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4 ] 기생충과 바이러스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4 ] 기생충과 바이러스
  •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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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researchgate.net  ⓒ 데일리경제

와인의 역사를 바꾼 필록세라(Phylloxera)라는 기생충이 있다. 뿌리혹벌레과에 속하는 크기가 1mm 남짓한 녹황색의 해충으로 진딧물과 비슷하게 생겼다. 1년에 6~9회나 발생하여 유충과 성충이 포도나무의 뿌리와 잎에서 영양분을 빨아먹고 동시에 포도나무 뿌리에 황갈색의 혹을 만들어 뿌리가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할 수 없게 만든다. 이로 인해 포도나무가 고사하거나 포도알을 제대로 맺지 못하게 된다.

필록세라는 1860년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의 포도밭을 습격해 살아남은 포도나무가 없을 정도로 초토화시켰다. 프랑스의 경우 25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와인생산량의 60%를 감소시켰을 정도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이 해충은 원래 북미대륙에서 처음 발생하였지만 현지에 있는 포도품종은 저항성을 가지고 있어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토종 품종은 와인을 담그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유럽의 포도품종을 들여오면서 유럽 산 품종을 감염시키고 이어 대륙을 건너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신 대륙인 호주까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감염이 되었는데도 오직 칠레만이 지리상의 특성으로 인하여 참화를 피하였다.

필록세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저항성이 있는 미국산 포도나무에 접을 부쳐 어느 정도 극복을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완전한 퇴치법이 없을 정도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필록세라의 창궐은 유럽의 와인생산량을 급격히 감소시켜 와인과 이를 증류한 꼬냑이 귀해지자 비교적 저급주인 맥주와 또 이를 증류한 스코틀랜드산 위스키가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이로 인해 원산지를 속인 가짜 와인도 범람하여 마침 1855년 나폴레옹에 의해 처음 시행된 원산지 통제법(AOC)이 정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오늘 날  유럽 산 와인들이 단일 포도품종을 라벨에 나타내지 않는 배경도 이와 관련이 있다. 오직 칠레 산과 호주 일부 지역의 와인만이 예전의 순수한 품종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출처 : 씨네21  ⓒ 데일리경제

기생충이 최근 다시 전 세계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72회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에 이어 2020년 제 92회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휩쓴 것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것이다.   

기생충(Parasite)은 원래 그리스어 Parasitos에서 유래되었는데 처음에는 음식의 곁이라는 뜻에서 점차 귀족들의 옆에서 자잘한 일을 하면서 음식을 얻어먹는 식객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세기 후에는 오늘 날과 같이 생명체의 내부에서 다른 생명을 갉아먹으며 살아가는 생명체를 지칭하는 생물학적 의미를 갖게 된다. 기생충은 우리말의 ‘충’이라는 한자어 때문에 벌레를 의미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벌레 이하의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대부분 기생충에 속하지만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생명체는 미생물이라 부른다. 기생하는 회충이나 촌충 등 벌레류는 그야말로 기생충, 그 보다 큰 동물이나 식물은 기생동물이나 기생식물로 부른다. 영어의 Parasite는 이 모두를 포함해 기생하는 생명체를 모두 일컫는 말로 적당해 보인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제목도 영어로는 Parasite이다.

기생충은 인류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수십억 년 전의 생명체와 함께 진화해 왔다. 현생인류는 존재가 시작된 20만년 전부터 항상 몸속에 있는 기생충과 함께 살았다. 특히 미생물 단위의 기생충만 보더라도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우리 몸에는 30개조에 달하는 인간의 신체세포 수 보다도 더 많은 39개조에 달하는 미생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 속에 사는 각종 미생물의 무게만도 2kg에서 4kg에 달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세상은 미생물에 의해 점령되어 있다.
아니 모든 생명체는 애초부터 미생물에서 진화했다. 인류도 예외가 아니다. 아예 우리 몸의 일부가 된 기생충도 있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미토콘도리아는 이제는 우리 신체세포의 일부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동물의 세포에 우연히 침입한 단세포 미생물이었다. 또 식물의 광합성작용을 하는 엽록소도 처음에는 미생물이었지만 이제는 식물세포의 일부가 되었다. 사실 우리 몸속의 장에 살고 있는 대장균이라 불리는 수백가지의 미생물은 대부분 무해하다. 물론 유익균(프로바이오틱스)으로 불리는 이로운 미생물과 유해균으로 불리는 해로운 미생물도 있지만 대부분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세균으로 불리는 미생물 가운데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종은 100가지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들어 자가면역질환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기생충의 박멸과 관련이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이에 따라 거꾸로 자가면역 질환을 치료하기 위하여 몸에 해롭지 않은 촌충을 몸에 주입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관계하는 3가지 주요한 기둥을 면역체계와, 박테리아, 기생충이라고 주장하는 의학자도 있다.   

단세포 생물인 미생물은 크게 DNA가 들어있는 세포핵과 핵막, 단백질, 미토콘도리아로 이루어진 독립된 세포인 진핵생물이 있고, 또 세포핵 없이 DNA와 단백질, 리보솜을 세포막이 둘러싸고 있는 원핵생물이 있다.

진핵생물은 원생동물로 불리기도 하며 톡소플라즈마 원충, 말라리아 원충, 이질 아메바, 심장사상충 등이 진핵생물의 일종이다. 원핵생물은 세균으로 불리기도 하는 박테리아가 대표적이다.

  약 2,000종에 달하는 박테리아는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동물이나 식물과 공생관계를 이루어 좋은 역할도 한다. 바실루스 박테리아는 소가 뜯어먹는 풀의 셀룰로오스를 분해하여 여러 가지 지방산을 만들어 소의 소화를 돕고 영양분을 제공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박테리아는 콜레라, 페스트, 디프테리아, 장티푸스, 결핵, 폐렴, 한센병, 식중독, 충치 등이 있다.

 반면 5,000종이나 되는 바이러스는 무생물과 생물의 중간적 존재로서 반생물로 불리기도 한다. 수백만분의 1m 크기인 박테리아보다 수십배에서 수 백배 더 작아 광학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크기인 바이러스는 20세기 들어 전자현미경이 발견된 뒤 에야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포구조물이 없이 DNA와 RNA같은 유전정보가 담긴 핵산을 단백질이 감싸고 있는 간단한 구조인데 박테리아 같은 미세한 원핵생물을 비롯해 모든 종류의 생물 세포에 침투하여 자신의 유전정보를 복제하며 급속히 증식한다. 바이러스의 촉수가 세포 표면에 닿으면 세포벽을 용해하는 단백질을 분비한 후 바이러스안에 담긴 자신의 유전정보를 세포안으로 주입한다.

바이러스를 보면 리차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야기한 대로 생물은 자신의 DNA를 퍼트리기 위한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생각난다. 예외적으로 HERV-FRD 바이러스와 같이 산모의 면역반응으로부터 태아를 보호하여 인간의 생존에 결정적인 이로운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세포에 직접 침투하는 바이러스의 특성상 숙주에 해를 끼친다. 질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바이러스로는 인플루엔자, 수두, 감기, B형 간염, 사스, 메르스,  코로나, 홍역, 에볼라, 헤르페스, 광견병, HIV(에이즈) 등이 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박테리아는 스스로 양분을 섭취하고 살아갈 수 있는 기관을 갖추고 번식도 할 수 있는데 비해, 바이러스는 숙주가 있을 경우에만 숙주의 도움을 받아 증식할 수 있기 때문에 생존에 있어 숙주에 대한 의존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생물은 심지어 숙주의 뇌를 조종하거나 유전자에 영향을 끼쳐 숙주가 자신의 생존이나 DNA를 퍼트리는데 스스로 도움을 주도록 행동을 조절하기도 한다.

 톡소플라즈마 원충은 숙주인 고양이의 몸속에 들어가기 위해 중간숙주인 쥐에게 침투한 다음 쥐가 고양이에게 쉽게 잡아 먹힐 수 있도록 쥐의 뇌를 조종하여 쥐가 고양이 앞에서도 상황판단을 하지 못해 두려움을 잊고 스스로 다가가게 만든다. 톡소플라즈마는 고양이를 통해 전 인구의 10% 정도가 감염되어 있을 정도로 사람에게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큰 부작용은 없지만 공격성과 충동성이 증가하고 위험을 과도하게 감수하는 등 사람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다.

그리고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대규모 감염에 유리하게 치사율을 조정한다. 숙주가 죽으면 DNA를 널리 퍼트리는데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일수록 보통 감염력이 낮고 반면 치사율이 낮을수록 감염력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 현재 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후자에 속하는 유형으로 보인다.

미생물의 각기 다른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치료제의 접근 방법도 같지 않다. 원충과 박테리아는 생물인 관계로 항생제를 사용하여 퇴치한다. 하지만 항생제를 남용하면 박테리아가 내성을 가지면서 소위 슈퍼박테리아와 같이 나중에는 아무 항생제도 듣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생물이라 할 수 없기에 항생제가 근원적으로 효과가 없다. 백신을 사용하여 몸에 항체를 만드는 것이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인데 이것도 바이러스가 유전자 정보를 쉽게 바꾸어 변종을 만드는 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항상 사람이 한 발 늦다.

 독감의 경우 백신을 개발하면 이미 바이러스는 다른 종으로 변신하여 항체를 무력화시킨다. 예방접종을 하면 다행히 다음 해에 또 찾아오는 같은 바이러스에만 효과가 있을 뿐이다. 이러니 증상이 비교적 경미한 수백종에 달하는 보통의 감기 바이러스는 아예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우리가 감기약이나 항바이러스제를 먹는 것은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콧물이나 아픈 목과 같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감기의 치료는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알아서 한다.              
       
위 대표적인 3가지 미생물 중에서 원충으로서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대표적인 것이 말라리아를 유발하는 열 원충이다.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아직도 연간 200만명이 모기를 통해 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사망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 있어 여러 번 재앙적인 피해를 가져온 미생물은 단연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이다. 이 중 박테리아는 기원전부터 불과 몇 십년 전 까지도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항생제의 발달과 보건 환경의 개선으로 인하여 거의 통제되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대도시의 출현, 과밀한 인구의 집중, 교통의 발달 등으로 인해 오히려 한번 발생하면 더욱 통제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인류에게 큰 피해를 준 세계역사에 나타나는 굵직한 전염병의 사례를 살펴보면, 14세기 중엽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서 시작하여 실크로드와 유목민족을 통해 유럽을 비롯 전 세계를 휩쓴 페스트가 있다.

출처 : ko.wikipedia.org  ⓒ 데일리경제

그 당시 유럽과 아시아에서만 7,500만명에서 1억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원나라에서는 인구의 30%가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추정되는데, 가장 크게 피해를 입었던 곳이 지금의 코로나 발원지인 허베이성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이었던 점도 흥미롭다. 그 당시 페스트는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비켜갔다.

1918년 미국에서 시작해 그 다음 해까지 전 세계적으로 5,000만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일으킨 첫번째 대규모 전염병으로 기록되고 있다. 전세계 인구의 3~6%,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자수의 약 3배가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식민지 치하 우리나라에도 같은 해 상륙하여 그 당시 조선인구 1,770만명의 42%에 해당하는 740만명을 감염시키고 치사율 약 2%에 달하는 14만명의 사망자를 냈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더욱 심각하다. 필자도 현재 재택근무 중이다. 부디 이번 위기가 슬기롭게 극복되기를 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종료되어도 일하는 방식을 비롯해 많은 것이 바뀔 것 같다. 기왕이면 그 변화가 좋은 쪽으로 진행되어 전화위복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끝.

 

 


[목요기획]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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