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시대별 이슈로 보는 한국경제 (4) 2000년 밀레니엄, 금모으기 운동, IT벤처의 성장, 그리고 거품 논란
[기획특집]시대별 이슈로 보는 한국경제 (4) 2000년 밀레니엄, 금모으기 운동, IT벤처의 성장, 그리고 거품 논란
  • 최욱태 기자
  • 승인 2017.11.15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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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회
출처: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회

 

90년대를 마감하고 새천년의 시작을 알리는 2000년, 한국의 경제상황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IMF 극복과, 구조조정, 금모으기 운동,IT 벤처로 대표되는 시기였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이슈도 있었다. 분단상태에서 최초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으로 찾아가 당시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 함께 정상회담을 연 의미있는 해 이기도 하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재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를 수습한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전임 고 김영삼 대통령이 남긴 IMF 구제금융의 그늘을 비교적 무난하게 극복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1997년 11월, 외환위기로 인한 IMF 구제신청이라는 전 정부의 유물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12월 18일 대통령에 당선된 후 취임사에서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외환위기'를 정의하고 "나라가 파산할 위기에 놓였다"고 개탄했다.

가계와 기업의 연쇄 부도, 직장에서 내몰린 퇴직자들의 행렬, 천정부지로 치솟는 환율과 구조조정 압력등 IMF 구제금융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던 시기에 터져 나온 것은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 할 수 있는 금모으기 운동이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상태에서 대한민국의 부채를 갚기위해 전국민적으로 동참한 금모으기 운동은 한국의 의지를 세계에 몸소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당시 외환부채는 약 304억 달러에 이르렀고, 전 국민적인 참여로 모인 금은 약 227톤, 시가로 21억 3천만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금이었으나, 국가부채를 갚겠다는 의지를 국민의 힘으로 보여준 쇼맨십으로 세계의 시각을 우호적으로 바꾸는데 일조한 것은 틀림이 없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기업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김대중 정부의 이같은 정책은 호불호가 갈린다.
다만, 명목상으로는 부실한 기업을 정리하거나 매각해 자산건전성을 확보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당시 외신들은 정리해고와 재벌 그룹에 대한 부실 방만경영을 개혁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구체적으로, 1997년 12월 23일 M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대중 당선자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등 일련의 조치에 대해 외신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한국의 경제개혁이 지난 40여년 동안 정격유착의 온상이자 부실 방만경영을 일삼아 온 재벌들이 이번 기회에 시급히 해체되어야 한다는 논조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CNN 방송도 한국 경제에 관한 보도에서 국제 신뢰 상실이 위기의 근원이라며 한국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 등, IMF 합의를 준수하는 경제 대수술을 통해서만 잃은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김대중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도 적지 않다.

2000년 10월 서울대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김대중 정부의 구조정책 : 평가와 과제' 토론회에서는 "재벌개혁, 공기업 해외매각, 금융구조조정 부문등에 대해서 "개혁대상인 재벌과 협의해 협의안을 만들어 결국 재벌이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은 개혁에 포함되지 않았다"거나 "정리해고와 대량실업의 부담을 노동자계급에 떠맡겼다" 는 취지의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이처럼 2000년은 본격적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회오리가 온 나라에 진동하던 때이다.

다음으로 김대중 정부의 최대 업적이자 거품논란의 대상이 된 'IT벤처기업의 활성화'를 꼽을 수 있다.

90년대 중후반 이후 2000년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분야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벤처였다. '닷컴버블'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중소벤처기업을 살린다는 명목아래 벤처기업 활성화를 유도했고, 속속 코스닥 시장에 입성하면서 주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새롬기술(현 솔본)이었다. 새롬기술은 1999년 8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이래 닷컴버블의 영향을 받아 미국에 인터넷 무료 전화인 '다이얼패드'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재로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이 5조원을 넘어서는 등 삼성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며 코스닥 시장의 황제주로 한때 명성을 남겼다.

신동아 2000년 2월호에는 '새롬기술을 코스닥 상장 5개월 만에 500배의 주가상승률을 기록한 新황제주'로 묘사하고 있다.

이후 뚜렷한 수익창출의 재료없이 주가 상승에만 의존하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채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IT벤처기업 상당수가 사라지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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