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26 ] 좋은 와인과 좋은 인재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26 ] 좋은 와인과 좋은 인재
  •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1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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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도 여러 개의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갔다. 두 달 전 여름이 끝나갈 무렵의 아침 출근길, 태풍이 훑고 지나간 도로변 곳곳에는 강한 바람이 밤새 남겨놓은 흔적들이 생생했다.

그 중에 특히 바람에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길가에 쓰러져 있는 나무들이 눈에 뛰었다. 자주 다니던 길이라 평소에는 눈 여겨 보지 않았는데 자세히 주변을 살펴보니 쓰러진 나무들이나 피해를 입지 않은 나무들이나 외양만 보아서는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쓰러진 나무들도 바람만 크게 불지 않았다면 그저 그렇게 다른 나무들에 섞여 별스럽게 사람들의 눈에 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를 보면서 한 가지 단순한 생각이 떠 올랐다. 평소에는 모두 똑 같아 보이던 나무들이 똑 같은 바람을 맞았는데도 어떤 것은 쓰러지고 또 어떤 것은 멀쩡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물이나 식물이나 살아있는 것은 주변의 환경변화가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포도나무도 이러한 사례 중의 하나이다.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는 토양과 기후, 습도, 일조량 등에 따라 그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같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도 포도원(떼루아)과 생산연도(빈티지)에 따라 품질과 가격에 큰 차이가 난다. 포도라는 식물은 그 만큼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다. 토양이 비옥하고 물의 공급이 풍부한 곳에서는 줄기와 잎은 풍성하게 자라지만 정작 좋은 열매를 맺지는 못한다. 대신 땅이 척박하고 건조한 비탈밭이나 계곡 같은 곳에서는 필요한 영양분과 물을 찾아 뿌리를 깊게 내린다. 그리고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확보된 자원은 본능적으로 개체의 보존을 위한 목적에 우선 배분한다. 그래서 이러한 토양에서 자란 포도들은 잎사귀와 줄기의 성장은 적당히 억제되고 대신 튼실한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다. 특급 와인을 생산하는 이름있는 포도원이 주로 토양이 거친 지역에 위치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쓰러진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포도나무가 떠오른 것은 바로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는 방식과 이에 따른 결과가 둘 다 본질적으로 상호 다르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무가 뿌리가 뽑힌 이유는 평소 다른 나무 보다 뿌리를 얕게 내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지가 꺾인 이유는 가지가 다른 가지 보다 평소에 약했거나 바람을 버텨낼 정도로 유연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을 보면 그 전 단계에 그것을 초래한 원인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세상에 이유없이 어떤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법은 없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갑자기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평소에 축적되었던 것이 어떤 계기를 맞아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일어날 것은 반드시 일어난다. 고전물리학에서는 이를 결정론(determinism)이라 부른다. 결정론은 ‘자유의지’를 초월하는 다소 복잡한 영역으로 확대되기도 하지만 여하튼 모든 결과는 선행요인이 쌓여 만들어 지는 것이다.      
정부 부처에서 고위공직을 역임하고 지금은 대학의 총장을 맡고 계신 지인, 어렸을 때의 숱한 역경을 떨치고 독학을 하여 수십권의 책을 출판하고 법학박사까지 취득한 친한 친구, 또 기업교육분야의 선구적인 잡지사를 운영하는 지인과 함께 얼마 전 와인을 마시는 자리를 같이 하였다. 화제가 성공하는 사람의 특질과 탁월한 성과는 어떻게 달성되는 것인가로 옮겨갔는데 자연스럽게 각 자의 어린시절이야기가 나왔다.

이중에서 체구가 크지 않은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아무도 맞서지 못하던 불량한 친구로부터 시달림을 당한적이 있는데 어느 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의 권상우처럼 분연히 일어나 그 친구에 대항하여 ‘좀 얻어맞기는 하였지만’ 그날 이후에는 시달림을 당하지 않았다는 경험담이었다. 그리고 이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경험이 그 이후의 인생경로에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여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이 어린 나이에도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그날의 결론은 두사람은 ‘깡’(혹은’깡다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러한 결론에 쉽게 동의하였다. 깡이 두 사람의 향후의 인생에 있어 하나의 성공요소가 되었던 셈이다. 깡이란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혹은 지구력을 의미한다. 탁월한 성과를 달성한 인재에 관한 많은 연구결과가 이러한 결론을 지지한다.     
  그렇다면 ‘인재’란 어떤 사람들이며 또 그 들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일까? ‘인재’란 “한 분야 혹은 여러 분야에서 보통 사람들의 범주를 뛰어넘는 탁월한 성과와 성공을 보여주는 소수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보통 ‘Talent’라 부르기도 하지만 경영 사상가 말콤 글래드웰은 이들을 ‘Outlier’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다른 많은 보통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타고난 재능, 지능지수, 뛰어난 사회성, 자라온 환경, 학습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핵심적인 요소가 있다. 분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관련 연구를 보면 신중하고도 체계적으로 계획되고 또 탁월함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심층적으로 반복되는 학습 혹은 연습과 또 이를 실행하게 하는 의지력이다. 지능이나 재능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면 지능이나 재능만으론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 깡은 열정과 의지력을 대변한다. 그래서 깡이 중요한 것이다. 성공을 방해하는 요인 중 에서도 지루하고 힘든 반복적 훈련을 참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힘든 고비(경영전략가 세스 고딘은 이를 dip으로 표현함)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의지가 차이를 가르는 핵심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하는 다른 모든 분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중지능이론을 창시한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이러한 과정을 IDF(Individuality:개인의 특성, Domain:해당 분야의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회, Field: 교육받은 지식과 학습의 결과물을 실제적인 현업이나 경쟁의 장에서 심화할 수 있는 장)로 표현하고, 이를 한 분야에서 탁월한 창의적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성공조건으로 꼽았다. 이러한 조건과 더불어 탁월한 성과를 달성하는 인재의 조건에 꼭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로 해당 분야에 대한 각별한 관심, 지속적 학습을 강력히 유도하는 어느 한 순간 찾아오는 각성(peak experience), 탁월한 성과를 위해서는 영혼을 팔수도 있다는 소위 ‘파우스트적’인 특별한 몰입과 의지를 들었다. 여기서 파우스트적 몰입이란 우리 선조들이 말한 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쳐야 이룬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미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반복되는 학습과 노력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 하나가 윤리적 감수성이다. 아무리 탁월한 성과라도 윤리적 뒷받침이 없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좋은 인재가 만들어지는 것은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는 것과는 비교할 수없이 어려운 과정이다. 하지만 투입과 숙성이라는 본질적인 과정에 있어 두 가지는 같다. 좋은 인재를 보면 좋은 와인이 생각난다. 끝.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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