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9 ] 문학속의 와인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9 ] 문학속의 와인
  •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1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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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나 시인 등 문인들 중에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떠오르는 중국의 이태백과 우리나라의 수주 변영로 시인도 대표적인 주당이다. 이태백은 술 한 말을 마시고 시 100편을 지었다고 했다. 변영로 시인은 아예 술을 마신 40년간의 이야기를 ‘명정 40년’ 이란 책으로 엮었다. 여기서 명정(酩酊)이란 술이 취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월탄 박종화의 아들이 빙허 현진건의 딸과 결혼해 서로 사돈 관계이기도 한 박종화와 현진건은 술로도 유명하다. 필자는 청년시절 한 때 문학 동인활동을 한 적이 있다. 어느 해 여름 설악산 백담사에서 열렸던 시문학 캠프에 참가했는데 마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들이 함께 한 술자리에 필자도 끼게 되었다. 이른 저녁 사찰 별채의 뜰에서 시작한 막걸리 술자리는 자정이 넘어도 끝나지 않았고 말로 준비한 술이 떨어졌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가장 어렸던 필자와 함께 그 당시 어느 대학의 대학원 국문학과에 재학중이던 여학생 한 명이 술 심부름꾼으로 지명되었다. 둘이 칠흑 같은 캄캄한 산길을 걸어서 절 한참 위에 있던 산장에서 술을 사왔던 이색적인 경험이 있다. 필자도 그 때 술을 꽤 많이 마셨는데도 분위기에는 취했지만 술은 전혀 취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문인들이 모인 자리는 항상 술과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다. 우리 나라 문학의 이면사에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있다.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경영했던 명동에 있던 ‘은성’이라는 막걸리 집이다. 우리나라 근대 문학에 있어 내노라는 문인들의 여러 이야기가 얽혀 있는 곳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되는 “세월이 가면"이란 시를 지은 박인환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인 미국의 스콧 피처제랄드처럼 패션감각이 뛰어난 멋쟁이로서 ‘명동백작’으로 불렸다. 두 사람 다 술을 좋아한 공통점도 있다.   “세월이 가면”이란 시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던 그가 은성에서 마신 술 외상값 대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성은 김수영, 전혜린, 오상순, 변영로, 천상병, 이봉구, 박봉우 등의 문인들뿐만 아니라 김환기 같은 화가들의 아지트 이기도 했다. 전혜린이 자살하기 전날 저녁 생의 마지막날을 보냈던 곳도 은성이었다.

그 당시 문인들에게 있어 만년필과 종이와 술은 글을 쓰는데 있어 소품과도 같았다. 간혹 서양식 Bar에서 위스키나 진 등을 마시기도 하였으나 문인들이 주로 마신 술의 종류는 대개 대폿집이라는 곳에서 마셨던 막걸리와 소주였다. 대포는 커다란 표주박이라는 뜻의 ‘대포(大匏)’에서 유래한 말로 주로 막걸리 잔으로 쓰인 큰 술잔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 근대 문학사에서는 작가 주변이나 작품속에서 와인과 관련된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 와인이 처음 들어온 때가 고종 때로 알려져 있지만 와인이 그 당시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흔히 접할 수 있는 술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근래 들어서는 젊은 문인들 사이에서 와인을 매개로 한 문학행사들이 있을 정도로 와인을 좋아하는 작가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 박완서 작가나 서영은 작가가 와인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필자가 과문해서 그런지 한국 문학속에 와인이야기가 등장하는 작품이나 와인에 관련된 작가들의 흥미 있는 주변 이야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근대문학에서 드물게도 1922년 백조에 발표된 현진건의 작품 ’유린’에서 여자 주인공이 레드 와인을 마시고 취하는 장면이 중요한 모티브로 나오는데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식민지 시대인 1920년대 일부 신문에 일본 회사의 포트 와인 광고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 당시로는 아직 전혀 대중적이지는 않을 때라 소설에서 와인이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 것이 흥미롭다. 이러한 묘사로 보아 흔치 않게 작가 현진건은 가끔씩 와인도 마셨던 것 같다.

만해 한용운
출처 : 성북구립도서관 블로그  ⓒ 데일리경제

그런데 이 소설이 발표된 후 4년이 지난 1926년 뜬금없게도 한학을 공부하고 27세에 출가하여 서양문화와는 전혀 접점이 없었던 스님 신분의 만해 한용운이 펴낸 그 유명한 시집 “님의 침묵”에 “포도주”라는 시가 들어있다. “향기로운 포도를 따서 술을 지었습니다…. 아아 한밤을 지나면 포도주가 눈물이 되지만은 또 한밤을 지나면 나의 눈물이 다른 포도주가 됩니다.” 만해 한용운이 술을 마시지 않는 스님 신분이고 또 와인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그 시대를 생각하면 이는 다소 놀랍다. 그러나 님이 생명적 근원 혹은 빼앗긴 나라를 상징하고 또 서양문화에서 제사 때나 제단에 생명의 또 다른 상징인 붉은 피를 뜻하는 포도주를 바치는 것이 알려져 있었던 만큼 만해는 포도주를 님에게 바치는 신성한 상징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현대에 들어서는 작품속에서 간혹 등장인물이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상대적으로 좀 더 자주 등장한다. 한국문학전집을 보면, “백년여관”(임철우, 2004 문학동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2006 문이당),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2007 문학동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배수아, 2017년 문학동네) 등의 작품에서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이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점은 언급한 작품에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의 묘사가 매우 단순하고 피상적이다. 줄거리 전개상 필요해서 생략한 것이 아니라면 작가 자신이 와인을 크게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통상적으로 작가는 묘사하는 작품속의 대상에 대해 좋아하거나 정통한 경우 보다 자세히 기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로 보아 아직까지 우리나라 문학속에서는 와인이 그렇게 친숙해 보이지는 않는다.

반면에 문화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와인이 익숙한 서양쪽에서는 꽤 유명한 작가들이나 작품에서 와인과 관련된 상당히 세세한 이야기가 많이 발견된다. 여기서는 유명한 작품 몇 편과 잘 알려진 작가들의 와인과 얽힌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한다.

William Shakespeare, 1564년 4월 26일~1616년 4월 23일출처 : 위키백과
William Shakespeare, 1564년 4월 26일~1616년 4월 23일
출처 : 위키백과   ⓒ 데일리경제

헨리 4세- 윌리엄 세익스피어, 1600
스페인의 주정 강화 화이트와인을 세리 와인이라고 하는데, 16세기에는 스페인의 제레즈로부터 영국으로 수입된 세리 와인을 ‘sack’ 이라 불렀다. 윌리암 세익스피어의 희곡인 이 작품에서는 등장인물인 Falstaff이 세리 와인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온갖 바보스러운 생각이 날아간다면서 세리와인을 찬양하는 대사가 나온다. 세익스피어는 “좋은 와인과 좋은 친구, 그리고 환대는 좋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도 했다. Falstaff은 뚱보기사란 뜻의 “Plump Jack”이라고도 불렸는데 여기서 유래된 동명의 캘리포니아 와이너리와 Falstaff이란 와인 브랜드도 있다.


안나 카레니나- 레오 톨스토이, 1875
주인공 안나가 와인에 취해 경험하는 행복감과 황홀한 감정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Ernest Miller Hemingway, 1899년 7월 21일 ~ 1961년 7월 2일
출처 : 위키백과  ⓒ 데일리경제

Movebale Feast- 어네스트 헤밍웨이  1964
우리나라에서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헤밍웨이의 회고록이다. 술을 좋아한 헤밍웨이는 스콧 피처제랄드, 거트루드 스테인 등과 자주 술자리에서 어울렸다. 그리고 파리에서도 오래 생활하면서 살롱이나 카페 등에서 많은 문인들 과도 교유하였다. 지금도 헤밍웨이가 자주 갔던 파리의 리츠 칼튼 호텔에는 헤밍웨이의 사진이 걸려있는 “헤밍웨이 바”가 유명하다. 파리에서 와인을 자주 마신 헤밍웨이는 이 회고록에서 와인이 행복과 기쁨을 주는 일상적인 음식이라 생각하는 유럽사람들의 인식을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스위트한 와인이나 너무 헤비한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와인 취향도 밝히고 있다. 그는 죽기전에 “인생에 있어 나의 유일한 후회는 와인을 좀더 많이 마시지 못한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술이 세어 럼과 같은 독주도 사랑했던 그는 작품을 쓸 때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말년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율리시즈- 제임스 조이스, 1922
이 소설에서 작가는 와인에 대해 “Yes” 라고 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Yes”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에서는 브로고뉴 와인을 지칭하는 영어표현인 Burdundy 와인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점이 눈에 뛴다.

F. 스콧 피츠제럴드 (1896~1940)
출처: 위키피디아 ⓒ 데일리경제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처제럴드, 1925
위대한 개츠비에는 “뭐든 너무 지나친 것은 나쁘지만 너무 많은 샴페인은 괜찮다.” 라는 표현이 나온다. 피처제랄드는 술을 좋아했지만 술이 세지는 않고 주사가 심했는데 식당 테이블위에서 옷을 벗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는 술로 치지 않아 알코올 중독으로 금주하는 금주 기간 동안 매일 20병씩 맥주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작품에는 금주법 시대의 화려한 음주문화가 잘 묘사되어 있다. 동명의 영화에서도 와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주가- W.B. 예이츠, 1916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인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상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는데 역시 와인 애호가였다. “음주가(A Drinking Song)” 라는 시에서 “와인은 입으로 오고 사랑은 눈으로 온다”는 와인에 관한 유명한구절을 남겼다.
 
그 외 칠레의 대표적인 노벨상 문학상 수상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는 “와인에 바치는 송시(Ode to wine)”를 지었고, 와인을 여자의 몸에 비유하여 관능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독일계 스위스 시인인 헤르만 헤세는 “술잔속의 나비”라는 시에서 와인을 노래하였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를 지내기도 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와인은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하길 원한다는 변치 않는 증거이다” 라는 말을 했다. 그는 무통 로칠드를 좋아했다. 모든 종류의 와인을 사랑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도 샴페인을 주문한 것으로 유명하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독일어: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 1832년 3월 22일)
출처 : 위키백과  ⓒ 데일리경제

독일의 시인 볼프강 괴테는 무인도로 떠나긴 전 가져가야 할 3가지로 시, 아름다운 여인, 와인을 꼽았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를 포기한다면 시를 포기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와인 중에서는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빈티지에 달렸지”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괴테는 “나쁜 와인을 마시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짧다”라는 말도 남겼다.

와인애호가들이 건배사로 자주 사용하는 “와인속에 진실이(in vino veritas)”라는 시 구절은 기원전 6세기 경의 그리스 서정시인인 알카이우스가 한 말이다. 프랑스 시인 피에르 보들레르는 “포도주의 혼”이란 시에서 “진홍의 밀랍속에 갇혀서…내 그대 가슴속에 떨어져… 한송이 귀한 꽃처럼…” 이라고 와인을 찬미했다. “슬픔이여 안녕” 이란 뜻을 지닌 샤스 스플린은 보들레르가 좋아했던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시인 바이런도 좋아했던 이 와인은 일본의 와인 만화인 신의 물방울에도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시기 좋은 와인으로 나온다. 샤스 스플린은 2000년부터 매년 보들레르를 기념하여 와인 라벨에 프랑스 명시 한 구절을 넣고 있다.

보물섬을 지은 로버트 스티븐슨은 “와인은 병에 담긴 시”라고 하였다. Bar를 경영한 경험도 있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와인을 좋아하는데 그의 소설에는 와인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출처 : danbis   ⓒ 데일리경제

“렉싱톤의 유령”이나 “여자 없는 남자들”, “1Q84” 등에는 몬테풀치아노나 키안티 와인, 샤르도네 와인 등 와인에 대한 다소 구체적인 정보가 나온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11분”에는 여자 주인공이 남자와 와인을 나누어 마시는 장면이 세밀히 묘사되어 있다.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는 “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 라는 다소 도발적인 어록을 남겼다.

미국의 저명작가의 삼분의 일과 유진 오닐, 헤밍웨이, 윌리암 포크너, 싱클레어 루이스 등 미국 출신 노벨상 수상 작가 6명 중 4명이 알코올 중독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은 사회성과 창의성, 환상을 고양시켜 창작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고통과 억압을 줄이는 역할도 하지만 과하면 자기 파괴적이고 거꾸로 자기 자신 속의 귀중한 어떤 것을 죽이기도 한다.

다행이 와인을 마시는 것 만으로 알코올 중독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가장 좋은 와인은 비싼 와인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마시는 와인이다”- 작자 미상. 끝. 

 


[목요기획]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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