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人]“나를 위한 위로, 당신을 위한 휴식” 개인전 여는 김복자 화가
[文化人]“나를 위한 위로, 당신을 위한 휴식” 개인전 여는 김복자 화가
  • 정미숙 기자
  • 승인 2019.02.13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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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자 화가가 개인전을 연다. "나를 위한 위로 당신을 위한 휴식"이라는 테마로 오는 15일 부터 28일까지 경상북도 상주에 소재한 포플러 나무아래 갤러리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공개한다.
 
김복자 화가가 말하는 “나를 위한 위로, 당신을 위한 휴식”
 
김복자는 바쁘다.
김복자는 참 할 일이 많다.
하루 24시간을 다 사용하고도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니
쉬고 싶다 쉬고 싶다 노래를 불러본다.
그래도 쉬질 못한다.
김복자는 할 일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욕심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주로 하는 역할,
오래 만들어진 관계,
사회적 분위기에 드러나는 모습이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었는지 모른다.
남이 생각하는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가?
이제 내가 내 자신을 토닥이고 위로할 때다.

 

나의 작품은 일상의 희망이다.
내가 배운 것, 내가 가본 곳, 내가 경험한 것,
특히 나의 경험을 그림 속으로 데려왔다.
 
색을 좋아해서 작품마다 색이 들어가 있다.
작품의 주재료는 전통채색재료인 3배접한 한지나 장지에
호분과 분채, 석채를 주로 사용하여
표면이 거친 마티에르를 느끼게 했다.

자개와 순금분을 사용하여 마무리 작업을 했다.
 
작품 속 종이비행기와 종이배, 종이학은
나에게 던지는 희망이다.
의자는 한 호흡 가다듬는 휴식이고
도자기와 찻잔은 나를 토닥이는 손길이다.
동네풍경은 있는 그대로 내가 받은 감동과 위안이다.
 
나는 기교가 뛰어나지 않다.
그렇지만
힘들고 지쳐있는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잠시의 쉼을 선물하고 싶다.

 

 ‘疏野소야’ - 위로와 휴식
 

중국에서는 일찍이 유협劉勰이나 사공도司空圖가 ‘의상意象’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들은 ‘의중意中의 상象’, 즉 ‘생각 속의 형상’이란 뜻으로 사용했다. 의상은 의意와 상象으로 구성된 복합체다. ‘의’는 화가의 주관 정감을 뜻하고, ‘상’은 객관적인 ‘물상物象’을 가리킨다.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물상은 일단 화가의 구상 속에 들어오면 자연적으로 화가의 주관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화가의 심미경험審美經驗에 따라 취사선택된 물상은 화가의 ‘미학이상美學理想’과 ‘미학취미美學趣味’에 부합될 뿐 아니라 화가의 사상과 인격, ‘정취情趣’를 함유한다. 그러한 물상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의상’이다. 그러므로 “의상은 주관적 정의情意에 녹아든 객관적 물상物象이며, 혹은 객관적 물상에 빌려 표현해낸 주관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김복자는 그림에서 주로 나무, 새, 물, 꽃, 돌, 산 등의 자연물상을 소재로 한다. 이러한 자연물상에는 김복자만의 주관적인 의미지가 각인된 의상이 있다. 그림 속의 나무는 꿈과 희망, 새는 기대와 소식, 물, 폭포, 파도는 기억과 추억, 꽃은 즐거움과 기쁨, 돌, 산은 아픔과 고통을 뜻한다. 벤치와 정자는 휴식의 장소이자 쉼의 공간이다. 다기, 도자기, 찻잔 등은 나와 나의 주관적인 이미지가 ‘의상’화된 자연물과의 대화를 위한 매개체이다. 벤치나 정자에 앉아 다기에 차 한 잔을 놓고 나의 기억과 추억, 꿈과 희망, 기대와 소식, 아픔과 고통, 기쁨과 즐거움이 ‘의상’화된 자연물과 대화를 한다.
 
그림 <쉼>에서 소재는 벤치, 도자기, 찻잔, 새, 꽃 등이고, <쉼-향>에서는 다기, 찻잔, 꽃 등이다. <장각폭포>, <천지연폭포>에서는 정자, 나무, 바위, 폭포 등이고, <인왕산>, <사인암>, <인수봉>에서는 산, 바위, 나무 등이다. 김복자만의 주관적인 의미지가 각인된 자연물상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그녀의 그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의 표현기법에서 <소풍>, <휴식>, <엄마생각>, <나를 위한 위로>, <북천의 위로>, <중덕지의 위로> 등의 작품들은 호분과 분채, 석채를 사용하고, 자개와 순금 분으로 마무리 하였다. 표면은 투박한 마티에르로 인해 붓질과 표현 기법이 거칠고 덜 다듬은 듯 시골티가 난다. 이러한 거침과 시골티의 맛을 동양미학에서는 ‘소야疏野’하다고 한다. ‘疏소’ 시야가 탁 트이다. ‘野야’ 거칠고 넓은 들판, 즉 ‘거칠어 얽매인데 없이 방종한 태도를 가리킨다.
 
당나라 말엽의 비평가 교연皎然은 “성정이 거칠고 시골티 나는 것을 ‘한가롭다’고 한다情性疏野曰閑”라고 했다. 시골티에서 한가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희재劉熙載는 “시골티는 시의 아름다움이다”라고 했다. 진솔한 천연의 맛이 듬뿍 묻어나는 것을 말한다. 소야의 특성을 한 수의 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惟性所宅   오로지 본성이 가는 곳을 따라
眞取弗羈   천진하게 취할 뿐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拾物自富   사물을 줍기만 해도 절로 넉넉하여
與率爲期   늘 솔직하기를 기약하네.
 
 
김복자는 화면에서 거친 구성과 표현으로 화가의 인간적 엉성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었다. 소야는 진밀縝密한 구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화가의 본성과 개성이 창작의 표준일 뿐 어떠한 구속에도 매이지 않는다. 김복자의 화면 구성은 진밀하지 않고 소야하다. 본성이 시키는 대로 천진함에 맡겼을 뿐이다. 본성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내맡기고 인위적 조탁과 수식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천진하고, 진솔하며, 솔직하다. 이 때문에 김복자의 그림에서 위로와 휴식을 얻을 수 있다.
 
김복자의 앞으로의 작업은 ‘소야’에 중심을 두되 ‘세련洗鍊’을 더하여야 한다. ‘세련’은 ‘서투르거나 어색한데가 없이 능숙하고 미끈하게 갈고 닦음’이란 뜻이다. ‘작품을 거듭하여 조탁彫琢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개지전顧愷之傳』에 “영혼이 깃든 곳을 눈으로 맑게 씻고, 정신이 머문 집을 비단처럼 씻는다.澡雪靈府洗練神宅”라는 표현이 나온다. ‘비단처럼 씻는다.’는 ‘잡념을 깨끗하게 씻어서 정신을 맑게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세련은 불순하고 저속한 것을 제거하여 순수하고 고결한 상태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김복자의 앞으로 작업이 ‘소야疏野’에 ‘세련洗鍊’을 겸한다면 이보다 더 훌륭함은 없을 것이다. -미술사학 박사  이 나나-


 ■ 김복자 작가는?
 
국립안동대학교 미술학과(동양화 전공)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과 석사과정 | 한국미술협회 | 경북청년작가회 | 이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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