합방식의 단기 정책 주의(short-termism)를 지양하고 착실하게 국가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여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불공평한 현실의 개조와 관련하여 상기와 같은 두 가지 주장 중 어느 쪽이 옳은 지 논쟁하는 것은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인과관계에 관한 딜레마로서 무익하고 소모적이라고 생각된다. 페론이즘에 관한 많은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일부는 왜곡되어 온 우리나라의 사정에 비추어, 우리가 페론이즘으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아르헨티나의 페론이즘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려 들지 말아야 하며,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처한 상황이 상이하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아르헨티나는 방대한 자원(원유부터 온갖 광물이 매장되어 있는 농업강국), 넓은 국토(남한의 27배) 그리고 비교적 적은 인구(약 4,500만 명)을 보유한 대국으로서의 우월감과 여유속에서 1세기 가까운 페론이즘을 버텨냈다. 또, 1912년 남성 보통선거가 도입될 정도의 긴 민주주의 역사와 높은 교육수준에 따른 우수한 인적자원들이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정치・경제적인 위기상황 속에서도 모택동이나 스탈린식의 전체주의적이고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위기를 극복해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아르헨티나는 국경이 봉쇄되어도 어느 정도 자급자족과 생존이 가능한 국가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전통이 확고하게 정착된 지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으며, 좁은 국토에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수출 주도형국가로서 국제수지방어가 안 되면, 단시간내에 국가부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이제는 이 정도 먹고 살게 되었고 3만 달러 소득의 선진국에 진입하게 되었다는 국민적 자신감에 들떠 단기적이고 대중영합적인 정책을 계속 펼 경우, 그 끝에는 국가파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로 하여금 인식하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 페론이즘에 빠진 아르헨티나가 비전있는 지도자를 민심이라는 이름으로 몰아냈던 점을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 항상 경계해야한다. ‘축복받은 땅’ 아르헨티나는 선순환적인 영・미의 발전방식(노동자의 권리 확대 → 사회체제의 변화 → 생산적 발전)을 따라가지 않고 배척주의적 정치인들이 할거하면서, 비전있고 유능한 정치인들이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방해한 결과, 아직까지도 아르헨티나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르헨티나 국민 스스로가 현실을 직시하고 개혁의 필요성에 수긍하고 적극 동참하면서 좋은 정부와 뛰어난 리더십이 개혁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개혁에 대해 회의적(무엇을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느냐?)이고 당분간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도 기대하기 어려워 아르헨티나의 장래는 밝다고 할 수 없다.

셋째, 교육받은 양질의 인적자원, 언론의 자유와 사법부의 독립을 가능하게 하는 민주주의, 국민 개개인 모두가 평등하게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국가에 대한 귀속감 그리고 정부 정책의 효율적 시행과 이를 수용하는 국민 등 4가지 강점들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숱한 정치・경제적 위기 속에서도 국가로서의 기본 틀을 유지해올 수 있었다고 아르헨티나 국민들 대다수는 동의하고 있다. 특히, 언론의 자유, 사법부의 독립, 국민 모두의 국가에 대한 귀속감 등은 페론이즘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페론이즘적 정책을 많이 펴고 있는 우리나라 현 정부가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

*상기 칼럼내용은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한병길 대사는 주미국 총영사, 페루대사, 아르헨티나대사 등을 역임하고, (사)국제교류증진협회장을 지낸 뒤 현재 세한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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