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8 ] 식물의 생존법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8 ] 식물의 생존법
  •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30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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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  ⓒ 데일리경제

세상이 어수선한 가운데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이 먼저 피는 매화,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 벚꽃 등은 이미 만발하였다가 벌써 화려한 꽃잎이 지고 푸른 잎이 나왔다. 이제는 잎과 함께 꽃이 피는 철죽과 영산홍이 봄이 깊어 감을 알린다. 다른 나무들에 돋아난 새순도 어느새 파랗게 자라 나뭇가지마다 잎사귀가 무성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의 노래 중에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이 란 곡이 있다. “풍문으로 들었다”는 뜻인데,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전봇대 없이 전신줄을 나무에다 어지럽게 걸쳐 놓은 모습이 꼭 와인 덩굴 같아 보인데서 유래한 표현이라고 한다. 원래 일반적인 식물의 덩굴을 vine이라 하지만 그냥 식물 이름 없이 vine이라고만 해도 포도 나무를 뜻한다. Wine의 어원도 이로부터 유래하였는데, vine은 라틴어로 포도나무를 뜻하는 vinum으로부터 나왔다. 그래서 포도밭을 vineyard라고 한다.      

대부분의 와인 산지에서의 포도나무도 이맘 때쯤 덩굴에 새순이 돋고 5월에는 꽃이 핀다. 6월에는 열매가 맺히고 7, 8월 한 여름을 거치면서 포도알이 영글어 9월에는 수확을 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vineyard는 대개 화이트 와인용 포도는 9월 초, 레드 와인용은 9월 말에 수확을 하는데 포도의 개화시기로부터 100일 정도가 되면 수확을 하는 게 보통이다. 아이스 와인용 포도는 당도를 높이기 위해 서리를 맞힌 후에 수확을 한다. 이러한 계절적, 기후적 요인 때문에 포도나무가 제대로 튼실한 열매를 맺으려면 꽃을 피워야 할 시기에 제때 꽃을 피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와인용 포도는 그 해의 날씨에 따라 수확시기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날씨가 더우면 포도가 빨리 익어 수확시기가 앞당겨진다. 이에 따라 와인의 품질도 영향을 받는다. 와인의 생산연도인 빈티지에 따라 품질이 차이가 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 꽃이나 포도나무 등 식물은 매년 똑 같은 시기가 되면 어떻게 이러한 시간을 정확히 알고 꽃을 피울까? 식물도 지능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기억력을 갖고 있을까?

사실 식물은 우리가 잘 모르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생겨난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식물의 공통조상(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은 동물이나 사람과 같다. 생물체는 크게 동물과 식물, 이끼류, 박테리아 등으로 나누어 진다. 지구상의 최초의 생명체는 약 40억년 전쯤 나타났다. 35억년 전에서 25억년 전 사이에는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생물이 출현한다. 그리고 17억년 전에서 10억년 전쯤 에는 세포핵, 세포막, 엽록소 등의 세포 소기관을 갖춘 진핵생물이 등장하여 세포를 자체 복사하고 분화하는 기능을 가지게 된다. 다세포 생물의 등장이다. 드디어 5억년 전에서 4억년 전쯤 에는 지구상에 첫 육상식물과 첫 동물인 절지동물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다. 식물은 출현한 후 처음 수천만 년 동안 줄기만 가지고 광합성을 하였으나 곧 광합성이 보다 효율적인 잎을 가지게 된다. 이어 3억6천만년 전쯤 에는 지금과 같은 나무의 모습을 갖춘 식물이 나타나고 각종 식물이 군집을 이룬 숲이 생겨나 지구 생태계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과일과 같은 속씨식물이 1억3천만년에서 9천만년 사이에 생겨나 동물들과 공생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한참을 지나 약 7백만년 전에야 유인원과 분화되었다. 이러한 배경에 따라 식물과 동물에는 오늘날에도 공통적인 유전자가 발견된다. 바나나와 사람의 유전자가 50~60% (41%라는 주장도 있음-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정도는 서로 같다는 주장도 있다.   

식물이 동물과 가장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동물은 스스로 움직일 수가 있지만(그래서 ‘動’물로 부른다) 식물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자연 생태계 속의 생존에 대한 위협 앞에서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커다란 약점이다. (슈퍼 포식자인 현대의 인간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어차피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생태계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도 문명의 도구로 무장한 현대 인간의 위협을 피해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바이러스 같은 반생명체에는 인간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래서 식물은 생존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진화해 왔다.

식물은 어떤 점에서는 동물보다도 훨씬 더 생존에 유리한 현대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우선 식물은 물과 태양빛만 있으면 광합성 작용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탄수화물로 바꾸고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산소를 배출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광합성 과정이 양자역학적 과정임이 밝혀 지기도 했다. 반면에 동물은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자체적인 수단이 없다.

극히 예외적으로 바다 민달팽이가 해조류의 원료를 빨아들여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여 태양전지판과 같이 햇빛으로부터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는 사례가 아주 최근에 발견되었지만 이 마저도 식물인 해조류를 이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동물은 외부로부터 어떤 방법으로든 대사를 위한 먹이를 공급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 동물에게는 이러한 근원적인 먹이가 식물이다. 육식동물은 동물을 먹이로 하지만 잡아 먹히는 동물도 결국 식물로부터 먹이를 얻는다. 그리고 식물은 동물의 에너지 대사에 필요한 산소도 공급한다. 한마디로 식물없이 동물은 생존할 수 없다. 

그리고 동물이 뇌라는 중앙통제센터를 통해 신체를 작동하는데 비해 식물은 뿌리나 가지, 잎의 네트워크를 통한 분산적 협력구조를 통하여 기능을 발휘한다. 이는 현대적인 데이터 처리방식이나 수평적이고 분권적인 조직의 구조 와도 흡사하다. 그리고 식물의 구조는 유사한 구조가 반복되는 프랙탈 구조를 이루어 몸체의 공간적, 조직적 구성을 최대한 효율화 한다.    

식물은 아직도 미지의 부분이 많지만 동물이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한 여러 기능을 실제로 가지고 있다. 식물이 제때에 정확히 꽃을 피우는 것은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물에서 반사되는 빛을 눈의 망막에 있는 광수용체가 감지한 후 뇌로 전달하면 뇌가 이 정보를 처리하여 이미지로 인식한다. 이러한 과정을 우리는 본다고 표현한다. 식물도 빛을 감지하는 포토트로핀이나 피토크롬과 같은 광수용체를 가지고 있다. 이 중에서 피토크롬은 주로 빨간빛과 근적외선을 감지하는데, 식물은 이 피토크롬을 통해서 빨간빛을 마지막으로 본 시간을 계산하여 생장이나 개화시기를 결정한다. 식물에는 싹을 틔울 시기, 빛의 강약, 개화시기, 시간이 몇 시인지를 알려주는 등 기능에 따라 10가지가 넘는 광수용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식물도 보는 것이다. 오히려 식물은 인간이 보지 못하는 전자기파도 감지하는 등 더 넓은 영역을 본다. 단지, 인간처럼 그림으로 인식하여 보지 못할 뿐이다. 특히 크립토크롬이라 불리는 광수용체는 파란빛을 감지해 밤낮이 바뀌거나 시차가 생기는 상황에 따라 생체시계를 조절하는데 사람을 비롯한 동물이 생체시계를 조절하는 것과 메커니즘이 같다. 이는 근본적으로 식물이나 동물이 같은 조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빛을 보는 같은 유전자로 시작하였으나 진화과정에서 보는 시각체계가 서로 달라졌을 뿐이다.

또 식물은 냄새도 맡는다. 식물은 옆에 있는 다른 식물이 곤충에게 뜯어 먹히는 등 공격을 당하거나 잎이 절단되면 이에 대한 냄새를 맡고 방어태세를 취한다. 심지어 밀냄새와 토마토 냄새를 구분하기도 한다. 사람은 공기중에 떠있는 기체상태의 각종 분자가 코에 있는 각각의 특성에 맞는 수백가지의 후각세포와 결합하여 뇌를 통해 이를 특정한 냄새로 인식한다.

대신에 식물은 신경계가 없기 때문에 사람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공기중에 퍼진 화학물질의 분자를 세포가 감지하여 냄새를 맡는다. 냄새를 맡은 식물은 다른 줄기나 가지에 신호를 보내 추가적인 외부의 공격에 대비하게 한다. 냄새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최근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식물이 위험에 빠졌을 때 의사소통을 하는 신호는 냄새 말고도 동물과 동물 간의 신호 전달에도 동일하게 사용되는 칼슘이온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칼슘이온이 위협을 느낀 식물의 세포내에서 생성되어 칼슘파동이 생기고 이 파동이 다른 식물의 세포내 이온채널로 전달되어 위험을 경고를 한다는 것이다.

신호는 이웃에 있는 다른 개체에게도 전달된다. 현재 까지의 연구로는 공격당한 식물이 의도적으로 신호를 보낸다기 보다는 와이파이 신호처럼 단지 자기 개체의 다른 줄기나 잎에 보내는 신호를 이웃식물이 같이 인지하고 방어태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식물은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동물의 공격을 물리치거나 자신의 몸에 방어벽을 만든다. 일례로 버드나무에 있는 살리실산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공격했을 때 다른 가지에게 감염에 대한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감염부위에 작용하여 세균을 죽인다. 그리고는 죽은 세포로 장벽을 세워 세균이 다른 부위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다. 살리신산은 인간이 해열진통제로 쓰고 있는 아스피린의 원료이기도 하다. 식물은 때때로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동물의 행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절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일부 식충식물은 거꾸로 곤충같은 동물을 잡아먹기도 한다. 식물은 위험에 대해 학습을 하고 또 이렇게 학습된 내용을 일정기간 기억한다. 외부 접촉에 따라 잎을 오므리는 미모사는 실제로 겪은 위험상황에 대한 정보를 40일간이나 기억한다. 이 정도면 웬만한 사람보다도 낫다.

식물이 고통을 느끼는지 혹은 식물에도 정신세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한 때 성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식물에게 정신세계가 존재하거나 의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식물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식물의 상처가 난 부위에 아스피린을 투여했을 때 방어기전이 누그러진다는 연구도 있지만 이를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움직일 수도 없고 손발도 없는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도 든다.

봄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꽃이 피기 때문 만은 아니다. 봄은 우리를 생존케 하는 식물이 생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식물은 나름대로 잘 살아가지만 식물에 의지해 살아가는 동물의 한 종인 인간들은 꽃과 나무와 숲과 모든 식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번 재택근무기간 동안에는 추운 겨울을 지내고 활짝 핀 홍매화를 아이패드로 그려 보았다. 여러가지로 봄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끝.  

 


[목요기획]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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