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직시하고 전략적 대응을 하자
일본을 직시하고 전략적 대응을 하자
  • 연상모 前주니가타 총영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0.07.1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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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상당히 좋지 않다. 2018년 10월 한국의 대법원이 징용공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이후, 한국 정부나 국회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징용공의 대법원 판결을 ‘1965년 기본조약의 근본 전제를 바꾸는 가장 큰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실망감을 보이면서, 2019년 7월 일본정부는 대한국 수출규제조치를 취했다. 한국과 일본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양국은 민족주의, 포퓰리즘의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현재 양국관계가 악화된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여기에는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게 중대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과의 관계를 외면하고 방치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로 보인다. 우리가 일본을 외면하고 방치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일본은 한국의 이웃국가로서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일본에 애증을 갖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증오와 부정적 시각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한국은 일본을 비하하거나 증오하거나 우월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일본이 문화수준이 낮고 체격이 왜소 하다는 이유로 비하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한・일합방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의식을 갖고 일본을 증오한다. 또한, 우리는 삼국시대 이래 중국의 문물인 한학, 불교, 유교, 천문 등을 일본에 전해주었다는 우월감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선조들이 과거에 일본에 도래해서 천황계나 귀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근대에 들어서 선진국이 되었지만, 이는 일본이 무사가 지배하는 나라로서 문화의 수준이 낮아 ‘오랑캐’인 서양의 문물을 비판의식 없이 들여왔다는 것이다. 반면에 조선은 우수한 유교문명의 계승자로서 서양의 문물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와 정반대인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시 일본은 조선을 침략할 때 조선은 안중에도 없었고 명나라를 치러 가는데 ‘길을 빌려달라(征明假道)’고 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이 국교를 다시 재개하여 조선통신사가 모두 12차례 일본을 방문했다. 우리는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예를 가르쳐주고 우수한 문물을 가르쳐 주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일본의 시각은 다르다. 당시 일본에 와 있던 네덜란드인들에게 일본인들은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조공’을 하러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도쿠카와 막부시대에는 자신이 ‘소중화’를 동북아지역에 설정하여 일본이 정점에 있고 조선, 오키나와 등 국가들을 하부에 놓는 시도를 했다. 근대에 들어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는 “조선은 문명의 관점에서 사지가 마비되어 스스로 움직일 능력이 없는 병자로서, ‘나쁜 친구’를 사귀는 자는 더불어 오명을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아시아 동방의 나쁜 친구를 사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본은 역사적으로 중화질서의 밖에 있었으며, 중국에 대해서도 적어도 대등한 관계를 추구했다. 쇼토쿠 태자는 607년 중국의 수나라에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편지를 보낸다”라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 이는 중국에게 대등한 관계를 기대하는 명백한 의사 표명이었다.

이처럼 양국은 서로를 보는 인식의 차이가 컸으며,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자체였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서로를 현실적으로 별개로 놓아두지는 않았다. 양국의 지리적 근접성은 서로 부대끼면서 상호작용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양국이 바다로 떨어져 있는 가운데, 한국은 일본을 외면하려는 경향을 가졌으나 일본은 필요시 힘과 무력으로 한국에 밀고 들어왔다.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660년에 패한 직후인 663년에 일본은 백제부흥군을 도와주기 위해 군대를 파견해 백촌강에서 신라 및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일본의 왜구는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에 한반도국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1592년 임진왜란 시에는 7년 동안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유린했다. 그리고 근대에는 일본이 1910년 한국을 병합했다.

상기와 같이 일본은 자신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이 선택한 순간에 자유롭게 한반도에 관여했다. 하지만 한반도국가는 역사적으로 일관되게 일본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일부러 외면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우리의 선조들이 일본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1200년대 후반에 몽골이 고려와 함께 일본을 공격하자고 요구할 때, 고려의 반응에서 일본에 대한 인식이 잘 나타난다. 즉, 당시 고려의 한 관리는 몽골정부 측에게 일본 침략을 만류하는 서한을 썼으며, “일본은 바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로서 ‘망각의 땅’으로 내버려 두자. 원래 중국도 일본을 개의치 않았고 그들이 오면 무마하고 그들이 가면 그만이었다”고 몽골 측을 설득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선조들은 일본을 ‘망각의 땅’으로 일관되게 인식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조선의 엘리트들은 일본을 무시하거나 외면했다. 중국이 주장하는 허구의 중화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안보를 중국에게 의지하기로 결정하고 중국 이외의 세상을 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1592년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은 전쟁 준비가 한창이었다. 일본은 조선에 사신을 보내 은근히 조선을 압박해 왔으나 조정은 이런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결국 위기감을 느낀 조선 조정은 일본의 상황을 확인해 보기 위해, 1590년 사절단을 일본에 파견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사절단이 조선으로 돌아와 보고한 내용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정반대의 의견이었다. 결국 조선 조정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지 못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은 일본에게 군사적으로 철저히 유린당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은 1607년 국교를 재개하고, 조선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조선통신사를 파견했다. 그 이후 조선은 그나마 일본에 대해 가져왔던 관심이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1800년대 중반에 동아시아로 몰려오는 서양의 세력에 맞서 일본은 새로운 대외적 지향을 가진 정치권력이 1868년 명치유신을 통해 일본에 등장했다. 하지만 조선은 이러한 일본의 정세변화에 무심했고, 이는 조선에 재앙으로 다가왔다. 당시 조선의 다수의 유생들은 척사를 주장하는 상소를 국왕에게 올렸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서양인은 사람이 아니고 금수이며, 이들이 조선에 들어오면 조선이 금수의 나라로 바뀌어 나라가 망할 것이다. 그리고 왜(倭)는 서양이 아니더라도 옛날의 적이요 서양의 앞잡이이기 때문에 화친할 수 없다.”

그리고 1870년대부터 일본 내에서는 ‘정한론(征韓論)’이 있었다. 1890년 최초의 일본 국회에서 야마가타 아리토모 총리는 “독립자위의 길에는 주권선을 수호하고 이익선을 보호하는 것이다. 주권선이란 자신의 영토이며 이익선이란 주권선의 안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구역이다”라고 선언하였으며, 이익선에 조선을 포함시켰다. 나아가서, 일본은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서는 불량한 국가인 조선을 병합해야 한다고 미국 및 유럽국가들을 설득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쳐 이들 국가들의 용인 아래 1910년 조선을 병합했다.

우리가 일본을 외면한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가 일본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경계하지 못하면서 일본으로부터의 위협에 준비를 못했고 많은 피해를 본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일본을 활용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해방 이후 지금도 여전히 일본을 외면하고 있고, 역사문제가 다른 현안을 압도한다. 일본의 객관적인 실력을 평가하고 일본을 활용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하면 일본이 과거의 군국주의로 돌아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와 관련, 우리는 중국이 일본을 대하는 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물론 일본과 역사문제가 있지만, 역사문제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2차 대전 이후 중국은 일본에 대해 복수를 하는 대신 전략적으로 자제했다. 당시 마오쩌둥은 전쟁배상금을 포기했고, 역사문제와 관련 ‘이분법’을 채택하여 “중국침략의 책임은 당시의 일본정부에게 있고 대다수 일본 국민들에게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일본의 정치외교적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역사문제를 전략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한다.

우리는 이제 현실적인 ‘국가이익’을 위해 일본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의 가운데에서 한국과 일본은 많은 공동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첫째, 북한의 무력도발을 막는데 협력할 수 있다. 일본의 협력이 없으면 우리는 북한과 전쟁을 하기가 어렵다. 특히, 일본이 갖고 있는 정보자산이 중요하다. 우리는 군사위성이 하나도 없지만 일본은 갖고 있다. 그리고 북한문제와 한반도통일과 관련 일본으로 하여금 우리가 미국에게 바라는 것을 조언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일본이 긴밀한 미・일동맹을 유지하고 있음에 따라, 미국은 일본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둘째, 한국과 일본은 부상하는 중국이 평화적인 국가가 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지금 동아시아의 패권국은 중국이고 21세기 중에 일본이 패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우리의 안보 이해관계는 구조적으로 중국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고 일본과는 일치한다. 셋째, 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첨단제품과 소재, 부픔 1,200개 품목 중 894개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이 중 270개는 일본이 글로벌 독점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일본은 우리에게 긍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 시 일본이 미군의 후방기지 역할을 했고, 선진경제국인 일본을 이웃으로 둔 한국이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는 등 우리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일본을 외면했을 시, 손해가 훨씬 더 많았다. 일본은 우리에게 이웃국가로서 우리와 관계를 깊이 가질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이웃이다. 우리가 일본을 외면하고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국가이익을 방기하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급변하는 동아시아 상황은 우리가 일본을 객관적으로 알고 잘 대응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역사적인 감정이 있지만, 이를 기억하되 우리가 국가이익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행동할 때이다. 우리는 일본을 외면하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직시하고 활용해야 한다.

*칼럼 내용은 필자개인 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 연상모 총영사는 주 니가타 총영사, 주상하이 부총영사, 주일본 공사참사관, 외교부 중국과장, 서울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위원을 역임하고, 성신여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현재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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