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 ] "세월의 빠름과 와인의 숙성 "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3 ] "세월의 빠름과 와인의 숙성 "
  • 정미숙 기자
  • 승인 2018.12.27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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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을 때 세월은 밥그릇 안에서 지나가 버린다.

침묵하고 있을 때는 세월은 두 눈동자 앞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세월이 바삐 감을 깨닫고 손을 뻗어 막으려 하면 세월은 어느새 손끝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내가 침상에 누워있을 때는 내 몸 위를 넘어가 버리고, 내 발끝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짓지만, 그러나 새로운 날의 그림자는 그 한숨 속을 번쩍하는 시간에 지나가 버립니다”.

중국 칭화대학 교수를 지낸 시인, 주쯔칭(朱自淸)의 산문 ‘총총(悤悤)’에서 발췌한 글이다.

세월의 빠름이 감각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흔히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간다고 한다.

쏜 살은 시위를 떠난 화살을 말하니 세월의 속도가 발사된 화살의 속도와 맞먹는다는 뜻이다.

화살의 속도는 궁수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고, 특수하게 제작된 양궁은 시속이 360Km에 이르기도 하지만 보통 가장 빠른 현대의 컴파운드 활은 평균 시속 235Km 정도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국궁은 시속 200Km 정도가 된다.

그러니 ‘쏜살같은’ 세월의 속도는 시속 200Km가 조금 넘는 속도이다.

현대의 속도감각으로는 그렇게 빠른 속도가 아닌 셈이다.

흔히 쓰는 또 다른 표현인 ‘유수와 같이 흐르는 세월’의 속도는 아무리 빨라도 화살의 속도에는 한참을 못 미친다.

참고로 현대에는 사람이 직접 만든 발사체 중에서도 화살의 속도를 능가하는 것이 많다.

우선 화살과 쉽게 비교가 되는 총알의 속도는 M16소총이 시속 3510Km 정도가 된다.

시속 1224Km인 음속의 세배를 뜻하는 마하3 정도의 속도인데, ‘쏜살’ 보다 10배 이상 빠르다.

그리고 최신예 정찰기나 전투기의 속도도 총알의 속도에 버금가는 빠르기를 가지고 있다.

F15 전투기는 최고시속이 3017Km인데 서울의 남산타워 상공에서 부산 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 상공까지 7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또 우주선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비행체 중 가장 빠른 SR71 정찰기는 최고시속이 3219Km에 달한다.

그리고 미사일의 경우는 시속 10,000Km, 우주탐사선 주노는 목성에 근접할 시 시속이 26만Km를 돌파했고, 현재의 기술로도 가능한 나노크래프트 우주선의 최고속도는 광속의 20%에 달하는 2억16000Km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잘 느끼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시속 1667Km의 속도로 스스로 쌩쌩 돌고 있는 지구에 살고 있다.

모두 화살과는 애초 비교할 수도 없이 빠른 속도이다.


그러면 실제 물리학적으로 보아 세월의 빠름은 어디쯤 해당될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에서 어떤 물체가 빛과 같은 속도로 진행한다면 시간이 정지하고, 빛보다 더 빨리 진행하면 시간을 거슬러 오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즉 시간의 속도는 빛의 속도인 셈이다(?).

그래서 세월의 흐름이 시간의 흐름이라면 세월의 속도는 빛의 속도인 것이다.

빛의 속도는 시속 10억8천만Km이다.

그러고 보면 세월이 빨리 간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

세월이 빛과 같이 흐르는 것처럼 사람들 역시 빛과 같이 나이가 들어간다.


와인도 나이를 먹는다.

간혹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와인은 무조건 오래 묵으면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나오는 와인 중 90%는 와이너리에서 출고된지 1~2년 이내에 마시는 것이 좋다.

16~7세기에는 보통 와인의 수명을 1년으로 보아 다음 해 6월 이전에 소비해야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레드와인의 약10%, 화이트와인의 약 5%는 2~3년, 그러나 10년을 넘겨 장기 숙성이 가능한 최고급 와인의 비율은 약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와인은 잘 보관하기만 하면 세월이 갈수록 알콜과, 향, 탄닌, 당도, 산도 등이 균형을 이루면서 풍미를 더해간다.

보르도 소테른의 귀부와인인 샤토 디켐의 경우는 100년까지도 저장한다.

세월이 가도 좋은 와인처럼 풍미를 더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려 보지만 또 한 해가 손가락 사이로 지난다.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
 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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