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 인공지능 사외이사
[김화진칼럼] 인공지능 사외이사
  • 이형석 기자
  • 승인 2019.02.26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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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온다. 기업들은 사외이사를 선임하느라 분주하다.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에 독립성을 상실한 거수기라는 비판도 여전하다. 인공지능(AI)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면 독립성 문제가 해결될까.

2014년에 홍콩의 한 벤처기업이 바이탈(Vital)이라는 이름의 AI를 이사회에 합류시켜 화제가 되었다. 세일즈포스의 베니오프는 작년 다보스포럼에 나와서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의 AI를 매주 임원회의에 대동해서 의견을 물어가며 회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조사해 보니 기업경영자들의 반 이상이 이르면 2025년에 AI CEO가 탄생할 것이라 보고 있다.

AI의 의견을 듣는 것은 좋은데 꼭 결정권을 가지는 이사로 대우해 줄 필요까지 있는가. 인간이 아닌 AI를 이사로 선임하는 것이 법률적으로 가능한가. AI는 자신의 결정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경우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지나.

우선 AI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동기는 없지 않다. 예컨대 3:3으로 대립하는 이사회를 생각해 보자. 그런 경우 회의체 구성원들은 정말로 중립적인 한 사람을 추가로 영입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인간의 중립성이란 백퍼센트 확실하게 보장될 수 없는 것이다. 여전히 양측의 설득과 공세의 대상으로 취약하다. 

AI라면 양측 다 이의가 없거나 단념할 것이다. AI를 설득하는데 성공한다면 정말로 그쪽 입장이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 AI를 단순한 의견 제시자로서가 아니라 결정권이 있는 이사회 구성원으로 영입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AI에게는 파벌이나 채널이 없다. 편향적 사고, 정치적 행동도 없다. 성별 문제도 없고 나이나 국적도 문제가 없다. 남이 기분 나쁠까봐 할 말을 안 하지도 않고 반대로 아부도 하지 않는다. 인류의 영원한 부담인 ‘나쁜 소식 전하기’에도 거침이 없다. AI가 반대의견을 말했다고 기분이 나빠져서 AI와 척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AI는 이사회 의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회사에 도움을 주는 능력 면에서 인간 이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AI는 가장 많이 알기 때문에 이사회의 흐름을 주도하게 될 것이고 인간 이사들은 따라가기 바쁠 것이다. 실제로 사외이사가 아니라 경영진 이사들이 이사회를 주도하는 이유는 회사의 사업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야말로 주주 이익을 위해 경영진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상 가장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될 것이고 인간 사외이사들의 효용과 역할을 감소시킬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AI 이사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운영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거대한 기업들이 나올 수 있다. 현대의 대규모 회사는 사실 인간의 능력으로만 경영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아마존에서만 이미 10만 대의 로봇이 일한다. 항공관제시스템과 유사한 시스템이 물류창고의 로봇들을 통제하는데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회사 전체의 시스템을 통제하는 AI가 곧 필요하게 될 것이다.

AI 이사도 자연인 이사와 같은 의무와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다. 주의의무 측면에서 AI는 가장 이상적인 이사다.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실수를 하거나 나태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없다. 충실의무 차원에서도 문제가 없다. 충실의무란 이사가 개인적 이익을 회사 이익에 앞세우지 말라는 것인데 AI에게는 개인적 이익이 없다. 개인적 이익이란 주로 금전적 이익이고 사회적 이익도 포함된다. AI는 재산을 소유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 체면이나 인간 또는 ‘다른 AI와의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따라다닐 일이 없다.

AI는 인간과 달리 과감한 결정을 내리거나 정무적 판단에 취약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러한 성향은 이사회에서 오히려 피하는 것이 좋다. 설령 그를 장점으로 본다 해도 인간 중에 그런 장점을 가진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이사로 인정할 수 있는가. 있다. 우리 법이 자연인이 아닌 법인 이사를 인정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지만 긍정하는 견해가 있고 해외 입법례로 영국과 프랑스법이 법인 이사를 인정한다. 실제로 자본시장법은 투자회사에 법인 이사를 둔다. 법인 이사를 부정하는 견해는 이사의 임무가 자연인의 의사와 능력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설사 법인 이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AI 이사는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AI의 상호연계성이다. 인간과 달리 AI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대화나 만남 없이 실시간으로 상호 연계될 수 있다고 한다. 해킹으로 인한 사외이사의 독립성 문제가 생길 것이다. AI에 윤리를 주입하면 문제가 방지될까. 회사의 영업비밀을 잔뜩 가지고 임기를 마친 AI 사외이사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유지관리 해야 하는지도 문제다.

더 큰 차원의 문제는 회사법을 넘어선다. AI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 의사결정의 주체를 인간의 선호 감각과 인센티브 감각에 기초를 둔 행위능력자로 상정한 모든 법체계가 같이 정비되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민사책임과 형벌이 더 이상 법률적 책임의 이행과 법률의 준수를 담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벌칙을 겁내지 않을 뿐 아니라 의미 자체가 없는 행위자의 실수나 배임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통제 필요성이 애초에 없다면 법률마다 맨 끝에 “이 법률은 AI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부칙을 붙여야 할까.

우리가 현재로써 할 수 있는 일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사회적 논의의 장에 도입하는 것과 이미 앞서 활발한 논의와 법률적 대응책을 준비하기 시작한 유럽연합에서 부지런히 배우는 것이다. 대학과 연구기관들도 필요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스티븐 호킹도 마지막 책에서 AI 문제를 경고했다. 생물학적 제약이 없는 AI는 스스로를 고속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 AI가 대기업을 ‘접수’하게 되면 시장도 접수하게 된다.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호킹이 말했듯이 AI가 세상에 대해 인간과 동일한 목표를 갖도록 미리 분명히 합의해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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