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광장]김정은이 칩거를 깨고 돌연 나타난 의도는?
[외교광장]김정은이 칩거를 깨고 돌연 나타난 의도는?
  • 강 근 택 /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0.05.3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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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근택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 참배 행사에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자 김정은의 건강상태에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4월 21일 CNN의 김정은 중태설 보도로 북한은 전 세계적 뉴스의 초점이 되어 왔다. 김정은에 대한 건강상태 논의를 넘어 김의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관한 논의로 비화하기까지 하였다. 김의 건강상태가 심히 염려스럽기 때문에 권력승계가 불가피 할 것이라는 보도가 확산되고 있었다. 그러나 5월 1일 세상을 놀라게 하는 반전이 일어났다. 순천 인비료공장 준공식에 김정은이 오랜 칩거를 깨고 깜짝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으로 이번 사태는 일단 가라앉게 되었으나 몇 가지 근본적인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의문은 북한은 김정은의 신변이상설에 왜 그토록 침묵으로 일관해 왔을까? 두 번째는 김정은이 오랜 칩거를 깨고 깜짝 모습을 드러낸 의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무릇 국가 최고지도자의 유고사태와 다름없는 국가안위가 걸린 문제에 북한당국이 침묵으로 대응해 왔다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이러한 행동에는 분명 이에 합당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문제의 실타래를 푸는 순리로 생각된다.
  북한의 의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이 처한 대내외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북한은 미국과의 핵협상 부진으로 인해 국제적 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코로나 사태라는 이중고를 겪게 되었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국경봉쇄 조치로 무역액은 격감되고 장마당 가격은 치솟아 주민생활은 피폐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군인들에 대한 배급마저 1/3로 줄어들었다고 하니 매우 엄중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김정은에게는 체제결속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을 것이다.

  이것을 방증해 주는 것이 지난 수개월간 단행되어온 당과 군의 고위직에 대한 인적쇄신이었다. 당에서는 정치국 위원 17명 중 11명과 중앙군사 위원 11명 중 7명이, 군부에서는 대남공작 총책인 정찰총국장과 김정은의 경호실장격인 호위사령관이 새 인물로 교체되었다. 금번 인사는 세대교체와 더불어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 있는 인물의 기용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처럼 북한으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체제결속이 요구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었느냐는 의문도 체제결속 문제와 연관시켜 찾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남북관계를 살펴보자.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눈에 거슬리고 신경이 쓰이는 대상은 남쪽에 정착해 있는 탈북자들의 존재일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통치영역 밖에 놓여 있는 북한체제에 대한 도전세력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 총선에서 태구민(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가 지역구 의원으로 그리고 백악관에 초대되었던 지성호 북한 인권활동가가 비례대표 의원으로 각각 당선 되어 국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의 국회진출은 북한주민들에게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이며, 특히 북한의 체제결속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더불어 탈북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유튜브 방송의 증가와 이들의 왕성한 활동도 북한에게는 체제위협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북으로서는 두 국회 당선자의 대북파급력을 차단하고 탈북 유튜버들의 활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비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김정은의 신변이상설이 제기되자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선 측은 탈북자 유튜버들이며 태구민과 지성호 두 당선자는 김의 건강상태와 후계구도 문제에 확신에 찬 자기주장을 거침없이 피력해 왔다. 그 결과, 김정은의 깜짝 등장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기세가 꺾인 측은 두 당선자와 탈북자 유튜버들이다. 두 당선자는 결국 자신들의 발언에 대해 공개 사과하였으며 앞으로 국회활동에 있어서도 일부 제약(정보위 배치배제 등)을 받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의도한 목표의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체제결속 문제와 관련 김정은의 또 하나 관심사는 제2인자의 출현을 경계하는 일일 것이다. 북한과 같은 1인 독재체재 하에서는 제2인자 또는 권력실세는 용납되지 않는다. 비록 권력의 제2인자적 위치에 있는 자라도 세간에 권력실세로 회자되기를 기피한다. 왜냐하면 북한 공안당국의 주 감시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잘못 처신하는 경우 숙청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번 김정은의 신변이상설을 기화로 누가 유력한 권력승계자가 될 것인지 많은 추측이 나돌았고 김의 여동생인 김여정보다는 최룡해와 김평일이 유력한 인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이 세계 유수의 언론들에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본인들에게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 미리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고 본다. 앞으로 두 사람 공히 공안당국의 철저한 감시 속에 살아가야 할 것으로 보이며 지금보다 더 근신, 자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예견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에서는 소위 북한식 언론 길들이기 수법이 구사된 것으로 감지된다. 이는 북한에 적대적인 언론에 대해 이들의 신뢰성을 떨어뜨림으로써 공신력에 타격을 입히는 수법이다. 이런 수법은 과거 김일성의 잠행 시에도 구사된 수법이었다. 북한은 그동안 서방언론들의 대북관계 보도에 강한 불만을 표출해 왔으며 북한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악의적이고 선동적인 보도라고 비난해 왔다. 그러나 이들을 응징할 이렇다 할 수단과 방법이 없었으나 모처럼 응징과 보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CNN을 비롯한 세계유수의 언론들이 북한의 카운터펀치를 맞고 신뢰성이 추락되면서 공신력에 금이 가게 된 것이다. 향후 서방언론들은 대북관계 보도에 보다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북한이 노린 또 하나의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북한이 애당초부터 김정은의 신변이상설을 기획하여 이런 일들을 도모하였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신변이상설이 급속히 확산되고 이에 관한 추측과 풍문이 무성해지자 나름대로의 의도와 목표를 갖고 상황을 적절히 주도해 온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김정은이 대내외적으로 더 큰 어려움에 처할 때 그가 또 어떤 카드를 꺼내들고 나올지 불안스럽다. 더욱이 북한군 정찰총국장의 교체는 대남공작 역량강화와 관련이 깊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의를 요한다. 향후 북한의 각종대남 공세와 공작이 보다 더 정교 해질 것임에 비추어 주도면밀한 대비책을 마련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칼럼은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강근택 대사(ktkangmofa@daum.net)는 남북회담 대표, 주우크라이나 대사, 국방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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