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외교광장]북극문제와 강대국의 이해(利害)..한국에 주는 함의는?
[SPECIAL-외교광장]북극문제와 강대국의 이해(利害)..한국에 주는 함의는?
  • 이서항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 승인 2020.04.0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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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항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이서항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비록 일회성 ‘해프닝’으로 그쳤으나 지난해 8월 불거져 나온 세계 언론의 미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랜드 매입의사 보도는 역설적으로 국제정치에 있어 북극의 중요성과 북극에 얽힌 강대국의 이해(利害)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적극적인 그린랜드 매입의사 표명과 그에 이은 미 영사관 개설계획 발표는 그만큼 북극과 맞닿은 그랜랜드의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강대국을 대표하여 미국이 북극에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가 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하여 러시아・중국 등 세계 강대국들은 북극을 둘러싸고 경쟁과 각축을 벌이고 있다. 강대국들의 이러한 다툼은 ‘북극에서의 신냉전’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21세기 거대게임의 현장’이라고 표현된다.

북극에서의 강대국 간 경쟁과 다툼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기후변화ㅡ특히 지구 온난화에 따른 북극해 해빙이 가져온 북극 개발가능성의 증대에서 연유된다.

최근 지구 온난화에 따른 북극해 해빙현상을 보면, 하절기인 2019년 9월 북극해 전체면적 약 1,400만㎢ 중 절반도 안 되는 약 415만㎢ 만이 얼음으로 덮여 있는 것으로 미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에 의해 관측되었는데, 이는 위성촬영이 시작된 지난 41년간 두 번째로 기록된 최소면적 기록이며 초기와 비교할 때 얼음 면적이 거의 50% 이상 줄어든 것이다.

또한 급속한 기후변화 때문에 북극해는 10~20년 이내에 얼음이 완전히 녹는 하절기를 맞을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북극해 해빙은 북극해의 항로이용과 북극해 연안 곳곳의 자원개발 가능성을 높여주는 ‘새로운 북극(new Arctic)’의 출현을 알리고 있으며,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증대하기 위한 북극 선점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북극에 대한 강대국들의 경쟁과 각축을 크게 보면 2가지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첫째, 군사적 측면에서의 경쟁이다. 최근 몇 년간 벌어진 북극에 대한 강대국들의 최신 군사시설 투자와 군비경쟁은 매우 놀랄 만하다. 육지 영토의 거의 3분의 1이 북극해와 접한 러시아는 스스로를 ‘극지 강대국(polar great power)’으로 부르고 2014년 ‘북극합동전략함대 사령부(Northern Fleet Joint Strategic Command)’를 창설한 바 있으며 시베리아 북동부 항구도시 틱시에 첨단 방공망을 배치하는 한편 과거 소련시절 폐기했던 북극지역 곳곳의 비행장과 활주로를 보수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북극해 해빙의 급속한 진행에 따라 베링해로부터 콜라(Kola)반도를 잇는 흔히 ‘북동항로(Northeast Passage)’로 불리기도 하는 북극해 항로(NSR: Northern Sea Route)의 상업적 활성화가 군사적으로도 활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쟁국인 미국은 러시아가 군사・전략적 이점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북극해 해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극지역에서의 대러 군사적 경계를 강화, 2018년 8월 러시아와의 접경지역인 알류샨 열도에서 대규모 상륙훈련을 시행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과거 냉전시기 알류샨 열도에 설치했던 미사일 감시 레이더도 30여 년 만에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있으며, 북극해 지역에서의 군사적 기동력을 높이기 위해 현재 1척에서 수년 내에 6척을 목표로 한 추가적 쇄빙선의 보유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군사적인 측면에서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국의 본격적인 진출 가능성이다. 이미 중국은 2018년 1월 북극 정책백서의 발간을 통해 스스로를 ‘近-북극국(near-Arctic state)’으로 명명하여 북극에 대한 지정학적 연관성을 주장한 바 있는데,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나 아이슬란드 등 북극 연안국과 협력하여 군사적 근거지 확보 등 공세적 행동을 벌이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019년 5월 핀란드에서 열린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회의에서 중국의 ‘近-북극국’ 주장을 거칠게 비난한 바 있다.

북극에서 벌이고 있는 강대국들의 또 다른 각축은 경제와 주권에 관한 것이다. 이미 북극해 연안 곳곳과 대륙붕은 원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희토류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확인되어 러시아・노르웨이 등에 의해 활발한 개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북극해 항로이용도 하절기에는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서고 있어 러시아 등 관련국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2018년 8월 세계적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Maersk)사가 북극해 항로(NSR)를 따라 콘테이너선을 부산항-브레머하벤 항을 25일 만에 시험 운항하여 기존의 수에즈 항로 이용 시보다 16일 단축시킨 바 있다.

한편, 자원개발 및 북극해 항로이용 등 경제관련활동은 연안국의 해양관할권 행사와 연계되어 있어 앞으로 북극해 연안국 간의 해양경계 획정과 북극점 점유 논쟁도 치열해 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유엔해양법협약(UNCLOS) 발효이후 연안국은 350해리가 넘는 대륙붕 이원에 대한 관할권 행사를 주장할 수 있는데 러시아는 자국 영토로부터 북극점에 이르는 무려 약 1,700㎞ 길이의 북극해 해저 로모노소프 해령(Lomonosov Ridge)의 관할권을 주장하여 현재 이의 승인여부를 UNCLOS에 의해 설립된 대륙붕 한계위원회(CLCS: Commission on the Limit of the Continental Shelf)가 심사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국인 미국이 UNCLOS 가입국이 아니어서 (자동적으로 CLCS에도 미참여) 북극해 대륙붕의 관할권 행사를 둘러싼 러시아의 주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도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상과 같이 최근 북극에서 주요 강대국들이 벌이는 경쟁과 각축, 그리고 견제는 과거 국제사회가 경험했던 ‘냉전’을 연상케 한다. ‘21세기 거대게임’의 하나로 불려지는 이러한 싸움은 우리에게 결코 강건너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다. 지난 2013년 중국・일본 등과 함께 북극이사회의 특별회원(ad hoc member) 자격을 획득하고 북극해 항로이용과 자원개발 참여 등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이 거대게임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여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서항 부회장은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연구실장・주뭄바이 총영사를 지낸 후 2015~2019 기간 동안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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