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41 ] 사실(Fact)과 진실(Truth)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41 ] 사실(Fact)과 진실(Truth)
  •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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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관련된 명언 중에는 ‘진실(truth)’에 관한 글귀가 종종 눈에 뛴다. 와인과 진실이라는 두가지 주제를 한데 묶어서 보면 다소 생뚱맞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의미를 찬찬히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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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vectorstock  ⓒ 데일리경제

“In Vino Veritas(와인속에 진실이 있다)”. 앞선 글에서도 소개한 바가 있는 고대 그리스의 서정 시인 알카이우스가 남긴 말이다. 주로 독일의 사상가들이 와인과 진실을 연결시키는 명언을 남긴 것도 이채롭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알카이우스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하여 “와인속에는 진실이 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진실과 건배한다”라고하여 건배하는 것을 진실과 만나는 행위로 묘사하였다. 독일의 시인인 프레드리히 뤼케르트 역시 “와인에는 진실이 있다. 오늘날 진실을 말하고 싶으면 취해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와인은 강하다. 왕은 더 강하고 여자는 더욱 강하다. 그러나 가장 강한 것은 진실이다”. 이 말은 독일의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가 했다. 칼 마르크스는 한술 더 떠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믿을 때는 조심하라”고도 했다. 와인을 진실을 판단하는 도구로 본 것이다. 학술 토론회 등을 뜻하는 심포지움(sympodium)은 “함께 와인을 마신다”는 의미를 가진 simposia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지성인들은 밤새 와인을 마시며 인간 본성과 우주 만물의 이치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철학적 담론을 추구한 소크라테스와 제자들도 심포지움에서 와인을 마시며 밤을 세운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위대한 사상가들이 와인에 진실이 있다고 한 이유는 와인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가슴속에 담긴 이야기를 털어놓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술을 먹으면 대체로 진심을 털어 놓는다. 더욱이 와인은 다른 술에 비해 마시기가 좋고 분위기를 돋우는데 제격이다.

1990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구로사와 아키라감독(가운데)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오른쪽), 조지 루카스(왼쪽)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 MORNING CALM  ⓒ 데일리경제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세계의 기라성같은 감독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일본영화의 수준을 세계에 알린 거장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적 시도는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 같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감독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과 미국아카데미상의 4개 부문을 비롯 여러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수상함으로써 수상기록면에서는 아키라 감독을 뛰어 넘었지만, 고인이 된 지금도 아키라 감독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감독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다. 그의 영화 중 ‘7인의 사무라이’는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수상과 더불어 율 부리너 주연의 ‘황야의 7인’으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되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2016년에는 덴젤 워싱턴, 우리나라의 이병헌이 출연하여 ‘매그니피션트 7’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한번 리메이크 되었다. 1990년에는 미국아카데미의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아키라 감독은 와인을 좋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번은 런던의 영화제 참석길에 호텔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아카데미 감독상을 4차례나 수상한 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 감독이 다가와 남자가 와인이 뭐냐며 스카치 위스키병을 들이 밀었다는 일화가 있다. 

출처 : 위키백과  ⓒ 데일리경제

 195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함으로써 아키라 감독을 일찌감치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해준 ‘라쇼몽’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5사람의 핵심적인 등장인물이 한 사무라이가 죽게 된 이유와 그 배경을 놓고 자신만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 한 가지 ‘사실’에 대한 ‘진실’을 각기 다르게 묘사하는 장면이 주요 줄거리를 이룬다. 이 다섯 사람의 화자 가운데에는 시신으로 발견된 사무라이 그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사무라이는 무당의 입을 빌려 사건을 묘사하는데 심지어 사건의 진상을 가장 잘 알 것 같은 죽은 자 조차도 자신의 자존심이 걸린 부분에서는 말이 갈린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사실’을 보는 것은 단순히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갖 이해관계가 함께하기 때문에 제3자가 진실에 접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거기에다 한 가지 사실을 인식하는 과정에도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가치관, 특정한 의도에 따른 왜곡, 느낌, 착오, 망각, 사실의 파편적 인식 등은 각자의 인식된 사실에 편차를 가져온다. 그래서 인식된 ‘사실’만으로 실체적 ‘진실’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때론 태풍도 불고 천둥과 벼락도 치지만 먼 우주에서 보면 대단히 평온하다. 꽃피는 봄날 오후에 피크닉 가방을 들고 사람 없는 들판으로 나가보라. 따스한 햇빛과 부드럽게 불어오는 실바람, 간간히 들려오는 새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금방 나른함이 찾아올 정도로 주위가 고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조용한 봄날 오후에도 우리가 앉아 있는 들판은 사실 음속보다도 빠른 속도로 팽이처럼 팽팽 돌고 있다. 그냥 스스로 돌고 있는 것만 아니라 동시에 총알보다 30배나 빠른 속도로 태양 주위를 비행한다. 말하자면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스스로 회전하면서, 우주선 보다도 4배나 빠른 탈것인 지구라는 행성을 타고 있는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적막과 평온을 느끼는 것이다. 지구는 적도 기준으로 시속 1,674Km의 자전속도를 갖고 있다. 위도가 높을 수록 속도가 줄어 극점에서의 속도는 0이다. 우리나라가 위치한 북위 37도를 기준으로 하면 시속 1,300Km가 넘는다. 이는 시속 1,224 Km인 음속보다도 빠른 속도다. 그리고 동시에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을 하고 있는데, 그 속도가 무려 시속 108,000Km에 달한다. 다행히 어마어마한 속도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등속운동을 하는 덕분에 우리가 이를 느낄 수 없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고 지구가 돌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 때는 “지구가 돈다”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 만으로도 사형을 선고받았던 사람도 있다.

사실에 대한 무지도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요즘은 비행기 여행이 보편화 되어, 장거리 비행의 대부분은 비행기가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비행기 여행에 대해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비행기 여행은 위험하며 한번 사고가 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열차여행과 비교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열차여행이 더 안전한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사실’을 살펴보면 ‘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비행기 여행이 열차 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믿는 주된 이유는 사고의 빈번도와 사망확률이 비행기가 열차 보다 훨씬 더 높다는 데에 있다. 과연 사실이 그럴까? 국제민간항공기구(IATA)가 발표한 2009년 보고서를 보면 연간 총 3,500만 항공편이 운항되었고 승객은 총 23억명이 탑승하였다. 이 중 사고는 18건이 발생하여 총 685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를 총 승객 대비 사망자 비율로 환산하면 0.0000029% 정도가 되는데 이는 814만 분의 1로 0.000012% 확률에 해당되는 로또 당첨확률 보다도 4배나 낮은 확률이다. 그렇다면 비행기 사고는 한번 발생하면 모두가 죽는 것인가? 미국 항공운항국의 자료에 따르면 1983년부터 2000년까지 발생한 비행기 추락 사고에 있어 탑승객의 95.7%가 생존하였으며, 이 중 26건은 가장 심각한 수준의 추락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50%이상의 승객이 살아남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총 승객 수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열차가 비행기 보다 1.4배 정도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열차 간 충돌이 자동차 간의 충돌보다도 30배나 더 사망확률이 높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매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흔히들 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느끼지 못하는 것을 넘어 사실을 잘못 알고 있거나 진실이 아닌 진실을 굳게 믿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출처 : mehansa  ⓒ 데일리경제

사실이란 실재로 존재하는, 인간의 객관적인 관찰행위로 확정된 사건이나 현상을 말한다. 그래서 유효한 사실은 하나이다. 그래서 ‘거짓된 사실’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면 ‘진실’은 무엇인가? 진실은 착오, 왜곡이나 은폐 등 거짓된 것을 배제한 근원적으로 참된 현상을 말한다.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다. 그래서 진실 역시 상대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이지만 진실은 여러 개다’ 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똑 같은 ‘사실’ 앞에서도 ‘진실’을 각기 다르게 이야기한다. ‘진실’을 다르게 주장할 수 있는가?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진실을 언제나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진실을 판단하는 과정에서는 진실이 다르게 해석되거나 주장될 수가 있다. 이를 두고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석만이 존재한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때로는 특정한 의도에 따라 진실을 무시하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왜곡이 아니더라도 온전한 사실이 아닌 부분적 파편에 바탕을 둔 ‘진실’ 판단은 위험하다. 더욱이 잘못 인식된 사실이나 왜곡, 조작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실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에 기초한 진실주장은 기만이며 특히 사실이나 현상 자체를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행위는 범죄행위에 해당하기도 한다.

출처 : wonderfulmind  ⓒ 데일리경제

이렇게 자신의 입맛이나 이해관계,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첨삭하고 가공하여 주장하는 자기만의 진실을 뉴욕타임즈의 기자인 파하드 만주는 ‘True Enough(한국에서는 ‘이기적 진실’이라는 책으로 출판됨)라는 저서에서 이를 ‘Post Truth’로 표현했다. 그리고 2017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군중사진이 조작됐다는 논란과 관련하여 백악관 선임고문인 캘리언 콘웨이가 이를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는 말로 변명해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Alternative Facts라는 단어는 현재 미국에서 그냥 거짓말을 둘러대는 것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예전엔 정보가 부족해서 진실에 다가가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덕분에 검증되지 않거나 왜곡된 정보가 오히려 넘쳐 흘러 진실을 가리기가 힘들게 되었다. 가짜뉴스도 많고 극단적인 주장도 많은 세상이지만 신뢰가 없는 세상은 더욱 살기 힘든 세상일 것이다. 사실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하여 미국의 작가인 린다 핀의 짧은 글귀를 인용한다. “만약 그것이 그들에게 사실이라면 당신에게도 사실일 것이다”. 와인을 자주 마시면서 진실에 자주 다가가고 싶다.  끝.

 


[목요기획]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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