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국제관계 칼럼]북한의 한국 조롱, 무엇이 문제인가?
[외교/국제관계 칼럼]북한의 한국 조롱, 무엇이 문제인가?
  • 최 병 구 전 주 미국 총영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0.06.0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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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한국 정부의 핵심부에 대해 듣기 민망한 조롱을 퍼붓곤 한다. 최근 예로,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5월 15일 ‘북한인권백서’를 거론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제정신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의 이런 언사는 1년여 전부터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4월 시정연설을 하면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 … 우리의 입장과 의지에 공감하고 보조를 맞추라”고 강변했다. 2019년 8월 11일 외무성 미국국장 담화 형식을 빌어서는 청와대를 ‘겁먹은 개’에 비유했다. 심한 모욕이었다.

 문 대통령이 2019년 8·15 경축사에서 ‘평화경제’를 제안한데 대해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담화를 통해 “(이 제안은)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노릇”이라며 일축했다. 이 담화는 문 대통령에 대해 “아래 사람이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내리 읽는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이라고 조롱했다. 11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에 김정은 위원장 참석을 초청하는 친서를 보낸데 대해서는 “일이 잘 되려면 때와 장소를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훈계하며, “남조선 사회를 움직인다는 사람들이 … 물 위에 그림 그릴 생각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2020년 1월 우리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 부탁으로 김정은 위원장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전달한 사실을 공개하자 “주제넘은 일, 멍청한 생각”이라고 발끈하는가 하면, 3월에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까지 나서서 “청와대 행태가 세 살 난 아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 완벽하게 바보스럽다”고 했다. 경멸이었다. 김여정은 “우리와 맞서라면 억지를 떠나 좀 더 용감하고 정정당당하게 맞설 수는 없나”라고 주문까지 했다. 평창올림픽 때 청와대로 문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평화 메신저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이 이런 언사를 보이니 우리로서는 실망이 컸다.

 북한은 왜 이랬을까?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북한이 사용한 언어의 행간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동안 수차례 문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대북제재 완화 등 뭔가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무 것도 없자 울화가 치밀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원인은,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하면서 낭패를 당한 배경에 한국 정부가 있다고 오해했을 수 있다. 북한의 막말과 조롱이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부터 본격화된 사실이 이런 개연성을 말해준다. 회담이 뜻대로 되지 않은 이유를 한국 탓으로 돌리면서, 문재인 정부를 더 이상 믿지 않겠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한 것이다.

 북한이 한국을 마구 대한 또 다른 배경은 대미 관계를 추구해나감에 있어 한국 정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데 있다. 김정은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중재자 행세를 그만두라’고 요구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대미 직거래’가 가능해진데다 한국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으니 한국을 배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이 온갖 조롱을 할 때마다 우리 정부는 ‘따로 할 말이 없다’ ‘북한은 우리와 쓰는 언어가 다르다’라는 말로 넘어가곤 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고충은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북한의 조롱에 끝까지 꿀 먹은 벙어리 같은 자세를 취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어 걱정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으면 이를 인정하거나 시인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더군다나 내정간섭적인 행위를 묵인하면 이는 남・북한 관계가 수직관계(상하관계)로 오인될 수 있다.

 다음으로, 북한의 조롱은 또한 대한민국의 위신을 훼손한다. 한 국가가 국제사회에 차지하는 지위와 위신은 안보, 경제와 더불어 국가이익을 구성한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자신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10위권에 위치한 대한민국을 한껏 조롱하는데 우리 정부가 이렇게 침묵으로 일관하면 이는 국가이익을 해치는 일이 된다.

 북한의 독설은 우리의 품격(dignity)을 떨어트리고 자존감을 상하게 만든다. 문 대통령을 대놓고 우롱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우롱하는 일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도 2015년 7월 야당 대표 시절 이렇게 말한바 있다. “(북한이) 상대방의 국가원수를 막말로 모욕하는 것은 국민 전체를 모욕하는 것과 같다.” 국가의 자존은 다른 나라가 지켜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보인 태도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지나친 대북 저자세나 눈치 보기는 북한의 ‘한국 길들이기’를 일상화시킬 수 있다. 북한은 언제든 아무 거리낌 없이 우리에 대해 갑(甲)질을 할 것이며, 그 정도가 심해질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방식은 효과적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무대응으로 일관해서도 안 된다.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는 어떤 채널을 통해서든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나 북한 스스로의 품격을 위해서 막된 언사를 삼갈 것을 요구해야 한다. 해야 할 말은 하고, 표시해야 할 불만은 표시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도 2019년 4월 “할 소리는 당당히 해야 한다”고 했고, 김여정도 2020년 3월 담화에서 ‘용감하고 정정당당하게 맞서라’고 큰 소리 치지 않았나.

 정부가 지금까지 북한에 보인 태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이 앞서서 이행이 불가능한 약속을 한 일은 없는지, 남북 관계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조바심 때문에 무리를 한 일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정부가 이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 북한의 조롱은 ‘뉴노멀’이 될 것이다.

*상기 칼럼내용은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최병구 대사는 주미국총영사, 주노르웨이대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외교안보』(2017), 『외교의 세계』(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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