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상목 정책마당]"북한 핵과 남북관계: 평화공존인가, 흡수통일인가?"
[기고-서상목 정책마당]"북한 핵과 남북관계: 평화공존인가, 흡수통일인가?"
  •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
  • 승인 2018.03.0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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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북한의 핵개발 역사

북한이 핵무기 개발의 꿈을 키워온 지는 매우 오래 되었다. 북한은 1956년 소련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을 맺은 후 한편으로는 소련으로부터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대한 지원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하여왔다.

1985년에는 소련과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관한 협력협정’을 체결하면서 그 조건으로 핵확산금지조약인 NPT에 가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비밀리에 진행하였다. 1982년 미국 첩보위성이 영변에서 원자로를 건설하는 징후를 처음으로 포착한 이후에도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지속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에 우파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상당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특히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인 IAEA의 북한에 대한 핵사찰 과정에서 핵개발의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가 발각되자, 북한은 이를 모면하기 위해 한국과의 대화를 제의하였고, 1992년 1월에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합의함으로써 핵개발 포기는 물론 남·북한 상호 핵 사찰에도 동의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합의정신에 근거하여 미군의 전술핵을 남한으로부터 철수시키는 조치를 일방적으로 취했으나, 북한은 남·북간에 합의된 약속을 지킬 의사가 전혀 없었다.

1993년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하였고, IAEA가 이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면서 한반도에서의 긴장은 고조되었다. 그 해 7월에는 제네바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이 개최되었고, 오랜 협상의 결과로 같은 해 10월에 이른바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졌다. 합의 내용은 북한이 NPT 탈퇴를 철회하고 비핵화를 약속하는 대가로 미국은 경수로발전소 건설과 동시에 매년 50만 톤의 중유를 북한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결국 제네바 회담은 북한 입장에서는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바탕으로 경수로발전소와 중유라는 경제적 실리를 챙겼음은 물론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양자협상을 하는 외교적 성과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NPT 위반을 뇌물을 주고 무마하는 외교적으로 나쁜 선례를 남겼고, 한국은 협상에 참여도 하지 못하면서 경수로 건설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난처한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그 후 미국은 북한이 비밀리에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2002년 10월 국무성 차관보를 북한에 보냈는데, 북한 당국과의 면담과정에서 북한이 이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경수로 건설과 중유 공급을 중단하였다. 결국 북한은 2003년 NPT를 탈퇴하였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북한에 추가하여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이른바 ‘6자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그 해 8월 개최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6자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지금까지 4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6자회담의 무용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 철저히 기만당한 한국과 국제사회

핵개발과 관련해서는 이제까지 한국과 미국은 물론 NPT, IAEA를 포함한 국제사회 전체가 철저히 북한으로부터 기만당한 것이 사실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한국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북한의 핵무기는 기본적으로 한국을 향한 군사적 무기임은 물론 정치·외교적 압박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6년 10월 제1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국제사회는 이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대북제재를 포함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북한의 제2차 핵실험은 2009년 5월에 이루어졌으며, 이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와 유엔은 강력한 규탄과 더불어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북한의 핵실험은 김정은 체제에서도 계속되어 2013년 2월에 제3차 핵실험을 그리고 지난 2016년 1월에 제4차 핵실험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북한 핵 역사로부터 분명한 것은 북한 정권은 핵무기를 정권유지의 가장 핵심적 수단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정권이 존재하는 한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핵개발과 관련한 국제적 협상이나 압력은 이제까지 북한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였고, 그 결과 북한의 핵개발 노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핵의 군사적 정치·외교적 의미

북한이 이번 제4차 핵실험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제3차 실험 이후 그 동안 축적해온 자신들의 핵 능력을 기술적 차원에서 점검해보고, 이에 더해 대외적으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사료된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을 통해 수소폭탄 제조에 성공하였다고 발표하였는데,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아직 수소폭탄 단계는 아니고 원자탄보다 2~5배 정도 위력이 큰 이른바 ‘중폭핵분열탄’ 실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핵무기의 소형화와 경량화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미사일 능력과 더불어 한국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확실하다. 남·북한과 같이 적대국 상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한쪽은 핵보유국이 되고 다른 한쪽은 비핵국인 경우, 비핵국은 핵보유국의 인질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과 같이 강한 불량성이나 테러의 특성을 갖고 있는 국가가 핵보유국이 되는 경우, 비핵국의 입장은 무장한 조폭 앞에 맨손으로 서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제4차 핵실험의 두 번째 의미는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와 동시에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노력이 철저히 실패하였음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핵실험을 통해 북한 정권은 대남은 물론 대국제 협상에서 핵무기 협박을 통해 강한 협상력을 보유함으로써, 정치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북한정권이 붕괴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북한 핵에 날개를 달아주는 미사일 개발

북한은 2016년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인 광명성 4호를 발사하여 2012년 은하 3호에 이어 두 번째로 궤도 진입에 성공하였다. 북한은 겉으로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인공위성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핵무기 탑재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핵개발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미사일 개발을 위한 노력을 197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해왔다. 1976년 북한은 이집트로부터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도입하여 중국의 도움을 받으면서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북한은 1985년 사정거리 340km의 스커드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였고, 그 후 이를 이란, 이라크 등 중동국가들에게 수출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은 1993년에는 사정거리 1,300km의 노동 1호를 개발하여 실전배치한 바 있다. 이에 더해 북한은 1998년 사정거리 2,000km의 대동포 1호 그리고 2006년에는 사정거리 4,000~6,000km의 대포동 2호를 시험 발사하여 전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또한 2012년에는 은하 3호 발사에 성공하였는데, 이는 북한 최초의 실용위성 발사용 우주발사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은하 3호는 사정거리가 1만여km로 추정되었지만, 이번 발사된 광명성 4호는 사정거리가 1만 3천km로 추정되어 미국 동부까지 타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위성채의 탑재 중량도 은하 3호는 100kg에 불과하였으나, 이번 광명성 4호는 500kg 수준으로 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의 미사일 개발 수준

미사일은 현대전에서 매우 중요한 국방기술이기 때문에 한국 역시 1970년대부터 이른바 ‘자주 국방’이라는 목표로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1978년에는 백곰 미사일을 개발하여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하였으나, 1979년 ‘한·미 미사일 지침’에 의해 사정거리는 180km로 제한되었다. 2001년에는 사정거리제한이 300km로 늘었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가입함으로써 한국의 미사일 개발은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2012년 사정거리제한이 800km로 확대되어 2014년에는 신형 500km 탄도미시일 시험 발사에 성공하였고, 2017년에는 사정거리 800km 미사일이 실전 배치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현재 진행중이다.

미국에 의해 한국의 핵개발이 불가능함은 물론, 미사일 개발도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남·북간 불균형은 불가피한 상황인바, 그 갭을 미군에 의해 보충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한국의 국방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로켓 기술은 북한이 한국보다 적어도 4년 이상 앞서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은 이미 2012년 12월에 로켓을 자력으로 개발해 쏘아 올리는데 성공한 반면, 한국은 2013년 2월 러시아에서 들여온 1단 추진로켓을 활용해 나로호 로켓을 발사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한국형발사체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2018년 첫 시험발사를 그리고 2020년에야 기술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 핵에 대한 한국인의 무관심과 정부의 무대응

무엇보다도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북한 핵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장기간 국가적 최우선순위를 핵개발에 두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킨데 반해, 한국은 지금까지 거의 무대응 또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서도 지적한대로,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모면하는 술책으로 활용한 반면, 한국은 우리 스스로 먼저 비핵화 선언을 함은 물론 미군의 전술핵마저도 포기하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였다. 또한 제네바 북·미합의 과정에는 참여하지도 못하였으면서 경수로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미련스러움도 보였다. 북한이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도 진보정권은 ‘햇볕정책’이라는 미명하에 북한에 대한 각종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고, 북한은 이 과정에서 벌어드린 외화로 핵과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2006년 10월 이후 북한이 공공연히 네 차례의 핵실험과 여섯 차례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들과 언론의 반응은 며칠 후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불감증만 높아지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한국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제6차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한국의 대응 역시 과거와는 다른 보다 강력하고 근본적 대응책을 마련하여 추진해나가야한국의 선택 역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 정권의 불량한 행동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여 강력한 대응을 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는 내부적 모순에 의해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인류역사의 교훈이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에서는 수시로 발생하는 위기상황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의 붕괴로 인한 흡수통일에 대비하는 투-트랙(two-track) 전략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북전략과 관련해서 흔히 포용정책과 유화정책을 이야기 하는데 이 두 가지 전략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포용정책은 채찍이 뒷받침되는 상황에서 당근을 타협의 조건으로 제사하나, 유화정책은 채찍 없이 당근만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대중 정권에서 추진한 햇볕정책이 대표적 유화정책이었고, 박근혜 정권이 현재 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포용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포용정책을 다시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1994년 제네바 합의와 같이 유인책을 제시하여 적대국가를 포용하는 것을 ‘협력적 포용정책’이라고 하고, 상대방이 국제규범을 지키도록 채찍을 사용하는 것을 ‘적대적 포용정책’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전략들의 성과를 살펴보면, 1930년대 영국의 챔버린 정부가 히틀러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이 실패하였고 김대중 정부의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 역시 실패하였는데, 이는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에 대해서는 유화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국제정치의 불문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협력적 포용정책 역시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제네바 합의의 경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북한이 국제적 규범을 따르도록 채찍을 활용하는 ‘강제적 포용정책’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북한이 국제규범을 지키도록 보다 강력한 채찍을 UN차원은 물론 한국 스스로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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