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칼럼 독일이야기]세번째 이야기 : 독일의 외국인 (Ausländer)
[지명 칼럼 독일이야기]세번째 이야기 : 독일의 외국인 (Ausländer)
  • 지명
  • 승인 2016.09.05 2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3년 독일에 도착한 것이 12월 말 이었으니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바로 새해가 되었다. 날씨는 추웠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어 독일의 새해는 더더욱 을씨년스러웠다.

 

12월 31일 새해가 바뀌는 밤 12시에 유럽 사람들의 신년 맞이 축제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베를린은 전통적으로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er Tor) 에서 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나가 보았다.

 

그곳은 동독과 서독의 장벽이 있던 곳으로 동베를린 쪽이 정면으로 설계된 1789년부터 1793년에 건조된, 조금은 특이한 그리스 식의 ( 정확히는 아니다.) 건축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때 건축물의 위용 보다는 모인 사람들이 특이해 놀랐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독일 사람들 이라고 생각했으나 정말 많은 외국인 (Ausländer)들이 모여 있었다. 성대한 불꽃놀이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 여기저기에서 들리던 말은 정말 다양했다.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는 외국어들의 향연이란...

독일 베를린의 수많은 외국인들

1900년대 초에 발표된 베를린 대도시법(Groß-Berlin-Gesetz.1)은 슈판다우(Spandau)와 샬로텐부르크(Charlottenberg)등 주변의 여러 도시와 지역을 통합하면서 베를린 전체 면적은 66제곱킬로미터에서 883제곱킬로미터로 13배 이상 확대되었다. 인구도 190만 명에서 40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동서로 분리된 1960~70년대에도 이주 장려 정책과 전향적인 망명 정책 덕분에 엄청난 경제부흥을 이루던 독일은 부족한 공장 노동력이 필요하여 외국에서 노동자들을 불러 들인다. 이들은 베를린에서 집세가 싼 Kreuzberg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베를린에 있는 한국식당들도 그 당시 이곳에 많이 자리하고 있다. 그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 곳에 정착하여 살게 된다. 그 중 제일 많은 사람이 온 곳은 터키였다. 그리하여 베를린의 터키인 인구는 25만 명에 이르렀다. 베를린은 터키 국외에 있는 최대의 터키인 공동체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개방 정책의 기조는 통일 후 더욱 강화되어, 1990년대에는 해외 교포법 (Aussiedlergesetze)을 통해 구소련으로부터 이민이 합법적으로 허락되었다. 이때 들어온 이민자들은 거의 모두 독일 교포였지만, 언어는 러시아어를 썼다. 현재는 서유럽 국가 출신이 많이 이주하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유럽연합 소속 국가 출신의 젊은이들이 많다.

 

현재 베를린에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 46만 명이 외국 국적 소지자다. 이들의 국적은 매우 다양해서, 모두 합하면 196개국에 이른다. 독일 국적 소유자 중에서도 약 12퍼센트에 해당하는 시민 40만 명가량이 외국 출신 이민자의 후손이기에, 베를린시에 거주하는 인종은 통계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느껴진다. 베를린의 외국인 가운데는 터키인이 가장 많다. 그 뒤를 폴란드인, 세르비아인, 이탈리아인, 러시아인, 미국인등 무수히 많다. 아랍인도 많이 살고 있지만, 무국적자가 많기 때문에 정확하게 통계를 파악하기는 어렵고 대부분은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으로 받은 외국인의 차별대우..

 

베를린에 도착해서 처음 살았던 동네가 투름스트라세 (Turmstrasse)라는 곳이다. 이 동네는 특히 터키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한국 상점도 한 곳 있었지만, 정말 독일이 아닌 터키로 유학 온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모든 상점이나 작은 식당 (Imbiss)의 주인이 터키인들 이였다. 내가 받은 터키인의 느낌은 매우 친절하였다.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많은 터키인들도 보았다. 이곳은 터키인 뿐 만아니라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 이였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어학원에 가던 길 이었다. 버스 안에는 한 노부부가 앉아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서 있었다. 때마침 그 버스는 앞뒤로 2대가 연결된 기다란 버스였고 앞 부분에 조금만 출렁임이 있어도 뒷 부분은 좀 심하게 출렁이는 그런 버스였다. 버스가 정차할 때 마다 그 출렁임 때문에 내 발이 노부부의 발에 몇 번 부딪쳤다. 처음엔 그 노부부가 흘겨보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내 발을 차 버리는 것 아니가! 그땐 독일말도 잘하지 못 할 때라 말대꾸도 못하고 바로 다음 정거장에 울분을 삭히며 내렸다. 아!! 이런 것이 인종차별이구나... 그 다음에도 이런 정도의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특히 그때 상황이 통독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특히 동독 쪽으로 갈 경우에 더더욱 조심했다. 동독 사람들은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인지 동양 사람을 신기한 듯 구경할 때가 많았다.

 

외국인에 대한 친절

지금의 우리나라는 한류 문화를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베를린에도 현재 굉장히 많은 수의 한국 식당들이 생겨나고 있고, K-POP 댄스 스튜디오도 생겼다. 예전 같으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세계 곳곳 에서 벌어지고 있다. 베를린 외국인 관청에 비자 연장을 받으려고 새벽 3시부터 하루 종일 기다렸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은 대한민국 사람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선진국으로 분류가 되어 금방 비자를 받는다고 한다. 이 또한 믿을 수 없는 현재 독일이 우리를 보는 시각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조금 더 선진화된 모습을 외국에 보이는 것은 어떨까?

 

얼마 전 신문을 읽다가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금발계열이 아닌)의 어려운 서울 생활을 기사로 보았다. 그 외국인은 아랍 계열로 버스를 타던 무엇을 사던 우리 국민들의 좋지 못한 시선을 인터뷰 한 글 이였다. 분명 그 사람도 그 나라에서는 한 부모의 자식이자 집에서는 존경 받는 가장일 텐데...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에 와서 열심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벌어 고국에 돌아가고픈 사람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먼저 아무런 차별 없이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에 온 모든 외국인들이 웃을 수 있는 그런 날 말이다.

 

■ 지명은 누구?

-언북중 1회 동문회 부회장

-서울고 40회졸

-TU Berlin Gebäudetechnik (베를린공대 건축설비학) 수료

-TU Berlin 총동문회 총무

-(현) Design SALLIGO 및 SALLIGO furniture COO(Chief Operating Offic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