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제언]독일 통일 30주년이 한반도에 주는 의미
[외교 제언]독일 통일 30주년이 한반도에 주는 의미
  • 손선홍 전 총영사
  • 승인 2020.05.2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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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홍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4‧15 총선으로 인해 잠시 벗어나 있던 북한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위중한 상태라는 보도 때문이다. 지난 4월 20일 데일리NK가 “김정은이 심혈관 수술을 받았다”라고 보도한데 이어 21일에는 CNN이 “미 정보당국이 김정은이 위중한 상태라는 첩보를 모니터하고 있다”고 했다. 이 보도는 5월 1일 김정은이 순천 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나타나면서 오보로 드러났다. 분단 상태에 있는 우리는 김정은의 건강상태와 관계없이 항상 북한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또한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도 하면서 통일 준비도 꾸준히 해야 한다.

올해는 독일 통일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분단 시 독일인들이 가까운 장래에 이루기 어려울 것으로 여겼던 통일이다.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재임 1974〜1982)조차도 통일을 어렵게 보았다. 그는 “언젠가는 독일인들이 한 지붕아래에 모이는 통일의 날이 올 것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내 생애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 독일인들은 왜 가까운 장래에 통일을 이루기 어렵다고 보았을까?

첫째, 소련이 가장 중요한 위성국으로 생각했던 동독이 떨어져 나가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통일에 필요했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전승 4개 국의 승인내지 동의를 받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독은 주변국을 자극할 수 있는 ‘통일’이라는 용어 사용도 최대한 자제했다. ‘통일정책’이나 ‘대동독정책’ 대신에 ‘독일정책(die Deutschlandpolitik)’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통일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독일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준비가 부족했지만 동독과 합의를 이끌어냈고, 전승 4개 국의 동의를 얻어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이루어냈다. 장벽 붕괴 11개월 만이다.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통일을 이룰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분단 시 독일의 사정은 오늘날 한반도의 상황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통일의 사례는 아직도 분단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주고 있다. 또 우리가 참고할 내용도 많다.

첫째, 독일 통일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의해 이룩한 유일한 평화통일의 사례라는 점이다. 또한 동독 주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 이룩한 통일이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이룬 평화통일은 독일 통일이 한반도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의한 평화통일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의 통일도 북한 주민의 지지를 얻는 통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독일 통일이 주변 강대국들의 강한 반대 등 여러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이룬 통일이라는 점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독일이 통일을 추진하자 통일의 열쇠를 쥐고 있던 소련은 물론이고 영국과 프랑스가 강하게 반대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유럽에 두 개의 독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며 통일에 반대했다.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독일이 유럽의 강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통일된 거대(巨大) 독일이 유럽의 안정을 해칠 것”이라며 반대했다. 특히 대처의 반대가 심했다. 3개 국의 반대로 자칫 통일이 무산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통일을 지지했다. 부시는 대처에게 독일 통일을 지지하도록 설득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부시의 지지에 힘입어 헬무트 콜 총리와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의 외교력으로 통일을 할 수 있었다. 흔히들 소련이 약화되어 통일이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콜과 겐셔의 전방위적인 외교가 없었더라면 통일은 불가능했다.

셋째, 독일 통일의 사례는 한반도 통일에 중요한 참고가 된다는 점이다. 한반도 통일의 발단은 독일 통일의 발단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독일 통일 과정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은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그대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즉, 수십만 동독 주민의 서독 이주, 주변국의 지지를 얻기 위한 통일외교 활동, 동・서독 화폐 통합, 통일비용 조달, 소련 점령기간 중 몰수되었던 동독 내 토지의 소유권 처리 문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 주둔 문제, 동독 주민들의 심리적 갈등 문제 등이다.

독일 통일이후 지난 30년 동안 이루어진 통합과정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다만 동・서독 주민들 간의 심리적인 갈등 문제가 아직 남아있다. 전후 45년 동안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았던 결과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독일 통일의 사례와 교훈에 관해 연구를 많이 했다. 정부와 관련 기관들이 현장 답사도 많이 했다. 연구와 답사를 많이 했으나 정작 통일 준비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냉철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독일 통일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동・서독 주민들 간의 상호방문 등 인도적인 교류가 토대가 되었다. 또한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로 통일이 가능했던 점을 참고하여 외교력을 강화하고, 남북 화폐통합 문제와 남북 주민들 간에 겪게 될 심리적인 갈등 문제도 대비해야 한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잘된 점은 본받고, 잘못된 점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우리 실정에 맞게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의 통일 여건은 호의적이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중국과 북한 간의 유대관계가 강하며,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전략적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다고 여겼던 통일을 이룬 독일의 사례에서 우리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남・북한 교류 중에 가장 시급하고 기본적인 교류는 이산가족상봉 등 인도적인 교류이다. 인도적인 분야의 교류가 끊이지 않고 꾸준히 이루어져야 다른 분야에서의 교류도 지속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가 업무 전반에 걸쳐 통일 준비를 꾸준히 해야 한다. 통일의 기회가 왔는데도 준비가 부족했고, 역량이 부족하여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해당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손선홍 총영사는 주독일대사관 공사와 주함부르크 총영사를 지낸 후 국립외교원 명예교수와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 특임교수를 역임했다. 『독일 통일 한국 통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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