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목의 웰페어노믹스 정책마당]미중 무역분쟁, 본격적인 패권경쟁
[서상목의 웰페어노믹스 정책마당]미중 무역분쟁, 본격적인 패권경쟁
  • 서상목
  • 승인 2018.03.20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패권 전쟁이 가시화되고 있다.

수년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의미하는 AIIB 가입과 최근 중국의 경제규모 팽창, 그리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미국인가, 중국인가?”가 세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6·25 전쟁이후 긴밀한 한·미군사동맹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과정에서도 미국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음으로써, 대미관계는 한국외교의 기본 축 역할을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1980년대 중반 이후 대외개방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여 한국의 가장 큰 수출시장이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이 외교 분야에서 독자적 노선을 추구하려고 함으로써 그 사이에서 외교 및 대외경제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을 매우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한국의 선택

 지난 2013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동남아시아 순방 중 아시아개발도상국에 사회기반시설을 지어주자고 하면서, AIIB의 설립을 제안하였다. 2014년 11월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인도, 싱가포르 등 21개국 대표들이 AIIB 설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최근에는 영국, 프랑스, 호주 등 주요 서방 국가들이 AIIB 참여를 선언함으로써 그 동안 설립에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던 미국을 매우 곤혹스럽게 하였다.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AIIB 가입을 주저했으나, 영국 등 주요 서방국가들이 참여 입장을 밝힘에 따라 2015년 3월 27일 중국에 참여를 통보하였다. 한국의 참여로 2015년 11월 현재 회원국 수는 57개국, 설립 자본금은 천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지분율은 3.81%로, 중국 30.34%, 인도 8.52%, 러시아 6.66%, 독일 4.57%에 이어 회원국 중 5위이다.


중국이 AIIB를 설립하게 된 동기는, 큰 차원에서 살펴보면, 그간 경제발전으로 크게 부상된 자국의 영향력을 국제사회에서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덩샤오핑 주석 이후 대외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린다’는 의미의 도광양해(韜光養晐)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았으나, 2000년부터는 그간 성공적으로 이룬 경제발전과 국력신장을 바탕으로 ‘평화롭게 우뚝선다’는 의미의 화평굴기(和平崛起)를 외교정책의 새로운 기조로 삼고 있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은 집권 이후 안보 분야에서 이른바 ‘아시아 신 안보관’을 제시하고, 경제에서는 이른바 ‘신 실크로드 전략’을 구상하는 등 국제정치질서에 도전하는 공세적 대외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의 ‘아시아 신 안보관’은 아시아 주변국들과의 경제제도 및 정책의 공유를 통해 이익공동체를 형성하여 중국 중심의 지역질서를 구축함과 동시에, 아시아 경제권 내에서 미국과 서구 중심의 기존 국제정치질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겠다는 의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신 실크로드 전략’은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이어지는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구축하여 대(大) 중화경제권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두 개 모두 매우 야심찬 전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러한 구상을 경제적으로 뒷밭침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를 지원하는 AIIB의 설립을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최대 강대국 발돋음 중국 전략.. 한국 수혜국 될수도

결국 AIIB 설립은 중국이 아시아의 최대 강대국으로서의 큰 꿈을 이루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할 수 있는데, 그러면 한국이 AIIB에 가입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경제적으로는 한국이 AIIB의 큰 수혜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선, 중국이 주도하는 최초의 국제금융기구에 창립멤버로 참여함으로써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기여함을 물론이고, AIIB의 운영에 있어 한국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수한 국제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은 AIIB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AIIB는 인프라 투자에 역점을 둘 예정이기 때문에 건설관련 한국기업들의 혜택이 가장 클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AIIB는 통일 후 북한 지역의 도로, 철도, 전력 등의 분야에서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통일 비용을 국제사회와 같이 나누는 일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국의 AIIB 추진을 탐탐하지 않게 생각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AIIB 가입이 혹시 대미관계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중국이 AIIB를 설립하는 것을 현재 미국 주도의 세계금융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기고 있다. 중국 주도의 AIIB에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참여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한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중국의 강력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경제적으로는 큰 이득이 있는 AIIB 가입에 대한 결정을 한동안 유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서방국가들이 AIIB 가입을 공식화함으로써 한국이 좀 더 홀가분한 기분으로 가입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AIIB의 설립이 기정사실화되고 가입국 수가 57개국에 달하자, 미국 역시 AIIB의 설립 자체를 반대하기 보다는 설립 후 운영의 투명성 강화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화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가입이 대미관계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AIIB 가입이 한국에게 경제적으로 매우 유리한 것이라면 보다 일찍 가입을 결정하여 설립 및 운영과정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아울러 비판도 있는 데, 이 역시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TPP도 한국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기구 .. 눈치보다 실익뺏겨

한국은 아직 TPP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AIIB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TPP 역시 한국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국제경제협력기구이라고 할 수 있으나 TPP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그리고 AIIB는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우리의 국익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결정을 미룸으로써, 한국이 초기 참가국의 이점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향후 글로벌 통상시스템 구축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TPP 참여에 한국이 결정을 미룸으로써 기본규칙 제정과정에서 제외됨은 물론이고, TPP 협상에 처음부터 참여한 일본이 이를 한·일 간 과거사 논쟁과정에서 미국을 자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하는 전략으로 사용하게 한 것은 한국 정부의 외교적 실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의 도전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른바 Bretton Woods 협정을 통해 국제통화 질서를 관장하는 국제통화기금, 즉 IMF와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을 지원하는 세계은행, 즉 World Bank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다른 승전국들과 더불어 설립하였고 이의 운영을 주도하여왔다. 예를 들어, IMF의 의결권 분포를 살펴보면, 미국이 16.75%로 가장 많고 일본 6.23%, 독일 5.81%, 프랑스 4.29% 순으로 되어있다. 반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지분율은 3.81%에 불과하다. 특히 아시아개발은행, 즉 ADB의 경우 일본이 12.84%, 미국이 12.75%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반면, 중국의 의결권 비중은 5.45%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은 그동안 자신의 경제력에 걸 맞는 의결권 행사를 주장하였으나,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일본이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은 자신의 국력이 충분히 반영되는 AIIB의 설립을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중국을 정치적으로 견제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중국을 주요 경제협력국으로 여기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주도하는 AIIB 가입을 결정한 것이다. 주요 유럽 국가들이 AIIB 가입을 결정하면서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과 호주도 가입을 결정하였고, 심지어 일본마저 가입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AIIB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을 평가해본다면, 중국 외교의 대승리라고 할 수 있다. AIIB는 시진핑 주석이 취임한 후 지속적으로 추진한 ‘아시아 신 안보관’과 ‘신 실크로드 정략’을 구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외교-군사-경제 측면에서 적극적 아시아정책을 추진해온 미국의 오바마 정부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중국 주도의 AIIB에 주요 서방국가들은 물론, 동맹국인 한국, 호주 등이 참가한 것은 미국 외교의 전략적 실패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최근 중국의 급속한 경제력과 군사력의 증대와 이를 바탕으로 한 보다 공세적인 외교형태는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과 경제 분야에서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외교나 군사 측면에서는 중국의 지나친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기술적 우위에 기초한 일본, 한국 등 동맹국은 물론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파트너 국가들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면서 아시아 중심의 미국 군사력 재균형 전략을 구사함과 동시에, 방금 지적한 환태평양파트너십, 즉 TPP를 통한 미국 중심의 경제통합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압박에 위협을 느낀 중국은 한편으로는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등을 통해 힘의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AIIB 설립 등을 통해 국제금융부문에서 중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한국은 물론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서방국가들과의 긴밀한 경제적 협력관계에 기초한 외교적 유대강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며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은 한국을 자신의 영향력 확대의 핵심 대상으로 여김으로써, 미국과 긴밀한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의 입장을 매우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사드보복은 풀렸다고 가정하나, 아직 체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한국의 고민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에 따른 관세 상호 부과는 핑퐁게임을 연상시킨다. 패권외교의 각축장이 되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 바로 이 점이 한국외교에 있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에게는 매우 소중한 동맹국이다. 특히 남과 북이 대치되어 있고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핵무기가 없는 한국의 입장에서 한·미 군사동맹은 생명줄이나 다름이 없다. 또한 일본,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한국을 자신의 영향권이나 지배하에 두려는 역사적 유산을 갖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세계 유일의 최강대국이면서 한국에 영토적 야심이 전혀 없는 미국과 혈맹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독자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는 한·미동맹이 우리에게는 최상의 외교적 전략목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한·미관계에 금이 가는 우(憂)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중 패권경쟁 전망

중국이 최근 경제부문에서의 획기적 발전에 힘입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 증강에도 역점을 둔 결과 미국과 패권경쟁을 논할 정도로 부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중국이 미국의 맞상대가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중국은 경제규모면에서 미국의 1/3 수준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10 수준이다. 특히 기술 수준 측면에서 미국의 우위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고, 국방비 규모 역시 중국은 미국의 1/4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지역체제는 미국과 중국의 양극체제가 아니라, 미국이 유일한 강대국인 단극체제라고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미국은 강한 기업가정신과 기술력을 기반으로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하였고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정치와 사회가 매우 안정적인데 반해, 중국은 분배격차가 매우 심하고 앞으로 불가피하게 당면할 민주화과정에서 정치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침체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세계패권 경쟁에서 미국의 절대적 우위는 적어도 향후 50년간은 유지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판단이라는 점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