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의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인재교육]"문제를 해결하라"
[김용권의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인재교육]"문제를 해결하라"
  • 이영근 인턴기자
  • 승인 2018.04.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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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시대의 공부법

 

배운 것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창가에서 몰래 훔쳐보면 친구들이 공부하는데 방해되잖아. 다시는 오지마라!”

캄쾀바는 친구들이 공부하는 교실 창밖에 서서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을까 기웃거리다 선생님께 들켜서 쫓겨나는 중이었다. 캄쾀바는 친구들이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캄쾀바는, 오늘따라 자신의 모습이 더 불쌍하고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창가에 서서 수업하는 것을 몰래 듣다 들킨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학교에 가기도 어렵다는 것을 캄쾀바는 잘 알고 있었다. 가득이나 가정형편이 어려운데 배우지도 못하면 가난을 벗어나기란 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2001년 아프리카 말라위에 대기근이 닥쳤다. 담배농사를 졌던 아버지는 농사를 망치자 20명이나 되는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웠다. 80달러(약 9만 2천원)인 일 년 학비를 낼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던 윌리엄 캄쾀바(William Kamkwamba)는 열네 살에 중학교를 자퇴한다.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마을에 혼자 남아 있던 캄쾀바는 문득 예전에 마을 도서관에서 빌려 봤던 풍차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이 있다는 것은 진짜 있는 것이 아닐까?”

에너지 사용에 대한 내용으로 미국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Using Energy'라는 책 표지가 떠올랐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영어로 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전을 찾아가면서 공부했다. 하지만 책 속에는 전력을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풍차를 어떤 식으로 만드는 것인지 방법을 소개하는 내용은 없었다. 일단 사진에 있는 풍차 모습처럼 만들기로 했다. 아버지가 타다가 고장나서 마당 한 쪽에 있던 자전거에서 바퀴와 체인, 그리고 자전거 바퀴에 붙어서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했던 조그마한 모터를 떼어냈다. 그리고 마을 공터에 버려져 있던 트랙터에서 냉각팬을 떼어왔다. 풍차를 세울 탑을 만들기 위해 마을 곳곳에 있던 나무들을 모았고 어머니가 빨랫줄로 사용하던 전선도 준비했다.

풍차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찾고 준비하며 풍차를 만들어 탑에다 세우기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행동을 캄쾀바가 하자, 학교도 못가고 공부도 못하게 되더니 드디어 캄쾀바가 미쳤다고 수근거렸다. 풍차를 만들기 시작한지 두 달이 되는 날 풍차에서 이어져 나온 전선에 라디오를 연결하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캄쾀바는 물론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놀랐다. 캄쾀바가 전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순식간에 마을에 퍼졌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러 갔을 때였다.

“정말 이 책을 보고 풍차를 만든 거니?”

“네, 이 책만을 보고 풍차를 만든 거예요.”

“와! 정말 대단하다... 내가 직접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열다섯 살의 학생이, 더구나 중학교도 중퇴한 학생이 풍차를 이용해서 전기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주변 마을까지 퍼져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풍차를 만들 때는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돕겠다고 했다. 두 번째 풍차를 만들어 마을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휴대전화를 충전하는데 썼다.

윌리엄 캄쾀바가 바람을 이용해서 전기를 만들었다는 소식은 말라위 교육당국에까지 알려졌다. 교육관계자는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한 캄쾀바에게 장학금을 주어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블로거들이 캄쾀바의 소식을 소개하면서 말라위 국민 모두가 알게 되었고 TED 아프리카 담당자까지 알게 되었다. 캄쾀바는 2007년 탄자니아에서 열리는 테드(TED,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국제회의에 초대되어 연설까지 하였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에까지 캄쾀바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윌리암 캄쾀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자퇴하고 자신의 형편만을 탓하고 좌절했다면 지금의 캄쾀바는 없었다. 또한 학교에서 배운 것을 시험보기 위한 것이나 졸업장을 얻기 위한 지식으로만 활용했다면 지금의 캄쾀바는 없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무수히 많은 젊은이가 취업을 하지 못하고 놀고 있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학교 졸업장이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험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교육과정을 마치기 위해, 대학교 졸업장을 얻기 위해 초·중·고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면, 미래를 위한 진로방향이 매우 잘못 되어 있다.

윌리엄 캄쾀바처럼 자신이 배운 것을 활용할 줄 알고, 무엇인가 스스로 만들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스티브 첸, 조 게비아처럼 배운 것을 통해 직접 물건을 만들고 회사를 창업할 줄 아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

보완하여 완성하라

우리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이라고 하면 제임스 와트를 떠올리고,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이라고 하면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떠올린다. 하지만 증기기관이나 벨을 처음 만든 사람은 제임스 와트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아니다.

증기기관은 1693년에 토머스 세이버리가 양수펌프를 개발하는 것부터 출발한다. 1712년에 토머스 뉴커먼이 토머스 세이버리가 만든 양수펌프를 더 보완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불완전한 상태에 있었다. 1764년에 제임스 와트가 뉴커먼이 만든 기관을 수리하다가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점을 해결한다. 그리고 1769년 1월 15일 증기를 이용한 기관에 대한 특허를 받으면서 제임스 와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화기를 발명하는 과정도 증기기관을 발명했던 과정과 비슷하다. 전화기에 대한 발명은 1854년 안토니오 메우치(Antonio Meucci)가 벨보다 21년 앞서서 했다. 하지만 메우치가 전화기에 대한 특허를 제대로 받지 못해 자료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1863년에 필립 라이스가 벨보다 15년 앞서서 영국의 STC 회사에서 한 전화 실험에 성공했고, 벨이 만든 전화기보다 더 성능이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 라이스의 전화기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는, 1885년 벨이 받은 특허에 대해 무효 재판을 하는 중 법정에서 한 전화 시연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벨보다 전화기에 대한 더 전문가였던 라이스는 사업하는 것을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다. 벨과 거의 동시에 전화기를 개발했던 엘리사 그레이는 당대 최고의 전신 전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화기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무선전신의 일부분으로만 생각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고 해도 가치를 모르면 기껏해야 보통 물건과 다를 것이 없다. 양수펌프를 개발해 놓고 더 크게 생각하지 못했던 토머스 세이버리나 토머스 뉴커먼, 전화기를 최초로 발명하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안토니오 메우치나 필립 라이스, 그리고 전화기의 가치를 몰랐던 엘리사 그레이처럼 보물을 보물로 볼 줄 아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과학책을 보고 실생활에 직접 활용했던 윌리엄 캄쾀바처럼, 미래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상황이 어렵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미래사회에서는 대학교 졸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실제로 얼마나 활용할 줄 아는가 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변화가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끈임 없이 배워야 하고, 새롭게 생겨나는 문제들을 해결해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은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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