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영 감독의 '고성방가'> 치킨게임
<서민영 감독의 '고성방가'> 치킨게임
  • 오석주 기자
  • 승인 2009.09.07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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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게임’이란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의 이름이었다.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치킨으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둘 다 죽을 수도 있는 엄청난 게임이다.

나를 포함해 주위를 돌아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족, 친구, 직장 등등 많은 사람들과 여러 공간에서 상대방과 사소한 오해나 갈등에 직면하게 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한쪽의 일방적이 잘못이 있거나 엄청난 사건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겠지만 대개 원인을 찾아 들여다 보면 별일 아닌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일이 점점 꼬이거나 커지면서 서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다.

고백하건대 나또한 오래된 후배나 동생, 친구와 그런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안타깝고 참으로 후회스럽지만 엉거주춤하며 방치하는 시간들이 너무 많이 흘러버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때때로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지 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알량한 자존심을 내새워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고 좋은 관계로 함께 늙어갈 수 있는 그런 소중한 사람들과 점점 골이 깊어져 멀어지게 된 것이다. 아예 치킨 게임을 시작하지 말든가 아님 내가 먼저 핸들을 꺾었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치킨 게임의 폐해는 인간 관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집단과 집단, 특히 최근의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보여지는 국가간 외교전을 보면 국가와 국가 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지난 날을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쓰라린 기억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자기 분야에서 아주 뛰어났던 한 후배와 20년이 넘는 관계였는데 서로에 관한 엉뚱한 오해로 인해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 해명하고 해소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매번 서로의 타이밍이 어긋나면서 결국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 후배와 한참 자주 만나던 시절에는 그 후배가 가정에 어려움을 당한 처지라 나에게 정신적으로 의지도 많이 하고 나또한 선배로서 위안이 되어 주려고 애 썼는데...그런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씁쓸하기만 하다. 나이 차이가 얼마 안났지만 마치 나를 큰형 대하듯 하던 후배였는데...이제는 그저 같은 하늘 아래에서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지 염려만 할 뿐이다.

최근에 술이 취한 상태에서 친구와 언쟁을 벌였다가 풀기도 했고 요즘 내가 좀 예민하다는 것을 빙자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냈다가 엄청나게 후회한 적이 있다. 한쪽에서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같이 죽게 되는 치킨 게임 선상에서 우리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당시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멀어져간 후배나 동생, 친구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나? 그럴리가 없다. 한 사람과 진정으로 친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깟 자존심은 아무 의미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어릴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씩 친구 무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윈윈은 못할 망정 자칫 지나친 욕심과 과열된 경쟁심으로 치킨 게임을 벌이다가 서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가속도가 붙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 두 대의 차는 거의 동시에 충돌하거나 함께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이런 일들이 영화계에는 안타깝게도 비일비재하다. 영화 작업이 워낙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친한 관계들은 흔들림이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작품이 끝나고 친할 겨를도 없이 각자 다른 작품이나 다른 길로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워낙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집단 작업을 하는 것이라 작업 과정에서 숱한 오해와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고 그로 인해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더 나아가 그러는 과정에서 벌어진 서로의 간극을 조금도 좁히지 못한채 마치 군대에서 괴롭히는 고참과 한 시간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고 스스로 위안하듯 어차피 영화는 감독 작품이니까 이렇게 찍나 저렇게 찍나 내 알바 아니다 라는 심정으로 촬영이나 빨리 끝나기만을 염원하며 그렇게 한 작품을 마무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생길 정도면 어떻게 작업에 열정을 갖고 참여할 수 있겠는가? 결국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로 인해 본인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게 될 것이고 작품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물론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왕따 당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그런 소수를 제외하고 하나하나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좋은 성품을 갖고 있고 함께 작업하면서 늙어가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이다. 나도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되도록 더욱더 노력할 것이고 서로에게 전혀 득이 되지 않는 지난날에 벌였던 후회스런 치킨 게임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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