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코로나19도 못막는다..'불황 없는 성공시대' '영원한 삼성맨' 삼성앤텍 장성원 대표
[인터뷰]코로나19도 못막는다..'불황 없는 성공시대' '영원한 삼성맨' 삼성앤텍 장성원 대표
  • 안기정 기자
  • 승인 2020.04.21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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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흔히 대기업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할만큼 대기업, 특히 삼성 LG SK의 사회전반적인 영향력이 크다. 그러나 통계수치만을 보면 대기업이외의 중견 중소기업의 힘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기준 정부에서 걷어들인 세수는 총 375조 이중 법인세는 70조 9천억원으로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1000여 대기업들이 총 21조3000억원의 법인세를 낸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의 세부담 비중은 전체 법인세의 35%에 달했지만 실효세율은 중견기업보다 낮은 ‘역진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덩치가 큰 기업에 비해 수많은 중소기업은 인건비 상승등 어려운 경영환경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기준년도 법인사업자 폐업자수는 백만개에 이르며 자영업자를 합치면 그수는 상당하다.

특히,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추세.

25년전 창업, 연매출 120억...삼성앤텍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기업 경영환경이 어려운 시기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자영업까지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에서도 30년을 버텨오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기업도 있다.

오늘 만나볼 기업인은 1995년 창업해 연매출 120억을 꾸준히 시현해온 ㈜ 삼성앤텍의 장성원 대표이사다.

장성원 대표를 만나기가 힘들었다. 여러번 인터뷰를 거절한 속내가 궁금했다.

이웃집 친한 형 같은 후덕한 모습을 한 장 대표는 인터뷰를 그동안 고사한 이유에 대해 “저희 회사가 크지는 않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직원들이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것인데 저만 너무 부각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좀 미안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본다.

그는 서울 태생이다 재동초등하교 다니던중 던중 아버님이 강남으로 옮기면서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취직을 하지않고 창업을 했다. 66년 병오년생인 그는 현재  55세 중년 사업가다. 그의 회사와 괘적을 같이 해온 셈이다 . 바쁜 와중에도 뭔가 한계를 느껴 야간대학에도 진학해 명지대학 경영학과정을 이수하고 계속해서 연세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쳤다.

”강남에 살았다면 금수저 아닌가“ 라는 질문에 ”아버님이 현재 강남을지병원 옆자리에서 방앗간을 하셨어요. 정말 성실한 분이셨습니다. 지금생각해도 진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에 대한 진한 고마움이 드러난다.

“아버님이 금전적으로 도움주신 것은 없지만 정말 저를 제일 많이 응원해 주셨어요. 그것이 제겐 큰힘이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수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라고 말하는 그는 현재 관악농협 본점 2층에 삼성디지탈플라자 관악농협점 및 서울대 입구역쪽 동진 빌딩 1,2 층에 삼성디지탈 플라자 서울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직원은 30명에 이른다. 모두 300평이 훌쩍넘는 대형매장이다.

또한 사업의 다각화에 힘써 B2B로 기업에 직접 납품하고 프린터,공기청청기 렌탈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그의 회사 매출은 매년 조금씩 늘었다.

놀라운 것은 전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매출부진을 면하지 못하는 이 시기에도 전년도 동기 대비 매출이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비결은 그의 창업과정을 들어보니 답이 나왔다.

군 제대후 진로 고민..용산전자상가 진출, 삼성전자와 인연 계기 '성장 발판 마련'

공부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그는 대학진학을 못했고 제대후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단다.

” 제대했을 때 제일 고민되었던 것이 뭘먹고 사나였어요 딲히 기술도 없고 달랑 고등학교만 나왔거든요. 그런데 당시 컴퓨터붐이 일었어요. 가전제품마냥 모든 가정에 PC하나쯤은 장만해야하는 그런 분위기가 상당했어요. 저도 컴퓨터를 용산전자 상가 지인 에게서 조립 PC 하나 장만했는데 가만 보니까 조립이 어려워 보이지 않더라구요. 지인에게 술한잔 먹이고 이것저것 물어 봤습니다. 그런데 마진이 상당했어요. 바로 용산전자 상가에 진출했습니다.“

당시 돈좀 버셨어요?

그는 “창업에 나선 이후 많이는 아니고 집사람과 결혼하고 프라이드 하나 장만할 정도는 번 것 같습니다.”고 말한다.

그러던중 그에게 첫 고비가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PC조립업체가 난립을 했고 마진은 점점 줄어가기 시작해 심지어 가게 월세조차 걱정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컴퓨터 주변기기중 프린터 였다. 그리고 PC가 대중화되고 나면 반드시 프린트가 많이 팔릴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당시 국내에는 프린터 제조사가 없었다.

장 대표는 “당시에는 삼보 컴퓨터가 명품 브랜드였어요 조립PC보다 배로 비쌌죠. 덕분에 용산 조립PC가 먹고 살수는 있었지만 그 회사가 역시 저랑 생각이 같았는지 일본에서 엡슨프린터를 독점 수입했죠.”라며 프린터 사업에 뛰어들게 된 사연을 전했다.

그는 이어 “그 프린터 역시 비쌌습니다.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을거예요. 더구나 병행수입도 당시에 불가능했어요 병행 수입업자들이 검찰에 고소되는거예요. 그회사 지금은 이름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 돈 벌어 망한게 이해가 안갑니다. 동시대 대만 아수스 에이스 등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라고 말했다.

그러던차 삼성전자에서 프린터를 만들기 시작한다는 소식가 들려 왔다.

당시 삼성전자와 거래를 하려면 담보금 및 제품구입비가 필요했는데 그에겐 거금이였고 그것은 그의 전부였다.

“거래를 하자니 좀 불안하거예요 삼성이 대기업이긴 하지만 정말 삼성에겐 생소한 분야인 프린터를 잘 해낼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삼성말고도 다른 선택지도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그가 새로 장만한 냉장고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앞문이 고장났단다. 바로 삼성 제품이었다.

“AS접수를 하자마자 새 제품으로 바로 교환해 주는 겁니다.”

이것을 본 그는 주저하지 하지 않고 삼성과 바로 대리점 계약을 했다.

“그 판단은 정말 옳았습니다.” 그가 현재까지 이 사업을 이어오게 된 배경으로 삼성과의 인연을 꼽았다.

“비록 초창기라 제품의 질이 좀 떨어진다해도 이같은 정신이면 극복하고도 남으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삼성과 함께 제2의 도약을 했다.

“저는 항상 삼성의 힘을 믿습니다. ” 고비가 올때마다 삼성이 힘이 되어 주었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삼성에 대한 무한 신뢰가 묻어나있다.

한때 매출이 급상승해서 20년전 국민은행에서 10억의 신용대출을 받은적이 있었다.

그는 그돈으로 강남에 대지 200평 6층짜리 빌딩을 살수 있었으나 까르프(지금홈플러스). 월마트 전국매장에 컴퓨터 및 프린터 판매 전시장을 차리는 것을 선택했다.

부동산 투자 대신 일을 택한 것이다

“그돈 갚는데 15년 걸렸습니다.” 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일화다.

그의 알짜 수익원은 삼성프린터다. 여지껏 프린터를 팔아 성장했고 또 프린터 소모품을 팔아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프린터 렌탈 사업으로 쏠쏠한 수익을 리고 있다..

그의 성공비결(그는 안망한 비결이라했다)은 변화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참 세상이 빨리 변해요 그와 함께 저도 변해야 해요 아니면 문닫아야 하니까요.”

그는 같이한 고객이 큰 자산이라고 꼽는다. 고객DB를 충분히 활용해 쉬지않고 마케팅활동을 해왔다.

그가 고객이란 자산 못지 않게 꼽고 있는 것은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는 직원이다.

“정말 직원은 저에게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 직원들에게 최대한 해줄수 있는 것은 급여수준 보다 중요 한 것이 기업의 영속성이라 생각합니다.”

“기업이 망하면 안됩니다 망하지 않는 기업에서 직원이 일을해야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수 있고 계획도 세울수 있으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 정말 굉장한 첵임감을 느낍니다. ”

안망하는 비결은 변화에 민감하라는 것

장 대표는 “그러기위해 세상과 같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제 부턴가 그는 경력직 직원보다 젊은 신입사원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세상과 같이 변해야 하므로 그에 맞는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장대표는 직원교육에 힘쓴다 그의 일과중 제일큰 부분이다.

“경력직일수로 변화에 둔감합니다 어제의 지식이 오늘에는 쓸모 없어진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의 넓직한 대형매장에는 삼성 최신제품이 가득메우고 있으며 삼성제품과더불어 중소 가전제품도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삼성 최신스마트폰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여기저기서 “매출 부진이다, 망하겠다” 하고 아우성인데도 불구하고 안정적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덕분입니다.”라고 밝혔다.

제로페이에 대한 정보 분석이 전년 대비 부족한 매출을 메꾸는데 유용했다는 평가다.

“제로페이는 일단 현금으로 구매해서 가맹점에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용자가 제로페이를 구매해야하는 동기부여가 반드시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알아보니 제로페이를 사용하면 사용자에게 할인혜택 있었다(항상있는 것은 아님) 이것이 동기 부여였다.

그래서 관련기관 과 협조해서 제로페이 가맹을 했고 제로페이를 고객들에게 적극 홍보 했고 그것이 바로 매출과 연계되었다.

그는 이러한 정보를 동업계 삼성플라자 대표들과 바로 공유했다.

“다들 힘들잖아요. 함께 해야죠”

장 대표는 한 우물을 파는 사업가이자 또 한편으로는 변화를 따르는데 인색하지 않는 열린 경영마인드로 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는 “우리 회사는 남의 물건 사다가 파는 회사입니다. 저의 미래는 삼성의 미래와 같습니다.”

“대기업의 온라인 마켓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삼성이 삼성플라자라는 오프라인 마켓을 운영하는 것은 삼성브랜드 가치를 고객이 직접 경험케 하는 것이 현재까지 유효하기 때문이겠지요.”

“이러한 생각도 변할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 변화에 대응할 준비를 열심히 해야합니다.

‘삼성과 함께하는, 삼성의 직원은 아니지만, 영원한 삼성맨’으로 존재하는 그의 삼성에 대한 신뢰와 함께,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정신, 그리고, 직원에 대한 책임감이 기업윤리의 시작과 끝이라는 그의 생각이 현재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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