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영 감독의 고성방가 '안단테 칸타빌레'
서민영 감독의 고성방가 '안단테 칸타빌레'
  • 오석주 기자
  • 승인 2009.09.19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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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경제신문]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요즘은 그래도 많이 느려졌지만 전에는 밥도 엄청 빨리 먹어서 다른 사람들 반쯤 남았을때 난 이미 다 먹은 경우가 많았다. 뜨거운 것도 잘 먹어서 후루룩 마시곤 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뜨거워서 후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영화계의 선배님, 어르신들 중에는 성격 급한 분들이 정말 많았다. 연출부 시절 어느 나이 드신 감독님은 급한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식당으로 막 들어서는 나에게 ‘빨리 시켜라’ 라고 하신 적도 있고 심지어 아직 먹지도 않은 식사에 대해 ‘영수증 미리 달라 그래’ 라고 하신 적도 있다. 믿기지 않은 내용이지만 불행히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차분한 성격의 사람들도 급해질 판에 나 같은 경우는 그로 인해 더 급해진 것 같다. 무조건 급히 서두르다 보면 실수도 더 많이 하게 되어 그다지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 이해되는 부분은 그 시절이나 그 이전 영화 제작 환경이라는 것이 늘 적은 제작비에 맞추는 무리한 일정에다가 낮이든 밤이든 꼭 그때 찍어야 할 촬영 장면들이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찍을 수 없는 분량들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슬픈 이야기인데 그렇게 함으로 해서 나름 노하우들이 발전한 측면들도 부정할 수는 없다. 어떤 영화인이든 하루의 촬영 분량이 여유있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찍을 수 있는 분량이길 바랄 것이다. 물론 빨리 한 작품 끝내고 다른 작품 하고 싶다는 스텝들과 배우들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이런 생각 많이 했으니까...

빠름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악기 연주로 예를 들어보면~. 연주 경험이 별로 없는 일반인들은 연주자들이 빠르게 손을 움직이면 굉장한 연주이고 고수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연주자에게 빠르게 연주하도록 되어 있는 악보를 놓고 느리게 노래하듯이 연주해 보라고 한다면 잘 할 수 있을까? 하기야 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내 생각이 아니라 어느 기타 연주자의 이야기다. 주제 넘는 생각이지만 그래서 많은 연주자들이 오히려 느린 블루스 곡을 연주하는게 어렵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영화 촬영때도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천천히 움직일 경우 빠른 움직임 보다 더 힘든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카메라와 배우 사이의 거리를 정확하게 재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되고 조심스러운 순간이다. 그것이 어긋날 때 우리는 극장 대형 화면에서 포커스가 안맞는 화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작업이라 간혹 실수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안맞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2002년 월드컵 직전 인터넷 등산 동호회 중 상당히 규모가 큰 산악회에서 1년 정도 활동한 적이 있었다. 산악회 가입 전에는 그냥 뒷산 약수터 가는 수준이라 뭐가 뭔지 몰랐는데 다니다 보면서 등산 선배님들로 인해 산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지금은 다시 뒷산 약수터 수준이 됐지만...그래도 가끔 혼자서 아주 좋아하는 북한산을 간다. 등산 경력이 2~30년된 어떤 등산 선배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등산이란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일정한 보폭으로 가는 것이 중요해’. 이 이야기에 가장 걸맞는 대표적인 운동이 마라톤인 것 같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일정한 페이스를 잃고 전속력으로 뛰었다가는 절대 완주조차 힘드니 말이다.

오래전 고개 숙인 남자들에 관한 영화를 준비하면서 의학과 각종 통계 자료들을 통해 조루로 고통 받고 있는 남성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었다. 하긴 남자들끼리 만나면 대부분 ‘나는 문제없어, 변강쇠야!’ 라고 하니 알 수가 있나...외모가 참기름에서 막 건져낸 것처럼 제아무리 번지르르 해도 겉만 보고는 절대 모르는 법이다. 이 시대는 조루도 심각하지만 그와는 또 다른 조로 현상이 우리 사회에 심각하게 만연되어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60대라고 하면 완전 할아버지, 할머니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70은 넘어야 노인이란 느낌이 든다. 이건 비단 내 생각만이 아니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실제 사회 전반의 일터에서는 60대를 만나기 힘들다. 특히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 영화계는 더욱 심한 것 같다.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30년생이다. 첫 출연은 1955년도이고 첫 감독은 1971년도이다. 지금도 헌팅을 직접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섭외를 직접할 때도 많다고 한다.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야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최근 ‘그랜토리노’ 란 작품을 보고 배우로서 자신과 너무나 잘 맞는 역할이고 감독으로서 얄미울 정도로 영화를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데 정말 급한 상황을 만날 경우 돌아갈 수 있을까? 과연 성공이란 무엇일까? 누구나 빨리 성공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에게 주어지진 않을 것이다. 빨리 성공해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 분야에서 힘 닿는 데까지 오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아직 성공 못한 지금의 나 자신을 조금 위로해 본다. [데일리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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