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제재 보복조치, 정부의 대응 카드는? WTO제소, 실효성 의문
일본 경제제재 보복조치, 정부의 대응 카드는? WTO제소, 실효성 의문
  • 안민재 기자
  • 승인 2019.07.03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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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에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아베총리/출처:G20
G20에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아베총리/출처:G20

 

일본 아베정권이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의 일환으로 경제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힌 이래 정부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일본 기업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반발하며 보복조치에 나선 일본 정부의 방침으로 반도체 부문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정부는 일단 WTO제소등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일본 정부는 오는 4일부터 TV와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 과정에서의 필수 재료 3종에 대한 한국으로의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1일 공식 발표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한일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손상됐다"며 한국에 대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 관련 소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luorine polyimide) △고순도 불화수소(Hydrogn fluoride) △리지스트(Photoresist) 등 3가지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공식화 했다.

이에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업계 1~2위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은 갑작스러운 일본 정부의 발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일본 정부는 미국, 독일, 영국 등과 함께 우리나라를 '화이트국가'로 지정해 첨단재료 수출시 허가 심사를 면제했다. 하지만 오는 4일부터는 한국이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제외되며 개별 기업들이 각각의 수출 허가를 받아야돼 그 과정이 종전보다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리지스트와 고순도 불화수소는 일본 기업들이 전세계 생산의 90%가량을 거의 '독점'하는 수준이라 만약 실제로 한국으로의 수출이 지연될 경우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보복조치의 배경에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이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에게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압류될 처지에 놓이자 이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로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경제 교류는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방위계획대강을 발표하며 한국을 안보협력 대상국 2위에서 5위로 변경했다. 지난 28~29일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선 한-일 정상회담이 불발됐다.


제재가 실제로 시작되면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되면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들이 해당 품목을 수출할 때마다 건별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신청과 심사에는 90일가량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수입에 걸리는 시간이 지체돼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는 등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재계는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전경련 배상근 전무는 "일본 정부가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부품에 대해서 수출 규제를 시행하기로 한 것에 깊은 아쉬움을 표한다 "며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을 제한한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에 돌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의 이번 보복 조치가 자유무역에 관한 WTO 정신에 위배된다고 보고 WTO 제소와 관련해 본격적인 법률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통상교섭본부 당국자는 "일본의 조치는 WTO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수출통제에 해당하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통상전문가들과 함께 법률검토를 하고 있다"며 "실무적인 작업은 이미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일본의 이번 조치가 WTO 협정 위반으로 보고 있다. 회원국을 대상으로 관세 등에 따르지 않는 수출입 물량 제한 금지 규정(GATT 제11조)을 위배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GATT 제11조는 수출입에서 수량 제한 시 시장의 가격 기능이 정지되고, 관세보다 쉽게 무역 제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국가 안보 등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면 수량 제한을 금지하고 있다.

실제 WTO 제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 실효성이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법률 검토 자체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고 WTO 분쟁 해결의 첫 절차인 양자협의를 일본에 요청하기까지는 최대 1년까지 걸릴 수도 있어서다.

한편, 홍남기 경제 부총리는 "일본 조치는 올해 상반기부터 관계 부처간 태스크포스(TF) 구성해서 꾸준히 논의해왔다"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어 이에 맞춰 대응하려 한다"고 말하면서 추가 제재 가능성에 대해  "(추가 제재가 있으면) 필요한 대응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현재 조치와 관련해서 정부는 업계와 긴밀히 협의해왔고 지금도 협의를 하고 있다"며 "일본 조치를 계기로 삼아 국내 소재·장비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일본 정부가 발표한 수출제한 조치와 관련해 향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해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번 조치는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한 경제보복"이라고 규정한 뒤 이같이 밝혔다. 이어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에 비춰 상식에 반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런 방침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단기간에 일본의 보복조치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먼 얘기라는 반응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이미 예견되어 왔음에도 이를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일본의 보복조치를 우려해 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4월  '한일관계 진단 전문가 긴급좌담회'에서 연사로 나선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치가 만든 한일관계 악화는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며 "일본도 아프겠지만 한국이 더 아플거고 더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박 교수는 "우리는 일본하고 한번도 무역흑자를 내본적이 없다"며 "부품과 소재, 장비에 대한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기 때문으로, 한일관계가 더욱 나빠져서 이 부분에 있어 손상이 오면 한국경제에는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산 전자부품 수입액만 71억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총도 지난달 26일 '기업에서 바라본 한일관계 토론회'에서 경제협력관계에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경총 손경식 회장은 “한국은 일본에 산업용 원자재를 수출하고, 일본으로부터 핵심 부품·장비를 수입하는 등 활발한 교역을 토대로 양국은 상호보완적인 경제 파트너이자 선의의 경쟁자로 함께 발전을 이뤄왔다“며 ”일시적으로 양국의 정치적 환경이 어려워진 경우에도 경제협력관계와 경제인들의 우호친선 관계는 공고히 유지되어 왔다“고 설명하면서 “그러나 최근 들어 한일 경제협력 관계에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는 바, 지금이야말로 한일 양국 경제인들과 기업간에 더욱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통해 신뢰와 협력 관계를 확인하고 양국의 전통적인 우호적이고 동반자적인 관계 회복에 기여해 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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