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외교광장]미 항공모함 루즈벨트호 함장 해직 드라마의 교훈
[Special-외교광장]미 항공모함 루즈벨트호 함장 해직 드라마의 교훈
  • 정병국 전 주에티오피아 대사
  • 승인 2020.04.2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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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에 정박한 미국 항공모함 루즈벨트호의 브레트 크로지어 함장(Captain Brett Crozier)은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함상에서 급속히 확산할 것을 우려하여 승조원 4,865명 중 대부분(약 90%)을 긴급 하선토록 해달라는 4쪽 이메일을 2020년 3월 30일 본국 해군 상관 및 동료 20여 명에게 보내었다.

그는 최근 베트남 다낭 정박 후 3월 24일 수병 3명이 처음으로 COVID-19에 감염된 후 급속한 확산세를 보였지만, 본부로부터 별다른 조치가 없자 긴급 SOS 메모(서한)를 보내었는데, 그 내용이 San Francisco Chronicle 지를 통하여 외부로 유출되었다.

이에 토마스 모들리(Thomas Modly) 해군장관 서리는 마이크 길데이 제독(Adm. Mike Gilday)의 만류에도 4월 2일 크로지어를 전격 직위해제했다. 작전 관련 내용을 비밀 분류도 하지 않은 채 확산시켜 지휘계통을 무시하였고, 이로써 승조원 및 그 가족들과 괌 주민들을 동요토록 하는 등 ‘판단미숙’을 범하였다는 것이 해직 이유였다.

크로지어 함장은 문제의 서한에서 일본 정부가 최근 크루즈 다이어몬드 프린세스호의 승객들을 요코하마에 정박한 지 무려 28일 만에야 늑장 하선시킴으로써 2주 안에 승객과 승무원 619명을 COVID-19 집단감염(최종적으로 712명 감염)시킨 악몽을 연상하며, 항공모함은 일인당 선내 공간이 크루즈에 비해 월등히 더 좁은 등 생활환경이 크게 열악하므로 감염 확산 피해가 엄청나게 빠르고 광범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가 전쟁 중이 아닌데, 수병들을 죽게 내버려두어는 안 된다. 우리가 지금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우리의 가장 믿음직한 자산인 수병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해직된 크로지어 함장이 귀국하기 위해 4월 2일 하선하자 부하장병들이 모여 “캡틴, 크로지어, 캡틴, 크로지어!”라고 환호하면서 우레와 같은 격려의 갈채를 보내며 영웅과의 작별을 고했다.

동영상으로 이를 본 모들리는 분노에 못이겨 군 전용기로 괌으로 날아가 4월 6일 항공모함 방송망을 통해 승조원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해고하였으며 하선 직후 COVID-19 양성 판정을 받아 귀국도 못한 채 괌에서 격리된 크로지어를 원색적으로 욕하는 열변을 토해, 잔인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범했다는 논란을 불어 일으켰다.

연설에서 모들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오늘날 정보시대에 그 정보가 대중들에게 알려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함정을 지휘하기에는 너무 순진하거나 멍청하였습니다. 아니면 그가 일부러 그런 것이지요. 그는 지휘계통을 어겨 편지를 뿌림으로써 나와의 신의, 지휘계통과의 신의, 여러분과의 신의를 배신하였습니다(어떤 수병이 ‘what the fuck! 집어쳐!’라고 야유). 그는 그것을 공공포럼으로 가져가 전국에 걸쳐 큰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뒤에서 ‘그는 우리를 도우려했을 뿐이야!’라고 야유).

괌 주민들은 COVID-19 감염자가 포함된 승조원 5천 명을 의료시설도 갖추지 않은 섬(city)에 수용하는 것을 걱정한다는데, 그 상황을 초래한 그자(the guy)가 하선할 때 여러분이 그를 격려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로 사랑 받겠다고 신경 쓰지 말고, 여러분이 방위해야 하는 나라를 사랑하고, 여러분이 목숨 바쳐 수호하기로 맹세한 헌법을 사랑하라고 충고하는 바입니다. 전 부통령(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Joe Biden)은 바로 어제 나의 (크로지어 해고) 결정은 범죄였다는 식으로 말하였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고 확언합니다(뒤에서 그럼 ‘당신은 뭐야’라고 야유).”

크로지어 함장 전격 해고, 그를 영웅시한 장병들에게 군기를 잡겠다고 약 24만 3천 달러의 엄청난 출장비를 낭비하며 경솔하게 괌에 출장한 사실, 그리고 함상에서 크로지어와 그를 격려한 승조원들을 동시에 인신공격한 점 등 모들리가 취한 일련의 과잉 행동들에 대하여, 하원의장을 포함한 미국 상하원 의원들, 퇴역 장성들과 언론들이 부하를 위험한 전염병으로부터 구출하려는 크로지어 함장을 두둔하고, 모들리를 즉각 파면 또는 면직시키라고 요구하였다.

이런 압력에 못 이겨 모들리는 마크 에스퍼(Mark Esper) 국방장관의 요청에 따라 4월 7일 자신의 괌 발언에 사과하고 사직하였다. 그의 사임 후에도 이들은 그러한 인물을 해군장관 서리로 임명하고, 그의 자의적 함장 해고와 뒤이은 괌 출장을 허가한 트럼프 대통령까지 비판하였다. 레이몬드 매이버스(Raymond Mabus) 전 해군장관은 트럼프가 자신에게 알랑거리는 사람만 등용하고, 군을 정치화하여 군의 정규 사법체계에 간섭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아직 끝나지 않은 루즈벨트 함의 COVID-19를 둘러싼 드라마로부터 우리는 역사적 사례에 비추어 몇 가지의 정치적・군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외교, 경제, 방역 등 비군사 분야들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고금을 통하여 명 지휘관들은 성급한 승리보다 부하들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 한다. 장수란 “시체를 수레에 싣고 오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루즈벨트(Thodore Roosevelt) 대통령의 증손자 트위드(Tweed Roosevelt)는 4월 3일 뉴욕 타임즈 기고문에서 1898년 미・스페인 전쟁 말기 자신의 증조부가 휘하 의용기병연대 장병들이 쿠바에서 풍토병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취한 비상조치를 거론하였다. 그는 자기 증조부라도 COVID-19 위험에 직면한 루즈벨트호 승조원 편을 들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크로지어를 영웅이라고 옹호하였다. 전쟁이 사실상 끝났으나 미국 병력은 여전히 쿠바에 머물면서, 적보다 훨씬 더 위험한 황열 및 말라리아와 싸워야 했다. 병력의 희생을 막기 위해 야전 사령관들은 그들을 귀국시키려 하였으나, 앨저(Russel Alger) 전쟁장관을 비롯한 워싱턴 지도자들은 정치적 반발을 우려하여 철수를 지체하고 있었다. 단기 자원자로서 군 경력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던 루즈벨트가 사령관들을 대표하여 열정적 내용의 공개서한을 써서 언론에 공개하였다. ‘사발통문’식 이 서한으로 전국에 걸쳐 병력을 즉각 귀국시키라는 여론이 들끓자, 앨저도 굴복하여 본국으로 철군하였다. 분노한 앨저는 명예훈장 대상에서 루즈벨트를 배제함으로써 보복하였다.

로마제국을 창건한 전쟁의 천재 카이사르(Caesar)는 장병들을 인간적으로 사랑하며 신뢰하고, 그들은 그를 존경하고 희생을 감수하였다. 이로써 그는 갈리아와 브리타니카를 정복하여 정치적・군사적 승기를 잡았지만, 시종일관 게르마니아(현 독일) 원정은 자제하였다. 그 이유는 삼두정치에서 두 정적과 경쟁하기 위한 군사력 보전에도 있었지만, 부하장병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에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선황의 유지를 간과하며 지정학적 중심지 게르마니아 정복에 집착한 나머지 AD 9년 3만 5천 대군을 라인 강변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궤멸당하고, 게르마니아를 넘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왜군에게 전승을 거두었는데, 장졸들에게 전투 때 죽인 적의 수급을 베는 데 정신을 팔면 스스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자신도 역병에 몹시 고전하면서 그들이 이에 애통하게 희생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승패를 떠나 아군의 피해가 커 보이는 싸움은 벌이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다 고초를 겪고 백의종군을 하였다. 반면, 원균은 늘 적의 수급을 많이 차지하는 데 혈안이었고, 비위에 거슬리는 부하들에게 가혹한 매질과 형벌을 남용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출전을 강요하였기에, 휘하 장졸들은 머지않아 패전하여 자신들도 함께 전사하리라고 예측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격전으로 유명한 독일의 에르빈 롬멜(Erwin Rommel) 원수의 부하들은 그의 휘하에서 싸우면 반드시 목숨을 보전하면서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기에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따랐다.

둘째, 위기 때에는 최대한 신속・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이 긴요하다. 크로지어는 지휘계통을 떠나서 신속한 메일 살포를 통하여 일단 장병들을 하선시키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다. 그나마도 초기 대응이 늦어 4월 19일 현재 무려 672명 COVID-19 양성 판정에, 한 명 사망을 기록하였다. 프랑스 항공모함 샤를 드골호의 경우, 함상 첫 발병 후 불과 2주 만인 4월 19일 현재 승조원 1,760명 중 60%에 이르는 1,046명이 감염된 것에 비하면, 루즈벨트호는 크로지어의 ‘비상조치, 덕분에 급진적 재난은 피했다고 평가된다. 전쟁이나 전투에서도 위급하면 재빨리 후퇴 또는 철수를 감행하여야 병력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윈스턴 처칠이 영・불 병력 약 34만 명을 됭케르크(Dunkirk)로부터 열흘 안에 신속히 구출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의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카이사르, 이순신이나 롬멜도 모두 신속・과감한 작전의 명수들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인도 공격을 신속히 멈추었더라면 로마와 그리스의 위상이 뒤바뀌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COVID-19 방역에 성공한 대만, 싱가포르, 홍콩은 지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국과 불가분의 관계이면서도 우한 발병 즉시 중국 측 눈치를 살피지 않고 신속히 중국으로부터 인원 유입을 차단하였다. 끝내 그렇게 하지 않은 한국과 그보다 더 늦게까지 위험성을 간과한 미국과 유럽이 겪는 대량 감염과 사망 피해는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셋째, 군을 포함한 어떤 분야에서든 정책결정자들이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배제하고 자의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위험이 따른다. 전문가들은 때로는 숲을 못 보는 우를 범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문제 해결의 열쇠를 파악하고 있다. 이번 루즈벨트 함 사건에서 일부 퇴역 군 고위층이 군복 입은 현역이 다루어야 할 일을 민간인 모들리, 국방장관, 대통령 등이 무모하게 간섭하여 일을 크게 그르치고, 결국 미국 해군의 대내외적 신뢰와 서태평양 방위능력에도 문제를 야기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군 수뇌부 대부분을 문관들이 차지함으로써 전략과 전술이 제대로 가동될 수 없었다. 왜란 말기 문민 출신인 도원수 권율조차 충무공에게 조정의 무모한 출전명령에 따르라고 설득하였다.

한국, 미국과 유럽의 다수 COVID-19 대규모 피해국들은 의료전문가들의 조언을 존중하지 않은 대가를 치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정병국 대사는 주에티오피아대사와 강원대학교 사학과 강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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