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디자이너 허일무 리더십체인지] 세상과 소통하는 자판기①
[변화디자이너 허일무 리더십체인지] 세상과 소통하는 자판기①
  • 김정현 기자
  • 승인 2019.03.26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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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도서관에 자주 왔던 청년입니다. 이제 동탄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도서관에 자주 못 오게 되었습니다. (중략) 자판기 앞에서 오래 계시면서 관리하시는 어르신 모습을 볼 때면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신의 일을 통해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어르신 같은 분들이 많으면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해 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인에게 따뜻한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필자는 자판기에 부착되어 있는 편지를 직접 목격하고도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시립 도서관에는 한 때 이용자들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방송까지 화제가 되었던 특별한 음료자판기 운영자가 있었다.

몇 년 전 동네 도서관을 처음 찾은 날 이 특이한 자판기를 운명처럼 만났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종이컵에 커피가 채워지는 동안 무심코 둘러 본 자판기는 최신기계는 아니었지만 그 동안 이용했던 자판기들과는 다른 아우라aura와 느낌이었다.

자판기에 샘플로 전시되어 있는 음료캔에는 한때 유명했던 야채가게 판매대에서 본 듯한 재미있는 문구들이 형형색색의 푯말로 붙어 있었다. 동전투입구 위에는 온도가 95도 이하일 경우에는 먹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가 있는 것도 특이했다. 또한 자판기 측면에는 방송에 출연했던 장면을 캡처한 사진도 붙어 있었다. 자판기 운영자가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방송까지 나올까 더 궁금증이 생겼다.

이용자들이 보낸 감사카드와 편지가 빼곡하게 부착되어 있는 것은 경험도 예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자판기 외관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이 운영하는 자판기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시선을 강탈한 것은 ‘자판기 운영선언문’이었다. ‘자판기 운영선언문’은 자판기의 위생관리, 재료사용, 가격정책까지 철저하게 고객의 건강과 입장에서 윤리적으로 운영할 것을 다짐하는 10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내용이었다.

‘물은 정수기 물이 아닌 알칼리이온수 사용, 커피와 크림은 대형회사에서 생산한 15일 이내의 정품사용, 국산차는 국내 전통회사 생산시점 1주일 내 제품, 음료는 무탄산 음료 캔만 판매, 종이컵은 차를 마시고 나서 재사용 가능한 고급 컵 사용, 매일 방문 청소와 점검 및 일요일 대청소, 사용 중 불편사항 연락 시 30분내 처리 및 차 한 잔과 통화료 지급, 취업 관련 자료 비치, 최저가격, 최소이익 약속’

솔직히 자판기 운영자가 튀는 것을 좋아하거나 유명세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용자들에게 감사편지를 받는 세상에 하나 뿐인 자판기 운영자를 빨리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자판기 운영자는 어떤 사람일까? 왜 보통의 자판기 운영자들이 하지 않는 행동과 노력을 할까?’ 그 목적과 동기가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목격한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노와이(Know-why)’의 가장 강력하고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생각과 행동은 그 어떤 것보다 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판기에 붙어 있는 운영자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목소리는 작고 차분하지만 단호함이 느껴졌다. 나의 신분을 밝히고 나서 자판기 운영에 대한 인터뷰를 제안했다. 자판기 운영자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자판기 운영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냐며 몇 번을 거절했다. 결국 나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평범한 일에 남다른 노력과 헌신을 다하는 분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파하고 싶다고 목적을 얘기하고 나서야 저녁에 자판기 청소시간에 오면 만나 주겠다는 조건부 허락을 받았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도서관으로 이동해 자판기 앞 휴게 공간에서 20여분을 기다렸다. 자판기에 부착 된 방송 캡처사진에 나왔던 사람과 일치하는 분이 아내와 함께 잔뜩 짐을 갖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렇게 유계승 사장님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그 뒤로 몇 번의 공식적인 인터뷰를 진행했고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 몇 번의 대화를 더 나누었다. 유계승 사장님과의 인터뷰는 매번 기대와 생각을 뛰어 넘는 메시지와 영감을 주어 감동 그 자체였다. 그리고 20여년을 자판기 운영이라는 평범한 일을 하면서 주위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쳤던 유계승 사장님의 일에 대한 목적과 동기는 나의 직업적인 가치와 정신적 성장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유계승 사장님의 얘기는 나의 저서 ‘노와이(Know-why)’의 핵심 스토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책을 쓰게 되는 모티브를 제공했다. 앞으로 들려 줄 자판기 운영자 ‘유계승’사장님의 얘기는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노와이의 새로운 지향점을 이해하는 데 큰 방향과 프레임을 제공해 주리라 믿는다.* 참고로 이 글은 2017년 출간 된 허일무 박사의 ‘노와이(know-why)’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으며 일부 내용을 인용하거나 수정하였음을 밝힙니다.

 

■[허일무는 누구?]

삼성에 입사, HRD(인적자원개발) 담당자와 영업관리자를 경험했다. 직장생활 시절, 유목민처럼 스스로 현장과 스텝부서를 넘나들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혔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와 장안대학교 외래교수로 활동하였다.

2007년 직장을 나와 대한민국의 최고의 변화전문가로서 비전을 선언하고 〈HIM변화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하여 개인과 조직의 변화관리와 혁신, 리더십 개발을 위한 저술과 강의로 헌신하고 있다.

변화디자이너(특허청 서비스표 등록 제41335267호)’라는 직업을 창직하여 변화전문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LG, SK를 비롯한 국내 기업 및 다양한 공공기관과 방송에서 인사이트가 있는 강의와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향후 리더십, 개인 및 조직변화 그리고 업무몰입에 대한 연구와 저술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주요저서로는 《노와이,2017》, 《차이를 만드는 습관, 2015》, 《습관다이어리 365+1,2015》, 《체인지웨이,201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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