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5 ] 불안과 공포의 근원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5 ] 불안과 공포의 근원
  •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1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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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인드포스트  ⓒ 데일리경제

인류의 진화 과정을 보면 인류는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들도 불안감의 원인이 다를 뿐 늘 불안감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불안감의 종류는 더욱 다양 해졌다. 불안장애와 스트레스 장애는 현대인의 정신건강 진단 중에서 30% 정도나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전 세계적인 유행병(pandemic)으로 선포된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은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전 지구인들에게 불안감을 넘어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다.

불안감과 스트레스 장애는 우리 몸이 위협, 공포를 감지하고 반응하는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반면에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전두엽 피질의 신경 연결망은 둔화되는 데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체의 불균형 반응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킨다.  불안과 걱정은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에 대한 반응인 반면 공포는 현재의 즉각적인 반응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불안과 공포를 처리하는 신경회로가 서로 다른 것이 이유로 밝혀졌다. 불안은 뚜렷한 원인이 없이 생기는, 기분이 불쾌하고 모호한 상태를 말한다. 위험, 고통 등이 예상되는 상황이나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대상과 상황이 명확하지 않고 추상적이다. 이로 인해 신체에는 두통, 발한, 가슴이 뛰거나 답답함, 소화장애와 같은 자율신경계통의 이상반응이 수반된다.

이에 반해 공포는 이를 느끼는 시점에서 대상이 명확하고 구체적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이 경우 우리 몸은 눈을 크게 뜨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거나, 진땀이 나고, 오한으로 몸이 떨리는 등과 같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유사한 증상으로 공황상태가 있는데 심장마비나 질식과 같은 응급상황이나 그로 인해 곧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에서 오는 극심한 발작 상태를 말한다. 또 강박이라는 증상도 있는데 내심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이 있을지라도 불안 증상을 참지 못하거나 떨치지 못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추가적인 확인행동을 되풀이하게 된다. 

물론 불안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본시 불안감 자체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긴 것으로 정상적인 불안감은 향후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다만, 현실적인 위험이 없거나 사소한 경우, 또 주어진 자극에 비해 강도, 빈도, 불안감을 느끼는 기간 등에서 과도한 경우를 불안장애라 할 수 있다.   
 

출처 :  코메디닷컴   ⓒ 데일리경제 

우울증도 불안감과 비슷하고 딱히 구별하기도 쉽지 않지만 불안 증상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면 우울증은 과거에 대한 후회나 상실감, 혐오감이 원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울증도 불안 증상을 동반하지만 주로 과거에 경험한 고통이나 절망감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 불안감에 비해 해소하기가 더 어려운 측면도 있다. 공황장애 환자 중 40~80% 정도가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람의 공포감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사람과 캐나다 사람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감 1위는 대중 앞에서의 연설이고, 2위가 죽음이었다. 대중 앞에서의 연설이 죽음보다도 더 큰 두려움을 준다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감에 대한 신체의 반응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나 동물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적인 것이다. 우리 몸은 우리의 조상이 먼 옛날 아프리카 초원지대에 살면서 생존을 위해서 반응했던 신체적 본능을 오늘날까지도 거의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이는 진화심리적, 육체적 반응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숲속의 나무 위에서 들판으로 내려온 인류는 육체적인 힘이나 신체적 무기로 보아서는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에 비해 크게 내세울 것이 없다. 그래서 포식자를 먼저 발견하고 이로부터 거리를 최대한 멀리 유지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각이나 청각 등으로 처음 공포의 대상을 접하는 순간 우리의 몸은 시각중추, 편도체, 그리고 해마로 연결되는 본능적인 뇌의 시스템이 작동한다. 우리의 뇌는 공포의 대상을 감지하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전에 일단 무조건 위험요소라고 가정하고 흥분상태에서 경보를 울리는 반응을 보인다. 이는 오늘날 전쟁과 같은 비상시 경계경보 와도 유사하다. 그래서 눈을 크게 떠서 시야를 확대하고,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뒤로 물러서거나, 도망가거나, 몸을 갑자기 뒤로 넘어 뜨려 포식자일지도 모르는 대상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도망가기 힘들 때에는 대상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포식자에게 잡혔을 경우 쉽게 벗어나기 위해 몸을 미끄럽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가 곤란한 일을 당했을 때 식은땀을 흘리는 것은 이러한 본능의 결과이다. 동시에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는 신체의 반응속도와 지구력을 높이고 잠시 동안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호흡이 가팔라지는 이유는 도망을 갈 시 신체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근육에 피를 집중시키기 위해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이로 인해 피가 근육으로 몰리면서 손발이 차가워지고 얼굴이 창백 해지는데, 오늘날 우리가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공포영화를 보는 것이 일리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가 근육으로 쏠려 뇌에 혈액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뇌의 산소부족으로 일시적으로 기절하기도 한다. 또 공포를 느낄 때 나타나는 동결(freezing)이라 불리는, 몸이 갑자기 뻣뻣하게 굳는 현상은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신경회로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위험감지 시의 이러한 특별한 신체반응은 ‘과잉행동방어기제’ 혹은 ‘투쟁-도피 반응’이라 부른다. 극심한 공포나 심리적 충격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오늘날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PTSD)’의 형태로도 발견된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조상이 겪어보지 못했던 수많은 추가적인 불안 요인과 마주치고 있다. 20만년 전 호모사피엔스의 조상이 과중한 입시부담이나 취업문제, 나아가 노후문제 때문에 불안해 했겠는가?           

이와 더불어 역설적이게도 인류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진화했던 몇 가지 본능은 현대에 들어와서는 오히려 사람들의 죽음을 초래하는 원흉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류가 의식주에서 안정을 찾기 전까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 가장 큰 4가지 문제는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이었다. 그러나 우리 몸의 진화속도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인류가 지나치게 빠르게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면서 애초에 생존 및 유전자의 보존에 유리했던 기능이 오늘날에는 오히려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것이다.

식량을 얻기 힘든 환경 상 향후의 굶주림에 대비해 음식이 생길 때 마다 배불리 먹어 두고 여분의 열량은 몸에 저장했는데, 이러한 본능은 오늘날 비만, 당뇨병, 심장병, 암 발병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소금의 섭취도 원래는 짠 음식을 먹어 충분한 물을 섭취해 탈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심장질환, 뇌졸중, 신장질환의 주된 원인이다. 폭력 등으로 살해당하는 데에 대한 원시 인류의 공포심은 현대에는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조심하는 과민성 불안증,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과 더불어 이로 인한 자살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인류는 살인이나 다른 동물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보다 자살로 목숨을 잃는 숫자가 훨씬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에만 1만3670명이 자살에 의해 사망했는데 이는 하루 평균 37.5명 꼴로서 OECD 36개국 중 자살에 의한 사망률 1위이다.

출혈을 막기 위한 우리 몸의 혈액응고 기능은 오늘날 혈전을 생성해 뇌졸중과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신 출혈에 의한 대한 애초의 생존 위협은 현대에는 진즉 수혈이나 기타 의학적 수단에 의해 거의 사라졌다. 
  
이와 함께 인류는 불안이나 공포심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노력도 해왔다. 약물을 복용하거나 음주를 하는 것,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것, 종교의 힘을 빌리는 것 등이 이러한 사례인데, 이는 아울러 약물과 알코올 중독, 사이비종교로 인한 폐해 등의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다.

 와인도 전쟁 등에 있어 사람들의 공포를 완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는 병사들의 전투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병사 1인당 하루 2리터의 와인을 지급했다.

현재의 750ml 병을 기준으로 3병 정도에 달하는 적지 않은 량이다. 지금도 그 당시 격전지였던 상파뉴 지역의 참호가 있던 곳에서는 유골과 함께 와인병이 출토되기도 한다. 로마군도 전쟁 중 와인을 지급했는데 보통은 하루 1리터, 전투 중에는 하루 2리터에서 3리터가 지급되었다고 한다. 고대에도 술은 병사들의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 지급하는 전쟁의 필수 보급품 중의 하나였다. 그 당시에는 주로 맥주가 지급되었다.  특히 3열로 된 전투대형의 맨 앞줄은 적 앞에서 달아나지 않도록 의례 만취된 병사들을 배치했다. 이 때문에 일부 병사는 막상 전투에서는 술에 취해 전투도 해 보지 못하고 쓰러지는 경우도 많았다 한다.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이 발생할 때 불안해하고 공포감을 가지는 것은 본능이다. 그리고 감염자 집단에 대한
혐오감과 희생양을 찾는 것도 위험요인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사람의 ‘동물적인’ 본능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20만년 전의 유전자는 그대로 가지고 있을지 언정 생각하는 머리와 가슴에는 인류의 발전된 문명과 지성이
라는 다른 동물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선물을 가지고 있다. 불안감과 공포감을 키우는 원인 중 하나는 불확실
성과 무지이다. 조심은 하되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패닉 상태에 빠지거나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두려움의 대상에 대해 최대한 정확한 지식을 확보하고 조심은 하되, 그래도 불안하면 전투에 나갈 것은 아니지만 와인 한잔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끝.

 


[목요기획]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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