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위기극복 성과남기고 퇴진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위기극복 성과남기고 퇴진
  • 이경석 기자
  • 승인 2018.12.10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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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관리 아래서도 R&D 강화

한국 반도체업계의 양대산맥인 SK하이닉스 박성욱 부회장이 '아름다운 용퇴'를 택했다.

6년간 SK하이닉스를 이끌며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최고점에서 나온 결정이어서 업계를 놀라게 했다.

대한민국 반도체의 가장 치열했던 한 시절이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신화와 함께 화려하게 저물었다.   
 
거침없는 독설과 냉철한 리더십이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는 반도체업계지만, 박 부회장은 온화하고 겸손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쑥스러운 미소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세심하고 과감한 추진력을 갖추면서도 권위를 내려놓은 리더십으로 임직원들의 신망이 두텁다. 
 
현대전자 시절 지어진 3층짜리 옛 건물에서 지낸 박 부회장은 엘리베이터도 없이 매일 계단을 걸어 집무실로 향한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평소에는 직원들과 똑같이 회사 점퍼를 입고 회사를 누빈다. 비서가 의전이라도 할라치면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워낙 싫어하다보니 임직원을 호출하기보다 직접 찾아가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필요한 것이 있거나 전할 메시지가 있으면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 눈을 맞추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직원들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면 환하게 웃으며 앉아서 일하라고 격려하곤 했다. 덕분에 직원들은 CEO에 대한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다. CEO의 겸손하고 탈권위적인 리더십이 제 역할을 했다. 
 
반도체업계에서도 사람 좋기로도 유명하다. 지난 10월 '반도체의 날' 행사에서도 업계 권위자이자 선배인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의 다리 부상을 염려하며 옆자리에서 살뜰히 챙기고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반도체 협회 행사에서도 회장인 자신보다 다른 CEO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선호한다. 박 부회장은 이날 기자에게 "권오현 회장의 책 '초격차'를 읽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다른 산업계와 달리 반도체인(人) 행사가 유독 화기애애한 것도 이같은 박 부회장의 다정함 덕분이다. 
 
박 부회장은 지난 6일 SK하이닉스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SK그룹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 ICT위원장으로 옮겼다. 이와 함께 SK하이닉스 미래기술&성장 담당을 맡아 SK하이닉스의 미래 성장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게 된다.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 출신인 박 부회장은 현직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회장으로, 반도체업계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경북 포항 출신으로 동지상고와 울산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전자·전기공학과 출신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프로필이다. 1984년 KAIST 재료공학 석사학위를 딴 뒤 현대전자에 입사한 그는 34년간 반도체 외길을 걸었다.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며 부침을 겪은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를 오늘날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기업으로 일궈낸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2003~2012년 10년간 SK하이닉스의 메모리 R&D(연구개발)를 총괄할 땐 D램 분야에서 해마다 새로운 공정을 내놓으며 업계를 긴장하게 했다. 
 
그의 커리어는 '기적의 위기극복'으로 통한다. 반도체기업은 생산라인 건설에 수십조 투자가 필요해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산업이다. SK하이닉스는 대규모 자금을 거침없이 R&D와 설비에 투자하는 삼성전자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악조건에 처해 있었다. 경쟁사처럼 연구원들의 월급을 올려줄 수도, 조 단위 투자를 할 수도 없었던 하이닉스가 '기적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박 부회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로 부도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고, 미국 마이크론 등 해외에 매각될 위기에도 처했다. 2011년 SK그룹으로 인수되기 전까지 채권단 관리라는 혹독한 시절을 견뎌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R&D에 매달려 경쟁사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지난 2007년 하이닉스가 처음으로 삼성전자의 D램 반도체 수율을 앞서며 삼성 반도체 경영진들이 문책당한 일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2015년 노조와 함께 국내 최초로 임금공유제를 도입한 것도 박 부회장이 이룬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박 부회장은 지금이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하는 최적의 시점이라고 판단해 용퇴를 선택했다"며 "앞으로도 SK그룹의 ICT 역량 강화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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