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광장]D10 (민주국가 동맹체) 결성 움직임
[외교광장]D10 (민주국가 동맹체) 결성 움직임
  • 최병구 前주노르웨이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0.09.0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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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영국 정부는 주요 7개국(G7)에 한국・인도・ 호주를 추가하는 새로운 협의체를 결성하자는 제안을 했다. ‘Democracies 10’(D10)으로 불린 이 구상은 5년 전 미국의 한 싱크탱크에 의해 제시된바 있다. 효율성, 적절성, 정당성 측면에서 G7을 D10으로 개 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흥미롭게도,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7월 23일 닉슨기념관에서 행한 연설에서 “민주주의 국가들로 구성되는 새로운 동맹체(a new alliance of democracies)가 결성되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G7을 대체하는 새로운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있어 관련 동향을 살펴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6월 1일 G7이 G11 또는 G12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의 G7 구성이 시대에 뒤져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금년도 G7 정상회의에는 러시아・호주・인도・한국 등 4개국을 게스트로 초청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국가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한 생각을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는 G7이 확대될 경우 한국의 참여 가능성도 언급했다. 통화 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방미가 성사된다면 G7의 옵서버 자격으로 가는 일회용・일시적 성격이 아니라, 한국이 G11 또는 G12라는 새로운 국제 체제의 정식 멤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참 앞서나간 부정확한 언급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G7 확대 제안에 대해 캐나다・영국・독일・일본 등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의 G7 복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반대했다. 캐나다 총리는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에 G7에 복귀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영국 총리실도 러시아를 G7에 복귀시키는 어떠한 제안도 거부할 것이라고 했다. 독일 외교장관은 “러시아가 퇴출된 것은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개입 때문이었고,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한 기회는 없다”고 했다. 일본은 “G7의 틀 그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한국 등의 신규 가입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회원국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포함 4~5개국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G7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의 G7 정상회의 복귀는 상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는 중국을 포함하지 않는 G7 확대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2019년 정상회의 때에도 러시아를 재가입 시키려 하였으나 여타 회원국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런 사실들에 비추어 금년도 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를 포함하는 G11 또는 G12가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D10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근거는 이렇다.

우선, D10이 G7보다 지역적 대표성에서 흠결이 없다. G7은 회원국이 유럽・대서양 중심이어서 현재의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D10은 이런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 지역적 대표성뿐 아니라, 회원국 규모 면에서도 D10이 낫다. G7에 4~5개국을 추가하면 회원국이 11~12개로 늘어난다. 말만 무성하고 구체적인 행동은 없는 ‘talk shop’에 머물 공산이 크다. 반면, D10은 G20 회원국 가운데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지향하는 가치나 이념이 같다. 일치된 합의를 도출해내기가 보다 용이하다. 회원국이 10개국을 넘지 않으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로만 구성된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할 때 장점이 많다.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G7은 새로운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공세적으로 세계 질서를 개편하려 하고 있으나 G7의 역할은 미미하다. 경제와 민주주의에서 선도적인 나라들이 하나가 되어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는데, G7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D10은 다른 한편 으로는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다자주의를 허물고 있음에도 G7은 속수무책이었다. D10은 또한 미・중의 첨예한 패권 대립으로 인한 세계정세의 불안정성・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5세대 이동통신(5G)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도 D10 국가들이 하나가 되어 대응하면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구축과 관련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도・한국・호주 같은 나라가 G7 국가들과 하나가 되어 대응을 하면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영국 정부가 D10을 제안한 주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중국과 이념적 대결을 시작한 미국으로서는 D10이 유용한 외교 수단이 될 수 있다. 미국 입장을 지지해 줄 수 있는 든든한 장치가 하나 더 마련되기 때문이다. D10은 인도・호주・한국을 포함하기 때문에 ‘인도-태평양 전략’ 차원에서도 유용하다. 글로벌 공급망을 자유진영 국가들로 새로 짜려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의 핵심 대상국도 인도・호주・한국이다. 그러니 D10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D10이 성립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11월 미 대선이후 열릴 2020년 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를 포함하는 G11 또는 G12안이 논의는 되겠지만 성사될 가능성은 없다. 이렇게 되면 영국은 D10 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 등을 설득하는 외교력을 발휘할 것이다. 영국은 마침 2021년 G7 의장국이다. 2021년 런던에서 D10 정상회의가 개최되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D10 성립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경제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대한민국은 D10의 일원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한 나라로, 소위 ‘30-50클럽’(인구 5천만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나라) 7개국 중 하나다. 민주주의에서도 손색이 없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정세분석기구(EIU)가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아시아권에서는 단연 1위다. 일본보다 앞선다.

한국이 D10의 일원이 되면 국제적 위상과 발언권이 높아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선진국 클럽의 일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의 위신이 과시된다. 이에 따라 외교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 이는 남・북한 관계나 북한 핵 문제 등을 풀어나가는데 있어 우리의 생각과 입장이 보다 존중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임을 의미한다.

한국이 D10의 일원이 되면 거둘 수 있는 실익도 생각보다 클 것이다. 이 협의체 내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써 국익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다. 우리 경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세계 표준이나 규칙이 설정될 수 있도록 관여할 수 있다. 5G 정보통신기술 문제나 글로벌 공급망 구축 문제 등 우리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문제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우리가 D10의 일원이 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레버리지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D10이 중국에 대해 공동 대응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므로 우리도 그런 일원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혼자 대응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2008년 G20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미국・호주 등과 긴밀히 협력해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우리 정부가 이런 경험을 살려 D10 탄생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기 바란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상기 칼럼내용은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최병구 대사는 주미국 총영사, 주노르웨이 대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외교안보」(2017), 「외교의 세계」(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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