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43 ] 예술(Art)속의 와인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43 ] 예술(Art)속의 와인
  •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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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와인으로도 유명하지만 어려운 대학입학자격 시험으로도 유명하다. 박(Bac)이라 불리기도 하는 프랑스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는 나폴레옹 시대인 1808년에 도입되어 20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데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크게 일반Bac, 기술Bac, 직업Bac의 3가지가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치르는 일반Bac은 다시 인문학, 경제/사회/, 자연과학 등으로 세분화된다. 프랑스어, 외국어(2017년부터는 한국어도 포함되었다), 역사/지리, 수학, 철학은 공통 필수 과목이다. 대부분 논술로 치러지며, 수학은 문제를 직접 푸는 주관식, 외국어는 필기와 회화를 함께 테스트한다.

바칼로레아(Baccalaureat)를 치르는 프랑스 학생들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블로그

시험은 매년 6월에 프랑스 전역에서 일주일 간이나 치러진다. 논술은 각분야 당 3문제 중 하나를 골라 기술하는데 문제 당 4시간이 주어진다. 20점 만점에 평균 10점이상이면 시험을 통과한다. 절대평가로 이루어지는 채점은 주로 전국에서 차출된 고교교사가 맡는다. 통과한 학생들은 점수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국공립대에 입학할 수 있다. 애초에는 시험을 통과한 사람을 학사학위를 딴 수준으로 취급할 정도로 시험이 어려워 합격자 비율이 10%를 넘지 않았으나, 68운동을 거치면서 난이도가 점차 내려가 지금은 응시자 대비 합격률이 80%로 오히려 난이도가 너무 낮다는 비판도 있다. 그리고 시험의 공정성과 실용성의 논란도 있어 2018년부터 프랑스 정부가 시험의 구분을 없애고 대학의 자체 학생선발권을 확대하는 등 2021년 시행예정으로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하지만 올해에는 코로나로 인해 아예 시험을 취소하고 내신위주로 평가하기로 하여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시험 당일 공개되는 시험문제는 프랑스의 사회적인 화제거리가 되고 그날 저녁 언론이나 Bar에서는 문제의 해답을 놓고 각종 토론이 벌어진다. 다음은 2019년바칼로레아의 첫째 날 인문학 분야에 출제되었던 철학문제이다. “1)시간을 피하는 것이 가능한가? 2)예술작품을 설명하는 포인트는 무엇인가? 3)헤겔의 ‘법철학’ 발췌문을 읽고 이를 평하라” 이다. 이중 하나를 골라 4시간 안에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기술한다.

그 동안 출제되었던 문제 중 예술과 직접 관련된 문제를 몇 개 더 소개한다.

“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예술작품의 복제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예술작품을 좋아하는 것도 배워야 하는가?”
 
4시간안에 생각을 정리하여 논리적으로 기술하기가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다. 바칼로레아의 문제들을 우리나라의 시험과 비교해보면 대입수능시험보다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대과에 출제된 문제들과 비슷한 점이 많아 흥미를 끈다.

출처 : 아시아경제

조선시대 과거는 소과라 불리는 생원/진사시와 임금이 직접 문제를 내는 대과로 불리는 논술시험이 있었다. 소과는 경전에 대한 이해와 시, 문장을 짓는 능력을 평가한 반면 대과는 국가의 현안과 정책입안 능력을 논술형식으로 평가하였다.

조선시대 과거는 문과, 무과, 잡과의 3가지가 있었는데 문관중심사회 답게 임용인원은 문과가 대다수였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의 문과 급제자는 연평균 30명으로 총 15,000여명이었고, 소과는 이보다 좀 많아 연평균 100명에 총 47,0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과거의 응시생은 조선 초기에는 매년 10,000여명, 조선 후기에는 5만~6만명에 달했다. 평균 경쟁률은 소과와 대과를 합쳐 100~400대 1에 이르러 상당히 어렵고 경쟁이 치열한 시험이었다.

그리고 시험이 매년 정기적으로 있는 것도 아니었고 보통 3년에 한 번씩 열려서 별과라 불리는 특별 과거가 없는 경우 한 번 떨어지면 3년을 기다려야 했다. 출제범위도 정해져 있지 않아 문학, 정치/경제, 사회,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가 출제되었다. 프랑스의 일반 바칼로레아의 출제영역과 비슷하다. 그래서 한 문중에 한 사람만 급제자가 나와도 문중을 일으킨다고 했을 정도로 합격하기가 어려웠다. 얼마 전까지 시행된 고시처럼 시험준비에 평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었다.  문과 합격자의 평균연령은 35세 정도, 최연소 합격자는 14세, 최고령 합격자는 85세였다. 특이한 점은 합격했을 경우 합격증서와 함께 본인에게 답안지를 돌려주어 문중에서 가보로 전승되기도 했다. 
 
“올바른 신하를 얻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여자들의 옷 입는 스타일이 아직도 고려의 풍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와 이를 고치기 위한 방법은?” 
“교육을 통해 인재를 배출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조선 태종 때에 치러진 문과시험의 문제들이다.
 
세종 때의 시험문제를 보면, “불합리한 행정구역개편에 따른 문제해결 방법에 대해 논하라”
“소문만으로 관리를 탄핵하는 폐단을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
세조 때에는 관리를 해고하는 기준에 대해 묻기도 한다. “관료 중 해고해야 할 관료의 선정기준은?” 과 같은 오늘날의 노동법 문제와 비슷한 문제도 있다. 특히 인재의 선발, 등용, 평가에 대한 질문은 가장 ‘흔한’ 기출문제였다. 성종때는 독도의 처리문제를 묻는 문제도 있어 얼른 보면 요새 치러지는 대기업 입사시험의 시사 문제 같기도 하다.

조선의 과거시험과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의 공통점은 응시자가 여러가지 지식을 입체적으로 조합하여 문제의 요지에 맞게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칼로레아에는 예술에 관한 문제가 빠지지 않는 대신 조선의 과거문제에는 이와 관련된 문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조선도 예(藝)를 숭상한 나라였다. 하지만 조선의 과거시험은 관리 임용시험으로써 당장 실행할 해결책과 정책입안역량에 대한 평가가 우선이었다. 반면 바칼로레아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이라 이러한 차이가 수긍이 된다. 또한 바칼로레아의 시험문제를 보면 ‘예술에 대한 이해’를 지식인이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소양으로 생각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시각이 드러난다. 

그러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을 뜻하는 영어의 art는 라틴어의 ars에서 왔다. Ars는 그리스어의 techne를 직역한 것이다. 그리스어의 techne는 어떤 물건을 만드는 솜씨(skill)뿐만 아니라 군대를 통솔하는 리더십과 관중을 사로잡는 솜씨, 예컨대 요즘의 공연무대에서의 관중 흡입력 까지를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의미였다. 그래서 이런 솜씨는 법식이나 원칙(precept)에 대한 지식을 요했고 이런 지식이 없는 ars는 존재할 수 없었다.
 
고대인들은 미술(Fine Art)과 공예(Craft)를 의식적으로 나누지는 않았지만 대신 정신적인 노력과 육체적인 노고여부에 따라 점차 이를 구분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세에 있어 ars는 직업으로서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자율적인 예술’(혹은 교양)을 의미했는데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술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 등 일곱 가지를 의미했다. 동양의 주례(周禮)에서 꼽는 여섯 가지의 기예인 “6예(藝)”,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와 비교가 된다. 여기서 ‘사(射)’는 활쏘기, ‘어(御)’는 말타기를 말한다. ‘예술(藝術)’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한다. 중세 때만해도 회화와 조각은 교양도 기술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지만 어떤 원칙(precept)이 요구된다는 측면에서는 예술로 대우받기도 하였다. 고대에 성립된 예술의 개념은 르네상스때에도 통용되었고 근대까지도 지속되었지만 오늘날엔 기하학, 천문학과 같은 ‘과학’과 공예가 탈락하고 세상의 변화에 따라 무용이나 영화와 같은 새로운 개념이 추가되었다. 공예는 경우에 따라 여전히 예술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순수예술과 실용예술로 나누어 실용예술의 한 분야에 넣기도 한다.

18세기 들어 프랑스의 샤를로 바뜨는 미술(Fine Art)을 회화, 조각, 음악, 시, 무용, 건축, 웅변의 7가지로 규정짓고 역시 과학과 수공예는 예술이 아니라고 분류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예술에 대한 범위가 좁아져, Fine Art는 건축과 음악을 제외한 시각예술만을 의미하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는 프랑스가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예술의 분류법을 참고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헤겔이 미학연구에서 사용하였던 제1에서 제5의 예술인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문학을 기본으로 무용/연극 등의 공연예술, 영화, 사진 등 미디어 아트, 만화, 게임을 제6에서 제10의 예술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는 프랑스내에서도 아직 논란이 많아 제10의 예술로 요리가 언급되기도 한다. 필자는 요리가 예술이라면 와인도 당당히 스스로 예술의 범주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예술이냐 하는 문제는 오늘 날 명확한 기준도 없고 구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어 보인다. 미국의 미학자 베이츠는 “예술은 개방적인 개념으로 예술의 필요충분적 기준의 제시는 불가능하다. 예술의 창조성속에서 예술가는 언제나 이전에는 결코 창조되지 못하였던 것들을 창조한다. 따라서 예술의 조건이 사전에 설정될 수는 없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 어떠한 특정한 자격요건이나 교육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꼭 미적으로 아름다워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술은 단지 우연의 소산물이 아닌 의도적인(conscious)활동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작품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precept)과 함께 수련과 노고가 필요하다. 아무것이나 갖다 놓고 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례로, 서예를 한다면서 ‘예서’ 등 서예의 기초적인 붓 놀림조차 수련하지 않고 글을 흘려 쓴 것을 ‘초서’ 라고 하거나, 구상미술에 대한 초보적인 기초도 없이 아무렇게 그린 후 추상화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수용여부는 별개이다. 사실 현대 미술에서는 이 부분 조차도 애매하기도 하여 실제로 많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출처 : 에포크타임스

변기에 서명을 하여 예술작품이라고 하거나,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빈 캔버스를 작품이라고 전시하고, 바나나 하나를 벽에 붙이고서 12만달러의 가격을 책정하기도 한다.

창조성과 모방성의 문제, ‘예술행위가 없는 예술’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최근 전문작가가 대작한 작품에 약간의 터치를 하여 판매한 어느 가수의 작품을 놓고 벌어진 ‘형법상 사기’ 논란도 이러한 사례의 일부이다. 백남준은 스스로 예술이 사기라고 비틀기도 하였다. 반면에 독일의 전위예술가 요셉 보이스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분명한 것은 예술이 대단히 주관적이라는 사실이다.   

예술의 전성시대로 불리는 르네상스시대에는 예술가가 조각이나 그림만 그리지 않았다. 여러 분야에 두루 전문성을 가진 ‘예술가’가 많았다. 그래서 다방면에서 뛰어난 사람을 요새도 ‘르네상스적 인간’이라 부른다.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이탈리아어: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
출처 : 위키백과

대표적인 르레상스적 인간으로는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꼽힌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요새의 대학 전공으로 치면 21개 학과에 정통했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천문학자, 철학자, 해부학자, 토목공학자, 시인, 음악가, 물리학자, 동물학자, 생리학자, ….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와인은 그 자체로도 사람에게 주는 즐거움, 창조성 등에서 예술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예술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과는 별도로 많은 예술가들이 와인을 마시는 것 자체를 좋아하고 실제의 작품활동에 이를 투영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미술과 와인에 관련된 부분을 조명해 본다.

예술가들이 와인을 사랑하는 것은 문학이나 음악과 마찬가지로 미술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여러 형태로 와인과 연계된 작품활동도 한다. 그 중에서는 와이너리와 함께 하는 브랜드 라벨 작업이 단연 눈에 띈다.

출처 : nyculturebeat

잘 알려진 것처럼 프랑스 보르도의 샤또 무똥 로칠드는 1945년부터 매년 선보이는 새로운 와인병의 라벨에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사용한다.

출처 : 더센트

1947년에는 장 콕토, 1955년에는 조르쥬 브라크, 1958년에는 살바도르 달리, 1964년에는 헨리 무어, 1969년에는 호앙 미로, 1970년에는 마르크 샤갈, 1971년에는 칸딘스키, 1973년에는 파블로 피카소, 1975년에는 앤디 워홀, 1988년에는 키스 해링, 2015년에는 우리나라의 이우환 화백 같은 쟁쟁한 대가들이 라벨에 작품을 올렸다.

 와이너리는 다르지만 우리나라 화가로서 처음 라벨작업에 참가한 사람은 2013년 이탈리아 와이너리인 카사노바 디니타르디의 2011년 빈티지의 라벨을 제작한 김창렬 작가이다. 이 와이너리는 1981년부터 예술가들과 함께 라벨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로베르 콩바스, 귄터 그라스, 오노 요코, 토미 웅게러 등이 참여했다. 프랑스의 퐁데자르 와이너리도 중국의 웨민쥔, 자오우키 등과 비슷한 라벨작업을 했다. 그 외 미국의 켄우드, 독일의 게오르그 브로이어, 이탈리아의 미켈레 끼아를로 와이너리도 작가들과 협업으로 라벨을 제작한다. 이탈리아의 미술가이자 조각가인 산드로 키아는 아예 카스텔로 로미또리오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다.
 

출처 : klook

고전적인 명화에도 와인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드물지 않은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에는 레드 와인 잔이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 얀 베르메르의 “신사와 포도주를 마시는 여인”과 덴마크 화가 세베린 크리위에르의 “힙, 힙, 후라”도 와인 소재 작품으로 유명하다.

와인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현대 화가들도 많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미국의 웨인 인스럿, 캐서린 맥카갈, 조넬 서머필드, 영국의 랠프 스태드먼, 프랑스의 멜라니 뤼소, 독일의 미하엘 아피츠 등이다.

그리고 아예 물감 대용으로 와인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도 있다. 미국의 화가 크리스티나 로카시오, 오스트리아의 베른트 호락, 독일의 라이너 헤스, 헬라 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베른트 호락은 레드 와인으로 그리는 그림을 ‘비노렐(Vinorell)’로 이름 붙이고 상표등록까지 했다. 그리고 오크통의 나무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있다.

독일의 귄터 크링스처럼 “와인 초상화”라는 주제로 로마네 콩티, 샤토 마고, 사시카이아, 오퍼스 원 등 세계의 유명 와인 브랜드의 와인 병 사진을 찍거나, 미국의 피터 리프만과 같이 와인 용 말린 포도를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다.

와인을 좋아한 작가들 중에는 키안티 와인을 좋아한 미켈란 젤로, 매일 밤 와인에 취한 것으로 알려진 프랜시스 베이컨, 돈 페리뇽을 좋아한 앤디 워홀, 로제 샴페인을 좋아해 손님이 방문하면 꼭 대접한 살바드로 달리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와이너리가 수준 높은 컬렉션을 갖추고 미술관을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나파밸리에서는 아테사, 홀, 페쥬, 브라스우드, 아큐먼, 라크미드, 세인트 슈페리 , 러드포드 랜치 등의 컬렉션이 잘 알려져 있다. 도넘 에스테이트는 와이너리 부지내에 조각 공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턴불 와인셀러는 앤설 아담스의 작품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소장한 사진 갤러리를 운영한다.

미국에서는 아마츄어 화가들이 Bar에 모여 그림을 그리는 Art Bar나 동호인끼리 와인을 마시면서 그림을 그리는 “Sip and Paint” 같은 모임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자주 열린다. 와인과 예술이 실제 생활속에서 결합하는 것이다.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의 아이패드 작품

필자도 아마츄어 작가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다. 요즘은 가끔씩 카페에서도 그림을 그린다. 이번 글에 올리는 난초 그림도 카페에서 아이패드로 그린 것이다. 예술은 일상 생활속에도 있다. 그리고 가끔씩은 와인과 함께 해도 제격이다. 끝.  


[목요기획]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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