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디자이너 허일무의 리더십체인지] 세상과 소통하는 자판기②
변화디자이너 허일무의 리더십체인지] 세상과 소통하는 자판기②
  • 허일무 교수
  • 승인 2019.07.11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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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디자이너 허일무 교수
변화디자이너 허일무 교수

 

“도서관에서 자판기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학생이잖아요. 보통 학생들은 친구와 같이 와서 캔 음료를 마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냥 1000원짜리 한 장을 넣으면 친구와 같이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600원이나 700원을 받으면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그게 전부에요. 커피 가격도 조금이라도 더 받으면 좋겠지만 남편과 같이 상의해 봤어요. 비록 자판기 커피지만 얼마 정도 받으면 사람들이 이 커피를 마시면서 대접받는다고 생각할까 하고요. 그래서 200원이 됐어요.”

자판기 운영자 유계승 사장과 그의 아내에게 캔 음료와 커피를 싸게 판매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 온 대답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만약 “그 정도 받으면 크게 이익은 없지만 박리다매로 팔기때문에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아무 느낌도 감동도 없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가격결정에 있어 수익이 가장 중요한 잣대이다. 하지만 유사장의 가격결정에는 인본주의적 가치가 담겨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유계승 사장이 고수하고 있는 자판기 운영원칙들은 나름대로의 특별한 이유와 의미가 있다.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고 매일 같이 집에서 알칼리이온수기에 물을 정수해서 가져와 자판기에 사용하는 이유는 이용자의 건강과 커피의 맛을 위해서이다.

특히 자판기 커피 맛에 대한 유계승 사장의 집념은 남다르다. 어떤 물을 사용했을 때 최적의 커피 맛을 낼 수 있는지 다양한 물로 테스트를 해서 최종 결정된 것이 알칼리이온수이다. 심지어 구매하는 커피의 로스팅 정도에 따라 커피 맛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제조회사에 몇 년간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때론 맛이 다른 커피를 봉지째로 폐기 한다.

유사장의 이런 행동은 마치 도공들이 최고의 도자기를 빚기 위해 가마문을 열고 원치 않는 도자기를 미련 없이 깨 버리는 장인정신과 맞닿아 있다. 이외에도 일반 종이컵보다 두껍고 품질이 좋은 비싼 고급종이컵을 사용한다. 유사장은 커피와 차를 마시고 헹궈서 다시 사용하여 자원을 재활용하고 뜨거운 커피로 생길 수 있는 화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학생들 시험 기간에는 밤 늦게까지 자판기 옆에서 대기한다.

거스름돈과 재료부족으로 학생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커피와 크림, 차 그리고 캔 음료는 생산 된 지 1주일 이내의 국내 1위 브랜드만을 사용한다. 또한 캔 음료는 이용하는 학생들의 건강과 식습관 개선을 위해 무탄산 음료만을 판매한다. 위생관리를 위해 매일 1시간 30분씩 청소하고 일주일 마다 3시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대청소를 한다.

유계승 사장이 이처럼 유별나고 까다롭게 자판기를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판기에 부착 해놓은 그의 핵심가치에 잘 나타나 있다. 바로 ‘싸고 맛있고 깨끗하게’ 이다. 자판기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명확하고 중요한 가치는 없을 것이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한 유사장의 20여년간의 노력은 치열했다.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구매처를 발굴하여 원가를 절감했다. 또한 철저한 위생관리를 위한 주말 대청소로 주말에 휴가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유사장이 자판기에 상상을 뛰어넘는 노력과 애정을 쏟아 붓는 이유를 고객만족과 자신의 원칙

을 지키기 위한 정도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분명히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

각했다. 결국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유사장님을 다시 만나 물었다.

“도대체 사장님에게 자판기 사업은 어떤 의미입니까?”

유사장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자판기는 세상과의 교감입니다. 사람과의 교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용자들하고 교감하는 거죠. 제가 1시간 30분 동안 청소하고 가면 저는 여기 없습니다. 하지만 자판기를 통해 이용자들하고 교감하는 거죠.”
 

자판기에 ‘교감’이라는 표현을 쓰다니 놀랍지 않은가? 유사장에게 자판기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표현하고 실현하는 소통의 대상이며 정체성이었다. 왜 자판기 이용자들이 자판기에 감사편지를 부착하고 길거리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고 당신처럼 살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유사장님이 자판기를 운영하면서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원천에는 자신만의 노와이가 있었다.

즉 그는 자판기운영에 남다른 목적과 동기를 갖고 있으며 자신의 일을 다른 관점과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신념과 가치,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평범한 유사장님의 자판기 운영에 대한 노와이는 영역을 불문하고 어떻게 탁월함을 추구하고 수익과 의미의 균형을 유지하며 존경받으며 일하고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개인과 조직에게 좋은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오늘 각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으면 한다.
“나는 우리는 왜 이 일을 하고 있고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평범한 사람의 위대한 노와이를 유산으로 남기고 하늘로 가신 故유계승 사장님의 명복을 빈다.

* 참고로 이 글은 2017년 출간된 허일무의 저서 ‘노와이(know-why)’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으며 일부 내용을 인용하거나 수정하였음을 밝힙니다.

 

■ 허일무는?

∙ (현)HIM변화디자인연구소 대표/경영학박사

∙ 삼성에스원 지사장

∙ 엑스퍼트컨설팅 전임교수

∙ IGM, 한국생산성본부 겸임교수

∙ 장안대학교 외래교수

∙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 변화디자이너(특허청 서비스표 등록 제41335267호)’
 

■주요활동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LG, SK를 비롯한 국내 기업 및 다양한 공공기관과 방송에서 리더십, 변화관리와 관련하여 인사이트가 있는 강의와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노와이,2017》, 《차이를 만드는 습관, 2015》, 《습관다이어리 365+1,2015》, 《체인지웨이,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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