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27 ] 토론토에서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27 ] 토론토에서
  •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2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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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는 첨단 IT 통신 기술의 위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화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 물'로서 글을 시작한다. 겸사 겸사 일이 있어 토론토와 뉴욕 여행계획을 잡고는 공항에 도착해 토론토행 출국수속을 밟기 위해 여권을 항공사 카운터에 내밀었다.

직원이 ETA비자를  받았는지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항공사 비자 체킹 시스템을 한번 더 확인한 직원이 다시 묻는다. 시스템에서는 비자승인을 받은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데요... 확실히 비자를 승인받은 것이 맞는지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불길한 '사실'이 뇌리를 강타한다. 맞다, 캐나다 비자를 신청조차 하지않았다. 미국 ESTA 비자 받은 것을 캐나다 비자도 받은 것으로 중대한 착각을 한 것이다.

참고로 캐나다는 2016년 미국의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의 요청에 의해 국경심사를 강화하여 예전 우리나라 국민에게 적용되던 6개월 무비자 정책을 변경하여 ETA제도를 새로이 도입하였다. 한번 받으면 5년이 유효하지만 여권유효일이 끝나면 다시 받아야 한다. 예전에 받은 것이 있었지만 하필이면 출국 3주전에 여권을 분실했다. 30년 이상 100개국이 넘는 나라를 숱하게 다녔지만 여권을 분실한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어쨌든 출국을 앞두고는 여권을 분실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서 여권에 있던 여러나라의 비자도 한꺼번에 분실했다. 캐나다 비자도 자동으로 날아갔다. 사실 스릴러는 이때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비자가 없으면 아예 탑승수속을 할 수 없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오늘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가히 재앙적인 일이 벌어진다.

비행기 좌석은 이미 만석이라 이번 주에 좌석이 나더라도 토론토행 스케쥴이 확정될 때 까지 이미 잡은 연결 비행편 등 다른 스케쥴을 잡을 수가 없다. 또 휴가에서 돌아와서는 바로 베트남 출장이 계획되어 있는데 이것도 변경하여 관련된 모든 출장계획을 현지와 협의하여 다시 짜야한다. 나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캐나다, 미국, 베트남 세나라와 연결된 모든 스케쥴이 총체적으로 엉망이 된다. 정신이 아득하다. 
시계를 보니 수속마감까지는 정확히 30분이 남았다. 지금이라도 비자를 신청하면 혹시 받을 수 있을까요? 항공사 직원에게 조심스레 물어보니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비자를 받아 탑승하는 것을 본적은 없지만 시도는 해보란다. 걱정스러운 얼굴이지만 회의적인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 밑져야 본전이니 휴대폰으로 한번 해보자. 카운터 앞 대기의자로 옮겨 구글검색으로 캐나다정부의 공식 ETA신청 사이트를 찾는다. 그런데 비슷한 사이트가 너무 많아 어디가 공식 사이트인지 혼란스럽다. 한 곳을 찾아 신청서를 메꾸는데 뭔가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정부  공식사이트가  아닌 비자신청 대행사이트이다.  5분을 쓸데 없이 허비했다. 마음이 더 급해진다. 이제 남은 시간은 25분.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캐나다 정부의 세관이민국(Customs and Immigrsation)사이트를 찾아 접속한다. 승인에 걸리는 시간이 짧게는 몇 십분에서 72시간 까지라는 안내가 있다. 가능할 수도 있다는 약간의 희망이 생긴다.  답해야할 질문이 많다. 그런데 긴급사항이 있으면 사유를 적으라는 공간이 있다. 이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어쩌고 저쩌고 적기는 했는데 이 걸 이 짧은 시간에 누가 볼까하는 회의감이 든다. 조금전 항공사 직원의 생각도 비슷했을 것이다. 쓰고나니 약간의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신청서를 다 채우고 제출을 하는데 에러가 뜨면서 제출이 되지 않는다. 시계를 다시 본다. 이미 15분이 지나고 현재 남은 시간은 15분. 거의 절망적이다. 지금 신청해도 15분 만에 나올까? 그냥 포기할까? 그래도 할 때 까지 해보자. 자세히 보니 주소를 적으면서 특수기호를 사용했는데 그러면 안된다고 한다. 빨간 글씨로. 그래도 안되는 이유를 아니 다행이다. 고치고 나서 다시 제출했다. 제출이 되었다는 안내가 나오고 결재화면이 뜬다. 일단 안심. 하지만 신용카드번호를 입력했는데 또다시 에러가 뜬다. 자세히 보니 이번엔 신용카드 번호 사이에 스페이스를 넣으면 안된단다. 시간은 이제 13분 남았다. 다시 신용카드번호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른다. 1초, 2초... 10초 쯤 후에 신용카드결제가 승인이 되고 비자신청이 제출되었다는 안내가 뜬다. 얏호! 하지만 시간이 문제다. 남은 시간 12분. 항공사 직원이 계속 이쪽을 쳐다 보는데 쓸데 없는 짓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12분안에 향후 몇개월은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도 있는 일이 결정된다.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런데 이번엔 어느 쪽이 일어날까? 조급함에 3분 쯤 지나 이메일을 체크해본다. 남은 시간은 9분. 이제 항공사 직원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다시 2분이 지나고 자동적으로 이메일을 체크한다. 아~ 그런데 영어로 된 새로운 이메일이 보인다. 설마하면서도 직감이 왔다.

믿어지지 않게도 캐나다 정부의 비자 승인메일이 5분만에 도착했다. 캐나다 총리 트리도에게 갑자기 고마운 생각이 든다. 이제 남은 시간은 7분.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듯 항공사 카운터로 돌진했다. 항공사 직원이 무슨일이냐는 듯이 쳐다본다. 의기양양하게 여권을 흔들고는 비자를 받았다고 하니 항공사 직원이 더 놀란다. 의지의 한국인. 그리고 우리나라 초고속 와이파이 시스템의 빠름에 감사한다.

우여곡절 끝에 토론토에 무사히(?) 도착했다. 하지만, 본 주제인 와인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회로  잠시 미루고 토론토 도착 5일 후에 발생한 연속된 스릴러물을 계속한다.
한국으로 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으니 본인이냐고 다짜고짜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집에 누가 있는지 다시 묻는다. 그래서 누구신지 내가 물었다. 거주하는 아파트의 보안팀장이다. 현관문이 몇일 째 활짝 열린채로 있어 복도 건너편 호수의 이웃이 강력사건이 일어났는지도 몰라 무서워서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관리소에 조심스레 신고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파트 보안팀장이 역시 직원 한사람을 대동하고 아파트로 가고 있는 중이란다. 현재 외국 여행 5일 째라고 하니 가서 상황을 확인하고 전화를 주겠다고 한다. 공포와 전율이 온 몸을 감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절도사건? 그런데 문을 어떻게 열었을까? 무엇을 도난당했을까? 그러나 곰곰히 생각할수록 범인은 나 자신이라는생각이 든다. 그렇다. 아침 일찍 호출한 택시가 도착하자 급하게 여행가방을 옮기느라 현관문을 열고 받침대를 받쳐놓고는 그대로 둔채 유유히 한국을 떠나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5일간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다행히 요새 도둑들도 바쁜지 우리 집을 방문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상황을 보안팀장이 친절히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어 보내 주었다. 이것으로 스릴러 물은 종료하고 다음회에선  토론토 와인 기행을 시작 한다.  끝.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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