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경쟁과 한국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
  • 임한택 前주루마니아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0.08.2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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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간의 패권경쟁이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향하고 있다. 급부상하는 대륙 세력 중국과 이에 맞서 기존 국제질서 하에서 우위를 유지하려는 해양 세력 미국 간의 충돌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신흥 강국의 부상과 자신을 위협하는 새로운 세력을 제압하려는 기존 강국의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예견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978년 미・중 수교이후 최근까지 40여 년간 양국은 상호 공존과 번영을 위해 상호 이익의 균형위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하지만 이러한 호혜 관계는 중국이 급격한 위상 변화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 양국은 피할 수 없는 대결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양국의 패권 경쟁은 기존의 통상·인권·해양 등 국제 규범, 군사 안보 그리고 근본 가치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충돌하고 있다.

우선 국제 규범과 관련한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대응을 살펴보자. 통상문제에 있어,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 추진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추진하자 미국은 이를 중국의 경제권역 확대 시도로 보고, 이에 대응하여 중국을 배제한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Economic Prosperity Network)를 구성하고자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동맹국들 간의 교역과 투자를 증진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여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한 중국이 국제통상 규범 하에서 급속한 번영을 이루면서도 여전히 통상 규범을 위반하고, 특히 중국이 미국이 우월한 지적 재산권 분야에서 기술을 침해·탈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인권문제에 있어, 중국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하자, 미국은 중국이 약속한 홍콩의 자치권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홍콩에 부여해 온 특혜 관세 등 본토와 다른 특별대우 지위를 중단하였다. 또한 양국은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에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각을 세우고 있다. 중국은 해양 영유권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여 왔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이른바 9단선이라는 역사적 권원을 내세워 남중국해 대부분을 영유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16년 필리핀과 중국 간 중재재판에서 재판소는 중국의 이러한 주장이 중국이 당사국인 ‘유엔해양법협약’에 배치된다고 판결하였다. 중국은 중재재판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근거 없는 영유권 주장을 불법으로 보고 이에 대응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남중국해를 사실상 지배하며 아시아 지역 번영에 필수적인 안정을 제공해 오던 미국으로서는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도전이기 때문이다(물론 미국이라고 해서 모든 국제 규범을 준수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안보 면에서, 중국군은 강력한 경제 주체로서 이룩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대폭 증강해 오고 있다. 남중국해와 서해에서 활동하는 항공모함 랴오닝과 산둥함을 운용하고 있으며, 최신형 대함탄도미사일(DF-21)·핵 잠수함(093형) 및 전략폭격기(H-6K) 등도 배치하였다. 미국은 이제 첨단 군사력으로 무장한 중국을 실재하는 위협으로 보게 되었다. 미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공격무기 감축 및 제한을 목적으로 2010년 합의한 New Start 조약(2021.2. 종료 예정)과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조약(INF, 2019.8. 종료)을 미국이 종료한 것은 이들 조약에 의해 미·러의 핵능력 강화가 제한된 반면, 이러한 구속을 받지 않는 중국은 투명하지 않게 핵전력을 지속적으로 증가시켜 왔다고 판단하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신신당부한 등소평의 지혜를 버리고 시진핑 하 중국은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구호로 내세우며, 통상·인권·해양 등 국제 규범을 위반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등 공세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공고해진 중국 공산당 지배 체제의 섣부른 자만심과 특유의 과시욕 때문이라 할 것이다. 미국은 당초 중국의 경제발전이 민주주의 확대와 국제 규범의 수용, 국제질서로의 평화적인 편입을 불러 올 것이라는 기대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공세가 턱 밑까지 도달하자, 급기야 미국은 순진한 낙관론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미국은 이제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가 아니라 전략적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더 이상 중국의 공세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보다 근원적으로 국가와 기업이 사실상 동일체인 중국 공산주의의 정치 체제 자체의 비민주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체제 전환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대중국 포위 전략을 전지구적 차원에서 좁혀 나가고 있다. 이른바 ‘인도-태평양 구상’이다. 이제 세계는 중국과 반중국 세력으로 나뉘어, 마치 냉전시대의 구조로 회귀하는 듯한 양상이다. 혹자는 이미 새로운 냉전,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한다. 미국이 주미 중국 휴스턴 총영사관을 폐쇄한 데 맞서 중국이 주중 미국 청두총영사관 폐쇄로 맞대응한 것은 그러한 경쟁의 서막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자칫 중국 내 경직된 정치 체제와 완강한 민족주의 감정이 파국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할 것이다. 특히 미・중의 군사력이 집중하는 남중국해는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발할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이 국제 규범을 성실하게 준수하고 민주적 가치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갈등 해결의 관건이라 할 것이다. 가시적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은 오는 10월 미국 대선 이후에도 (공화당의 트럼프 또는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는 가와는 무관하게) 초당적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다할 것이다.

한국은 그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발휘하여 왔다. 전략적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외교 전략이 없다는 편의상 용어라 할 것이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해 온 한국으로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할 것이다. 미・중 간의 관계가 좋은 때에는 안보와 경제가 따로따로 가도 되었지만, 미・중 간의 관계가 악화되어 안보와 경제가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오고 있는 것이다. 국제 규범과 군사안보 그리고 가치 측면에서 미국의 거대한 반중 포위 전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예전과 같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할 것이다. 당장 미국은 한국 기업들의 중국 화웨이 5G 네트워크 사용을 배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제 규범과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국제정치의 패러다임 속에서 한국이 선택해야 할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더 이상 미・중 간의 줄다리기를 내심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이 대미・대중・대일 그리고 대북 외교의 큰 판을 미리 고심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 임한택 대사는 외교부 조약국장, 주제네바대표부 차석대사 겸 제네바군축회의(CD) 대사, 주루마니아대사를 역임하고, 현재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편집자 주: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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