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한국외교]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과 한국의 선택
[국제관계/한국외교]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과 한국의 선택
  • 이강국 前시안 총영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0.06.1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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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前주상하이총영사

 맛있는 음식과 다채로운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관광 천국, 불편함이 없이 영어가 통하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 고층 빌딩이 즐비한 자유 중개무역항과 국제 금융허브 등 온갖 수식어가 부족한 홍콩이 위기에 처해있다.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개정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더니 이제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 문제로 미중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장래를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과 영국 간에 홍콩을 반환하는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을 때 덩샤오핑은 일국양제(一國兩制, One Country, Two Systems)’를 제시하였다. 결국 일국양제에 따른 항인치항(港人治港, Rule by Hong Kong People)’, ‘고도자치(高度自治)’라는 중국 측의 유연한 입장이 바탕이 되어 1984년 홍콩반환협정(홍콩문제에 관한 중화인민공화국과 영국의 공동선언: 영공동선언)이 체결됨으로써 199771일부로 중국에 반환되었다.

 홍콩에서의 ‘1국가 2체제는 중국이 홍콩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해 지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특히, 영공동선언 제312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홍콩에 대한 기본방침 정책이 50년 내에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규정하고 있고,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 제5조도 홍콩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최소 50년 동안 변동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1990217일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 기초위원회 9차 전체회의에 출석했던 위원들을 접견하면서, “역사적 의의와 국제적 의의를 지닌 법률을 만들어냈다. 역사적 의의를 지녔다고 하는 것은 과거나 현재만이 아니라 앞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고, 국제적 의의를 지녔다고 하는 것은 제3세계뿐만 아니라, 전 인류 모두에게 장구한 의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홍콩에서의 일국양제실시에 대한 덩샤오핑의 확언이 지켜질 것으로 신뢰해 왔고, 이에 따라 미국은 1992년 홍콩정책법(US-Hong Kong Policy Act)을 제정하여 관세나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홍콩에 중국 본토와 다른 특별대우를 보장해 왔다. 그런데, 홍콩반환 50년이 되는 해는 2047년으로 아직도 27년이 남은 시점에서 중국의 홍콩보안법 직접 제정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당초 약속과는 어긋난다.

첫째, 중국이 직접 홍콩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홍콩 자신이 법률을 제정하고 통치한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고도자치(高度自治)’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번에 선례가 생겨 둑이 터졌기 때문에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 법률을 직접 제정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날 것이다.

 둘째, 홍콩반환협정과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은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홍콩보안법에는 홍콩 내의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외부 세력이 홍콩 문제에 간섭하는 활동을 금지처벌한다는 내용과 함께 중앙정부의 국가 안보 관련 기구가 홍콩에 직무를 이행하기 위한 기관을 설립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따라 집회시위 등이 제약을 받게 됨은 물론 안보관련 기구가 반중국 인물 색출에 나서면 움츠려들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홍콩보안법 제정은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통제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제정한 구체적인 배경과 동기는 무엇인가?

 첫째, 기회를 보고 있던 차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틈타 처리한 것이다. 홍콩 정부가 국가보안법 제정을 처음 추진한 것은 2003년 퉁치화(董建華) 행정장관 집권 때였다. 당시 홍콩 의회인 입법회를 친중파가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제정을 자신했지만, 50만 명의 홍콩 시민이 도심으로 쏟아져 나와 홍콩보안법 반대를 외치면서 실패했다. 그리고 지난해 송환법 개정이 대규모 시위로 인해 무산되었는데, 중국은 아예 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키로 방향을 선회하였으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이번 전인대를 적기로 잡은 것이다.

 둘째, ‘홍콩의 중국화전략 일환이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중국몽을 기치로 하나의 중국원칙하에 홍콩의 중국화를 급속히 진행해 왔다. 그런데, 송환법 반대시위 와중에 실시된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압승함으로써 오는 9월로 예정된 입법회 선거에서도 범민주파가 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보여 중국 입맛에 맞는 법안 통과는 어렵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입법회 우회의 선례를 만들어 홍콩의 중국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셋째, 중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의 강경 대응방침이 표출된 것이다. 중관계가 패권경쟁 양상을 띠면서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한층 강화하고 상원은 지난 514일 위구르인권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차이잉원 대만총통 취임 축하성명을 내고, 미국 정부는 무기 판매를 허가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공언해 왔는데, 비교적 약한 고리라고 인식되는 홍콩을 타깃으로 하여 공격을 가한 것이다.

 넷째, 홍콩을 일국양제시행의 모범 사례로 만들어 대만 통일까지 이어가려는 구상을 갖고 중국으로서는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이다. 홍콩에서의 송환법 반대 시위 덕분에 재선에 성공하고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하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차이잉원 대만총통은 일국양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는 등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으나, 현재 중국은 이를 제어할 뾰족한 수가 없다. 일인체제 공고화에 연임제한까지 철폐한 시진핑 주석이 송환법 실패로 홍콩문제에 발이 묶이면서 대만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야기됨으로써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에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리를 해 가면서 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전인대에서 528일 홍콩보안법 초안이 통과되자 미 트럼프 대통령은 529(워싱턴 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홍콩보안법 제정 강행은 중국이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라며 홍콩이 더는 우리가 제공한 특별대우를 보장할 정도로 충분히 자치적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국은 약속한 일국양제원칙을 일국일제로 대체했다며 따라서 홍콩의 특별대우를 제공하는 정책적 면제 제거를 위한 절차를 시작하도록 행정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미국의 조치가 어떻게 시행될지 어떤 영향을 줄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홍콩이 특별지위를 잃게 되면 결국 허브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중국은 홍콩을 통한 수출 효과를 톡톡히 누려왔고 홍콩을 통해 자본을 조달해 왔는데, 홍콩 사태는 중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중국은 홍콩의 경제적 비중이 줄어들었고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역할을 상하이나 선전으로 이동시켜갈 수 있기 때문에 손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나, 홍콩은 아직도 중개 무역항국제 금융허브로서 다른 지역이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홍콩은 한국의 4위 수출 대상으로 수출액은 연 300억 달러 규모로서, 대부분이 중국으로 재수출되고 있다. 낮은 법인세와 안정된 환율제도, 항만, 공항 등 국제금융무역물류 허브로서 이점을 갖춘 홍콩을 중계무역 기지로 활용해온 것이다. 화장품, 농수산식품 등 품목은 중국의 통관검역이 까다로워 홍콩을 활용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홍콩의 허브기능이 약화되면 한국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면밀한 대비가 필요하다.

 홍콩사태 악화는 잘 대처하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홍콩을 거치는 중국의 대미 수출이 차질을 빚으면 석유화학, 가전, 의료정밀, 광학기기, 철강, 플라스틱 등의 품목을 중심으로 중국보다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어 대미수출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이 약화되면 그 기능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데, 주로 싱가포르가 거론되고 있지만 서울도 대체 역할을 노려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금융경쟁력을 끌어올려 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한 방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해 나가야 한다.

 이제 홍콩문제는 미중패권 경쟁의 중요한 문제로 작용하고, 홍콩은 신냉전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기대는 구조를 지닌 한국으로서는 신냉전이 격화됨에 따라 고난도의 전략과 행동이 요구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당장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민주주의 국가 간 공급망 확대를 전제로 한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EPN)를 구상하고 한국 등 동맹국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어려울수록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정도(正道)이고 국익에 부합한다. 국제정세 흐름에 실용적으로 대응하되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가치동맹을 중심에 둬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경제통상 이익이 최대한 확보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G7 정상회담 초청은 우리의 지렛대(레버리지)를 확대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국제회의를 통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국익을 최우선에 둔 냉철한 전략을 마련한 가운데 역량을 최대한 결집시켜 신냉전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한다.

* 이강국 총영사는 중국 연수와 주중국대사관, 주시안총영사관 근무로 137개월 동안 중국에서 생활하였다.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중국의 新실크로드 전략 일대일로』, 『서안 실크로드 역사문화기행』, 『일대일로와 신북방 신남방 정책』을 저술하였고, 지금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중국의 현대사회와 문화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위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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