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디지털 가상 공간으로 확장해 나가는 연결 사회
[금요칼럼] 디지털 가상 공간으로 확장해 나가는 연결 사회
  • 임병권 경영학교수
  • 승인 2020.05.0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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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화상회의 툴을 이용한 세미나에 참여했다. 20명 정도가 참가했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접속하는 화상회의는 나도 낯설었지만 다른 참여자들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음소거를 하지 않아 주변의 잡음이 들리는 경우도 있었고, 얼굴을 화면에 잘 위치시키지 못하거나 실수로 영상을 꺼 놓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참여자들은 금방 익숙해졌다. 대화는 자연스러워졌고 질의 응답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오히려 서로의 얼굴을 모두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딴 짓’을 할 수가 없었고 모두가 주제에 집중했다.


내가 글로벌 기업에 근무할 때도 여러 차례 화상회의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해외의 담당자들 또는 국내의 원거리 근무자들과 회의를 할 때는 대부분 전화회의 (teleconference) 시스템을 이용했다. 그런데, 이제는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이 아니더라도 일반 생활에서도 화상회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일들이지만, 예상 밖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경험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연결의 힘이다.


코로나 이전의 사회는 ‘밀집사회’였다. 코로나 사태는 밀집사회를 연결사회로 이동시키고 있다. 밀집은 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현상이다. 밀집사회에서의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을 말한다. 기업이 발전하고 사회가 진보할수록 물리적인 밀집도는 점점 더 올라갔다. 물리적인 밀집이 더 효율적이고 더 생산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 있어야 커뮤니케이션이 더 원활하다고 믿었다. 팀워크를 다지고 협업을 하기 위해서는 대면 접촉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업들은 앞다투어 높은 건물을 짓고 직원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모퉁이 사무실 정신상태(corner office mentality)’라는 말이 있다. 기업의 사무실 배치를 보면 누구나 인정하는 현상이다. 기업의 대표이사 자리는 항상 건물의 가장 좋은 위치에 배치된다. 임원들 자리도 마찬가지다. 건물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건물의 양면이 맞닿은 창문이 나 있는 코너이다. 물리적 밀집이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물리적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로 다툰다. 일반 직원도 마찬가지다. 내 책상과 내 의자의 위치는 항상 고정이어야 하고 남보다 전망이 좋아야 한다. 사실 일의 효율과는 상관없는 현상들이다.


코로나 사태는 밀집 사회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리적 밀집이 가져가주는 효율성과 생산성의 한계를 여실히 절감하고 있다. 적은 공간을 두고 서로 자리 다툼하는 ‘모퉁이 사무실 정신상태’가 얼마나 부질없고 비효율적인 관행인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내가 참여한 화상회의 세미나에서 몇몇 참여자는 부산, 포항, 제주에서 접속했다. 어떤 이는 차량 뒷자리에 앉아서 토론에 참여했다. 세미나 두 시간 동안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중도에 회의에서 빠져나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서울에 있는 회의실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 좋은 공간을 차지 하려고 자리 다툼도 하지 않았다. 디지털로 연결된 공간에서 불필요한 감정의 개입이나 비언어적인 행태에 서로 신경 쓰는 일도 없었다. 오로지 주제에만 집중했다.


일본이 재택근무가 안되는 이유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도장문화’ 때문이다. 직장인들이 서류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 회사에 출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코로나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재택근무 비율이 5.6%에 그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일본 후생성 4월 1일자 자료). 물리적 도구에 의존하면 물리적 공간을 더 중시하게 되고 디지털 연결은 더 요원 해진다.


공간의 개념을 물리적 공간에서 디지털 가상 공간으로 바꾸어야 한다. 물리적 공간에서 ‘내 자리’ ‘내 공간’을 다투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물리적 공간은 서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변해가야 한다. 대신, 일하는 나의 공간을 디지털 가상 공간으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밀집사회에서 탈출하여 연결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 칼럼니스트

임병권 한국경영자문원 콘텐츠 파트너 

▣ 경력

- 현, 연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전, 힐튼호텔 인사 전무
- 오티스엘리베이터 코리아 인사 상무
- DHL 코리아 인사부장

▣ 저서

- 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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