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과 한국의 선택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과 한국의 선택
  • 이강국 前주 시안 총영사/ 정리=이지연
  • 승인 2020.08.2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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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있었던 국제관계의 대전환은 “케난이 미국을 일깨웠고, 키신저가 잠자는 중국을 깨웠으며, 시진핑이 미국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전후 맹렬한 기세로 주변 지역을 병합하고 위성국화 하는 소련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난감한 상황에서 소련주재 미국대사대리 조지 케난(George F. Kennan)이 보낸 ‘장문의 전문(long telegram)’은 미국 사회를 일깨워 대소 봉쇄정책을 이끌어냈다. 이후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정부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물샐틈없는 봉쇄정책을 펼쳐 마침내 1991년 소련은 붕괴했고 미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중국은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문화혁명 시기까지 폐쇄적인 체제하에 경제는 피폐해지고 대외 교역액은 미미했다. 그러나 키신저 비밀 방문을 계기로 역사적인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실현되고 미・중관계가 정상화되면서 국제사회에 나오게 되었으며,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선언과 남순강화가 이루어지면서 오늘의 발전을 이루었다. 키신저가 잠자는 중국을 깨운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세계에 문을 열고 경제발전을 하면 점점 민주주의 등 서방의 가치를 공유하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가지고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을 실시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의회 지도자들을 설득하면서까지 중국의 WTO 가입을 도와주었다. WTO 가입은 ‘수출을 통한 성장’의 전기를 마련하여 중국의 발전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2012년 말 중국의 지도자가 된 시진핑은 ‘중화민족 부흥의 위대한 꿈, 중국몽’을 기치로 내세웠다.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 정립을 통한 국제정치의 주도권 확립을 도모하기 시작했고, 남중국해를 요새화하면서 서태평양 지역을 자기 영역으로 만들겠다고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중국에 대해 너무 안이했고 매우 위협적인 경쟁 상대를 키웠다는 반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강경조치에 여야를 막론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다. 심지어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국제사회에 나오도록 한 정책이 잘 못되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시진핑이 미국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대응은 ‘신봉쇄정책’으로 나타나면서 신냉전 상황을 방불케 하고 있다. 케난이 제기했던 봉쇄정책이 소련에서 중국으로 대상이 바뀌어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미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인권, 홍콩문제, 남중국해 문제 등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무역적자 해소이다. 중국 외환 보유고의 90% 이상이 대미 무역수지 흑자에서 나온다. 중국은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공세는 무역수지 적자 문제에서 출발했다. 기존 패권국가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신흥 강대국에게 이렇게 많은 교역상의 혜택을 주면 결국 국력이 역전되기 때문이다.

둘째, 기술굴기 차단이다. 혁신적 기술혁명이 일어났을 때 해당 기술에 기반한 선도산업을 주도한 강대국이 패권 국가로 부상해 국제 정치·경제 질서를 주도했다. 화웨이는 세계 통신시장의 최강자이며 세계 특허 출원 5년 연속 1위이고 R&D 투자액 1위로서 중국 기술굴기의 상징이다. 그래서 미국은 화웨이를 집중 공격하고 각국에 화웨이를 배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최근 5G 통신장비 관련 영국 등에서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기술굴기를 차단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 유학생을 제한하고 기술 스파이 색출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며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관련 기술을 탈취하려 했다고 주휴스턴 중국총영사관을 폐쇄하는 강경 조치를 취하고 있다.

셋째, 탈동조화(脫同調化: decoupling)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중국내 생산, 미국 시장으로 수출’구조가 형성되면서, 중국 중심의 공급체인(supply chain)이 확고하게 구축되었는데, 미국으로서는 이 구조를 깨지 않으면 천문학적인 무역적자와 중국의 부강을 계속 돕게 되는 상황에서 탈피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미국과 협력하는 국가들만의 산업 공급망인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 Economic Prosperity Network)’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강력한 무기는 COCOM으로 일컬어지는 ‘대공산권 전략물자 수출통제 협의회(Coordinating Committee for Multilateral Export Controls)’였는데, EPN을 통해 중국과 분리된 공급망을 구축하여 중국을 봉쇄하고 첨단 기술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넷째, 소프트웨어로 제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안보(security)’에 이어 ‘인터넷 주권’을 표방하면서 사실상 외국 인터넷 기술 기업들의 중국시장 진출을 막고 있어 또 하나의 만리장성인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 of China)’을 쌓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가 접속이 안 된다. 우리나라의 카카오톡도 차단되어 있어 중국에 체류하거나 업무할 때는 부득이 중국의 웨이신을 써야한다.

중국의 IT・인터넷 공룡들의 발전은 비슷한 과정을 밟아왔다. 먼저 중국 정부가 철저한 진입 규제 정책으로 외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막는다. 이 틈을 타서 중국 기업들이 넓은 내수 시장을 개척하고 독식해 나가면서 큰 덩치와 기술력을 키운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가성비를 무기로 석권해 나간다. 이제 미국이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는 데, 트럼프 대통령이 사이버 보안을 이유로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틱톡과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위챗에 대한 거래금지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다.

미국의 봉쇄정책에 대해 중국은 방대한 내수시장과 일대일로 연선 국가들을 아우르면서 새로운 블록을 형성하여 맞서려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구사하고 한국에 대한 요구도 커질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홍콩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은 국제규범이나 상식보다는 철저히 자국의 정치적 이해와 이익을 고려하는 행태를 보일 것이다. 이것은 2016년 1월 삼원계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을 보조금 명단에서 제외시킨 사례를 통해 예상할 수 있다. 삼원계 배터리는 삼성SDI와 LG화학 등 한국 기업들이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한국 기업들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작용했다. 당시 중국 측의 논리는 삼원계 배터리를 장착한 버스에서 화재가 났었기 때문에 삼원계 배터리는 위험하다는 것이었으나, 삼성 SDI나 LG화학 배터리를 장착한 버스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삼원계 배터리는 모두 위험하다고 하면서 배제했다.

현재 중국은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여 대대적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는데, 양산에 성공하면 자국산 반도체 사용을 유도하면서 한국산 반도체는 휴대폰처럼 중국에서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결국, 한국 기업으로서는 중국 시장 개척노력을 계속하면서도 기술력을 키우고 시장을 다변화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둘째, 우리나라 언론에 미・중 갈등이 한국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논조가 대부분이고 중국문제 전문가들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데,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중국이 ‘중국제조 2025’ 정책을 강력히 실시하면서 한국과의 기술격차를 좁히고 어떤 분야에서는 이미 앞서고 있으며 추월하는 분야가 급속도로 많아질 것이다. 독일의 한 싱크탱크는 중국의 기술 굴기로 한국이 장기적으로 최대 피해자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것은 현재 LCD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덤핑하다시피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밀려나는 형국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하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함으로써 중국의 기술 굴기 속도를 제한하는 것은 한국에게 기회가 된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 굴기 지연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이득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5G 화웨이 통신장비가 국제사회에서 막힘으로써 삼성 통신장비가 캐나다 등에서 약진하고 영국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점유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반면에,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업체의 점유율이 크게 올라가고 있다.

최근 미국이 전 세계 21개국 38개 화웨이 계열사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하면서,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장비를 이용해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회사와 거래를 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국내언론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규제 적용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국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중・장기적으로 볼 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미・중 경쟁의 부정적인 측면만 생각하지 말고 돌파구를 마련해 나가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셋째, 정부가 기업의 일이라고 치부하며 오불관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영국에서 보듯이 5G 통신망 구축 사업에는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고 국가 보안, 국민 개인정보 보호 등 여러 가지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연일 한국의 일부 통신업체의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당초 해당 업체도 국제적인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고 정부도 관련 업체와 정보를 공유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새겨서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넷째, EPN 구축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하고 글로벌 밸류체인 전환 움직임에 뒤쳐서는 안 된다. 미국이 글로벌 생산・공급망의 재편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운드리 업계 강자인 대만의 TCMC가 화웨이에 대한 웨이퍼 공급 중단 등 요구조건을 수용하고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다고 발표한 이후 애플・퀄컴・인텔・AMD・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들의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제1 강대국인 미국으로서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제2 강대국인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 ‘물샐틈없는’ 봉쇄정책을 취하려 할 것이다.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이 민주당과 공화당 정부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진되었듯이 대중국 봉쇄정책은 정권 향배에 관계없이 지속될 것이다. 그 핵심이 EPN이 될 것이며, 일본, 유럽, 호주, 대만 등이 EPN에 가세하면서 반도체 동맹 등 다양한 형태의 산업동맹을 추진하고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표준화 작업을 선도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밸류체인 전환 움직임에서 뒤쳐지면 한국은 설자리가 없게 된다. 국제적인 판세를 제대로 읽어야 하며, 우리의 국익을 어떻게 하면 확보할 수 있는 지를 냉정하게 생각하고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 이강국 전 주시안총영사는 중국 연수와 주중국대사관, 주 시안총영사관 근무로 13년 7개월 동안 중국에서 생활했다.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중국의 新실크로드 전략 일대일로』, 『서안 실크로드 역사문화기행』, 『일대일로와 신북방 신남방정책』을 저술하였다. 지금은 성균관대학 출강과 함께 STARTUP TODAY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편집자 주: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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